멀고 먼 식민·과거사 배상 문제

2022-08-29 10:48:22 게재

NYT "유럽, 선례 우려하며 상황 외면 … 여론·지정학 압박 없다면 난망"

식민 지배국들이 식민지 후손들에게 진 빚은 무엇일까. 사과하고 문화유물을 돌려주는 것으로 충분할까. 만약 금전적 배상이 이뤄진다면 수세대에 걸친 착취와 약탈, 노예화의 빚은 어떻게 산정할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NYT)는 28일 "이는 잔혹한 식민시대를 경험한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에겐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라며 "옛 식민지 국가들의 정부와 활동가들이 법정과 외교무대에서 가해국의 사과와 배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라 안팎의 압력이 커지자 프랑스는 지난해 아프리카 서부의 공화국 베냉에 26개의 약탈 문화재를 반환했다. 독일은 과거 식민지 나미비아에 대량학살에 대한 사과와 함께 13억5000만달러를 원조하겠다고 약속했다.

벨기에령 콩고 시절 쇠사슬에 목이 묶인 노예들의 모습. 벨기에령 콩고는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가 자신의 사유지 콩고독립국을 벨기에 정부에게 양도한 1908년 11월 15일부터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독립한 1960년 6월 30일까지 존재했던 벨기에 식민지다. 사진출처:커런트어페어스


NYT는 "이는 예외적 흐름에 속한다.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을 중심으로 식민배상 청구운동이 거세지고 있지만 과거 제국을 형성했던 유럽 주요국들은 선례를 남길까 머뭇거리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정부 감사원에 따르면 프랑스 박물관엔 아프리카에서 약탈한 약 9만점의 유물이 있다. 이 가운데 수십개를 반환하며 생색을 내는 것은 옛 식민지국가 활동가들에겐 모욕으로 느껴진다.

독일의 사과도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과는 거리가 멀다.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입장에서 대강 얼버무렸다는 분석이다. 잠재적으로 다른 식민지에서의 과오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옛 식민지 정부와 활동가들에겐 무엇을 받아내야 하는지보다 어떻게 배상을 받아내야 하느냐는 직접적인 난제에 직면했다. 카리브해 국가들의 모임인 '카리브공동체'(CARICOM) 식민피해 배상위원회 위원장이자 역사가인 힐러리 베클스는 최근 대중강연에서 "시간은 배상을 주장하는 우리의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목표는 사과 이상의 무언가를 받아내는 것이다. 유럽이 훔쳐간 노동과 자원에 대한 배상"이라며 "유럽은 식민세계의 희생을 기반으로 부흥을 일으켰다"고 강조했다.

카리브해 식민배상위원회는 유럽 국가들에게 500억달러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베클스 박사는 "유럽 주요국이 카리브해 국가들에게 진 빚은 200년 동안의 강제 무임노동으로, 금액으로 치면 7조파운드(약 1경1045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유럽, 식민지를 발판 삼아 부흥

식민피해 배상 운동의 시작은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인종차별 철폐 UN 컨퍼런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세계 국가들이 식민주의 유산을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모임을 조직한 첫 사례였다.

하지만 식민피해 배상의 대의명분은 그 이전부터 제기됐다. 서인도제도 남동부 프랑스령 섬 마르티니크 출신의 저명한 지식인 프란츠 파농은 1961년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는 우리에게 진 빚을 청산하지 않았다"라며 "제국주의 국가들의 부는 또한 우리의 부다. 유럽은 문자 그대로 제3세계의 창조물"이라고 주장했다.

서인도제도의 세인트루시아 섬 출신으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W. 아서 루이스도 "1930년대 이래 유럽의 식민주의는 수세대가 살아가야 할 식민사회 경제를 거덜냈다. 그들의 빚은 피해 배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식민사회의 복원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티가 적절한 사례다. 프랑스는 강제적, 반강제적으로 감당 못할 빚을 아이티에 안겼다. 이 때문에 아이티는 현재까지 저개발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아이티가 식민지배로 입은 경제적 피해는 수백억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1993년 개최된 범아프리카 컨퍼런스는 식민피해 배상운동을 홀로코스트 희생자에게 주어진 배상에 비유하기도 했다.

옛 식민국가들은 당초 과거사 배상 문제를 꺼내는 데 주저했다. 많은 식민지들이 여전히 식민지배국들에 정치적,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국가들이 이를 시도했다. 아이티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2000년대 초 프랑스에 식민피해 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수년 전부터 옛 식민지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이 식민배상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식민지배국의 여론에 호소하고 법정에 소송을 제기했다.

영국은 1950년대 케냐의 독립운동에 참여한 5000여명의 사람들을 불법 구금하고 고문했다. 이같은 가혹행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수년 동안 영국 법원에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했고 결국 성공했다. 영국정부는 2013년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3000만달러를 배상했고, 짧은 내용이지만 이례적으로 공식사과를 발표했다.

"선례를 남길 순 없다"

독일 식민시대 대량학살의 피해를 입은 나미비아 활동가들은 여론에 호소하는 방법을 택했다. 독일 내 여론의 압력으로 연방의회는 2015년 피해 배상과 관련해 나미비아정부와 공식 협상을 시작했다.

프랑스의 인종차별 철폐 운동가들은 아프리카 국가 정부, 활동가들과 협력해 식민 배상운동을 이끌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대선 과정에서 수천점의 약탈 문화유산을 반환하고 식민지와 관련한 역사적인 피해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당선된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식민피해 배상 문제를 그 자체로 보기보다 아프리카에서 전개되는 소프트파워 경쟁의 문제로 인식했다. 아프리카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상황에 밀려서는 안된다는 동기가 작동했다. 프랑스가 왜 문화 유물의 반환 약속을 극히 일부분만 실행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같은 몇차례 성공을 배경으로 옛 식민지 국가들의 정부와 활동가들은 식민피해 배상운동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카리브해 국가들은 2014년 UN에서 10대 식민피해 배상 어젠다를 발표하고 UN은 그와 관련한 상징적인 선언문을 채택했다. 하지만 일부 법학자들은 국제법을 적용하기엔 한계가 크다고 봤다. 당시엔 식민주의가 불법이 아니었다는 점에서다. 그 결과 실제적으로는 가해국과 피해국 정부들끼리, 또는 유럽 정치시스템 내에서 해결이 시도됐다.

배상협상은 고도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였다. 가해국 정부들은 개별적으로 사과하고 배상하는 게 다른 범죄에서 선례가 될 것을 우려했다. 독일 법학자인 마티아스 골드만은 "독일정부는 애당초 나미비아의 배상 청구를 수용하는 데 반대했다"며 "독일정부는 식민시대 한가지 잘못에 대한 배상금 지급이 다른 모든 잘못에 대해 법적책임을 떠안게 되는 결과를 우려했다"고 말했다.

결국 독일은 배상금이라 부르는 대신 원조금 지급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또 나미비아에 대한 사과 역시 두루뭉술했다. 때문에 나미비아의 많은 국민은 자국 정부에 '독일의 사과와 배상을 거부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나미비아 학자인 엠시에 에라스투스는 BBC방송에 "그같은 선언은 공허하다"며 "독일정부의 문제해결 방식은 그 어떤 법적 책임성도 피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십곳의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과 프랑스도 국제법이나 국내법에 선례를 남길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경계했다. 하지만 옛 식민지국가 활동가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게 바로 선례"라며 "우리는 선례를 들고 유럽 각국의 정부를 강제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식민피해 배상 운동가그룹은 식민지배국의 개별 잔혹행위에서 식민주의 자체로 배상 범위를 확대하려 했다. 하지만 엄중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유럽이 식민주의로 부를 축적했다면, 결국 그에 대한 배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영국 학자인 제이슨 히켈은 2018년 강연에서 "영국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삼아 플랜테이션 농업에 종사시켰다. 영국이 약탈한 수십억시간을 생활임금으로 산정해야 한다. 또 6000만명의 사람이 기근으로 희생당했다. 이에 대한 배상도 보태야 한다"며 "만약 영국이 진실하고 정직하고 용기있게 배상한다면, 영국에 남아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 움직일 영향력에 좌우

식민피해 부채를 글로벌 표준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옛 식민지들은 개별적으로 배상금을 주장하고 있다. 자메이카는 106억달러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영국이 노예 소유주들에게 수수료로 지급했던 것과 동일한 금액이다. 자메이카 노동당의 한 의원은 "영국은 그 노예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빚을 지고 있다. 최소한 우리 선조들의 몸값만큼은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룬디의 경우 독일과 벨기에에 430억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강제노동과 식민주의 폭력을 경제적 비용으로 산출했다.

하지만 식민피해국의 주장은 가해국과의 직접 협상으로 해결되기에, 주장의 근거보다 상황에 영향을 미칠 제3의 요소가 더 중요해진다는 분석이다. 가해국 내 여론의 압박이 없다면, 옛 식민지가 중국과 가까워지는 등의 지정학적 압박이 없다면 피해국의 주장은 무시되기 일쑤다.

케냐의 한 가족은 식민시대 빼앗긴 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정부가 자국의 차회사들(tea companies)을 위해 케냐의 원 소유주를 강제로 쫓아낸 것. 현재도 영국 회사들이 그 땅을 소유하고 있다. 피해가족은 영국 내 여론에 호소하고 UN에 진정서를 넣었다. UN 조사팀은 지난해 "영국정부가 케냐 피해가족의 피해청구를 해결할 책임을 갖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UN 조사팀은 이를 강제할 법적 구속조치를 갖고 있지 않다.

콩고민주공화국정부는 벨기에가 식민지배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는 콩고를 자신의 사유지로 삼아 '벨기에령 콩고'로 만들었고 1908년 자국 정부에 양도했다. 1960년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벨기에의 대량학살과 잔혹한 강제노동으로 수백만명이 숨졌다고 추산한다. 벨기에 최고 부자 23명 중 9명이 여전히 콩고에 막대한 재산을 두고 있다.

2020년 벨기에에서 인종차별철폐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결국 벨기에 의회는 식민피해 배상 위원회를 설립했다. 하지만 대중의 압력은 곧 시들었다. 벨기에 국왕은 지난달 콩고민주공화국을 방문했다. 국왕이 콩고에 반환해야 할 문화유물은 8만4000점. 그중 단 1개의 유물만 들고 갔다. NYT는 "국왕은 물론 벨기에정부도 아무런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 사과도 없음은 물론이다. 콩고정부는 상황을 움직일 제3의 영향력도 갖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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