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열 쏠림현상

통합수능 뒤 '묻지마 자연계열' 우려도

2022-08-31 11:16:59 게재

'자연계열 대학 가기 쉽다'는 인식 팽배 … 서울 소재 대학 인문 계열 모집 인원 더 많아

2005학년 선택형 수능 시행 이후 처음으로 2022학년 수능에서 과학탐구 응시자(47.9%)가 사회탐구 응시자(46.8%)를 추월했다. 수학에서도 상위권 대학이 자연 계열 응시 영역으로 지정한 '미적분' '기하'를 선택한 수험생이 48.4%로, 2021학년 자연 계열 학생들이 주로 응시했던 수학 가형 비율인 34.3%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계열 구분은 없어졌지만 학생들의 선택과목으로 진로 희망 계열을 살펴봤을 때 이런 현상은 일선 고교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남고의 자연 계열 쏠림 현상은 말할 것도 없고 인문 계열 지원자가 많은 여고에서도 최근에는 인문과 자연 계열의 반 비율이 5:5 또는 4:6, 3:7로 자연 계열 진로를 희망하는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1년 사이 극심해진 자연 계열 쏠림 현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2022 수능 수학과 탐구 영역에서 자연 계열이 응시하는 과목의 선택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최근 10년간의 수능 수학 응시자 중 탐구 영역 선택 비율을 보면 2013학년에는 사회탐구 비율이 56.8%, 과학탐구 선택 비율이 40.1%였는데 2022학년 수능에서는 사회탐구 46.8%, 과학탐구 47.9%로 역전됐다. 2021학년과 비교해도 사회탐구 비율은 4% 감소한 반면 과학탐구는 1.9% 증가했다(표 1). 수능이 실시된 이래 처음으로 과학탐구 선택 비율이 사회탐구 선택 비율을 앞지른 것이다.

2022 수능 수학 응시 비율을 보면 자연 계열 쏠림이 더 두드러진다. 2021 수능에서 자연 계열이 주로 선택한 수학 가형 응시 인원은 34.3%인 13만9429명이었던 데 반해 2022 수능에서는 '미적분' '기하' 선택자가 48.4%인 20만7788명이었다. 전년 대비 선택 비율이 14.1% 상승한 것이다(표 2).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통합 수능이 실시되면서 자연 계열 쏠림 현상이 더 심해졌다. 서울 주요 대학이 자연 계열 지원 시 수학과 탐구 영역에서 과목을 지정한 반면, 인문 계열 모집 단위는 지정 과목이 없어 교차지원이 허용된다. 동일 점수를 받았을 때도 이들 과목의 표준점수가 유리해지면서 '미적분'이나 '기하', 과학탐구를 선택하는 것이 대입에서 유리하다는 인식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성별, 고교 유형 가리지 않고 자연 계열 쏠림 심화 = 현재 교육과정은 계열 구분 없이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도록 선택 과목제를 도입하고 있다. 다만, 대학은 고교 교육과정과 달리 계열별, 전공별로 신입생을 선발해 여전히 고교에 따라 학생들의 과목 선택으로 반을 편성해 계열을 구분한다.

최근 종로학원에서 '자사고 28개교, 서울대 합격자 배출 상위 일반고 24개교의 인문·자연 계열 현황 조사' 자료를 발표했다. 52개교 중 자연 계열 비율은 68.6%, 인문 계열 비율은 31.4%로 자연과 인문 계열의 선택 비율이 7:3정도로 나타났다. 임 대표는 "지역이나 고교 유형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상위권 고교 학생들은 자연 계열 쏠림이 더 두드러진다. 고교에 따라 자연 계열 반이 80% 이상인 곳도 있다. 대학은 계열, 전공별로 선발하는 상황에서 계열 불균형 문제는 여러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종로학원 자료에 따르면 전국 단위 자사고 중에서 충남 북일고가 자연 계열 중심으로 과목을 선택한 10개 반, 인문 계열 2개 반을, 서울 소재 지역 자사고 중에서는 휘문고와 보인고가 자연 계열로 편성한 반 10개, 인문 계열 편성 2개 반, 세화고와 선덕고가 자연 계열 9개 반, 인문 계열 2개 반을 운영한다. 상위권 일반고에서도 비슷한 양상이다. 서울 강서고, 충남 공주사대부고, 경기 분당대진고·신성고·낙생고·세마고·분당중앙고 등도 자연 계열 반 편성 비율이 80%에 달한다.

서울 숭의여고 정제원 교사는 "인문 계열 진학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여고에서도 자연 계열 진학을 고려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보통 여고에서는 인문과 자연 비율이 7:3 정도였다면 최근에는 5:5,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많은 여고에서는 인문과 자연 비율이 3:7 정도로 완전히 역전됐다. 남고의 자연 계열 쏠림 현상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의·약학 계열로 6500여명 선발, 최상위권 쏠림 =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대다수 자연 계열을 희망하는 분위기다. 자연 계열 최상위권이 지원하는 의·약학 계열의 학부 모집을 고려했을 때 중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수월하다는 인식이 많다. 2023학년 의·약학 계열은 수시와 정시를 합쳐 6599명을 선발한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소장은 "2022학년에 약대까지 신입생을 선발하면서 의·치·한·약학 계열에서 6500명이 넘는 인원을 선발했다. 취업난 속에서 자격증을 취득해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어 안정적이고, 높은 사회적 인식 등으로 여전히 자연 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학과, 취업 연계 계약학과 신설 등의 사회 변화도 자연 계열 쏠림 현상을 키웠다"고 설명한다.

인문 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서울대 지원을 염두에 두지만, 자연 계열은 전국에 있는 의대 치대 약대 수의대 한의대를 비롯해 카이스트 포스텍 등으로 지원이 분산되면서 상위권 대학 진학에 대한 기대 심리도 작용한다.

그러나 우수한 학생들이 자연 계열에 몰려 2021학년과 비교해 2022학년 대입에서 의대 지원자가 1300명가량 늘어났다. 그로인해 의대뿐 아니라 중상위권 대학의 경쟁률과 합격선도 상승했다.

통합 수능으로 바뀌면서 "자연 계열이 대학 가기 쉽다"는 인식이 더 강해졌다. 실제 선택 과목을 조사하는 고1 교실에서도 '일단은 자연 계열'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특히 2022 수능에서 자연 계열 학생들이 같은 원점수를 받아도 표준점수에서 유리해지면서 교차지원이 활발하게 나타났던 것도 학생들의 '묻지 마, 자연 계열'을 부추기는 상황이다.

◆묻지마 자연 계열 신중해야 = 정 교사는 "실제 대학의 모집 인원을 보면 계열별로 큰 차이가 없다. 반도체학과나 첨단 학과 등의 신설로 자연 계열 모집 인원이 더 늘어날 수는 있지만 대입에서 무조건 자연 계열이 유리하다는 생각으로 선택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종로학원이 발표한 2023학년 권역별 자연 계열 학과 선발 비율을 보면 서울 소재 대학은 인문 계열의 선발 비율이 51.9%로 더 높다. 수도권, 지방으로 갈수록 자연 계열 학과의 선발 인원이 많다. 지방 소재 대학은 인문 계열 선발 인원이 43.0%, 자연 계열 선발 인원이 59.0%다.

김기수 기자·민경순 내일교육 리포터 hellela@naeil.com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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