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다가온 '마약' | ③ '중독 쳇바퀴' 언제까지

'투약-구속-출소-투약' 반복하는 악순환 고리 끊자

2022-09-16 10:32:45 게재

학교 예방교육 강화로 청소년 중독부터 막아야 … 예산·전문인력 확보해 치료·재활 시스템 구축

우리나라는 과거 '마약 청정국'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마약 오염국'으로 전락했다. 유엔은 마약류 사범이 10만명당 20명 미만일 때 마약 청정국으로 지정하지만, 2016년 이후 이 기준을 넘어섰다. 특히 마약류사범의 연령이 낮아져 20대는 물론 10대 중독자까지 증가하고 있다. 내일신문은 3회에 걸쳐 사회 곳곳에 소리 없이 스며들고 있는 마약의 폐해와 해결책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지난달 1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관세청 마약류 밀반입 예방 캠페인에 참가한 마약 탐지견들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20대 초반인 A씨는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로 지난해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A씨가 처음 대마초에 손을 댄 것은 10대 시절인 2017년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마약을 투약해오다 성인이 된 후 적발됐다.

16일 수사기관들에 따르면 청소년 마약류 사범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재범률이 높은 마약범죄 특성상 청소년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중독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실한 지원 시스템으로 치료·재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성인 중독자들의 상황도 큰 차이가 없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1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10대 마약류 사범은 2017년 119명, 2018년 143명, 2019명 239명, 2020년 313명, 2021년 450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2017년 전체의 0.8%를 차지했던 10대 마약류 사범은 지난해 2.8%를 차지할 정도로 급속히 증가했다.


경찰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증가해 청소년들이 마약류 인터넷 광고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면서 "온라인상으로 시장이 이동하면서 마약이 최신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10대를 포함한 젊은 층으로 확산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마약류 범죄의 경우 재범률이 높다는 점에 우려한다. 성인이 된 후에도 '투약-구속-출소-투약-구속'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마약범죄 암수율(드러나지 않은 범죄 비율)이 20~30배에 달해 드러난 중독 청소년 수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예방교육 내실화 급선무 = 수사기관과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로 단속과 검거보다 마약류 사용에 따른 폐해를 알리고 경각심을 높이는 예방교육을 강조한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경쟁위주에 성공 지향적인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에 청소년 행복지수가 꼴찌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마약이 번지기 쉬운 조건을 갖춘 것"이라며 "근본적으로는 아이들의 행복지수를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와 함께 단기적으로는 예방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마약류 등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특히 저학년의 경우 인터넷 공간을 통한 범죄자나 집단의 접근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학교보건법이 개정돼 마약류를 포함한 약물의 오·남용과 중독을 막기 위한 예방교육도 의무보건교육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유치원, 초·중·고등학교는 1년에 10시간씩, 학기당 2회 이상 마약 예방교육이 포함된 '약물 및 사이버 중독 예방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마약 예방교육은 여러 의무교육들 가운데 우선순위가 높지 않아 교육시간도 채우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교육 내용은 흡연·음주를 위주로 이뤄지고 있으며 일부 실시되는 마약예방 교육도 강의식으로 진행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학교 차원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마약중독은 재활이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마약에 손을 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1998년 이후 대부분 학교에서 마약예방 교육을 교과과정에 포함시켰다. 1990년대 청소년 마약사범이 급증한 미국에서도 2002년 국가가 나서서 청소년 마약 예방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교육부와 협력해 각급 학교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도록 했다. 특히 이들 국가는 마약 교육을 학교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지역사회까지 참여토록 하고 있다.

◆치료·재활 시스템 먹통 = 전문가들은 재범 우려가 10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해 검거된 전체 마약류 사범 1만6153명 중 5916명(36.6%)은 재범이었다. 3명 중 1명은 수사기관에 덜미가 잡혔던 경험이 있으면서도 마약을 끊지 못한 것이다. 전체 마약류 사범의 재범률은 2016년 37.2%로 최고를 기록한 뒤 2017년 36.3%, 2018년 36.6%, 2019년 35.6%를 기록했다. 검거된 마약류 사범이 워낙 많았던 2020년 32.9%로 줄었다 지난해 다시 증가세로 반전됐다.

이처럼 높은 재범률은 마약류 사범의 치료재활과 사후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내 마약 관련 법제도는 수사기관을 통한 강력한 단속과 함께 치료·재활정책을 병행한다. 검찰에서는 기소 단계에서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 치료보호조건부 기소유예 등을 통해 마약류 중독자들에게 치료재활의 기회를 줄 수 있다. 또 법원에서는 치료명령이나 치료감호 등을 결정할 수 있다.

문제는 현실에서 이런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태영호 국회의원(국민의힘)이 최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정부 지정 마약류 중독자 전문치료 의료기관 운영 실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1곳의 마약중독 전문치료 병원 가운데 지난 3년간 단 한번이라도 중독자를 치료한 병원은 11곳이었다.

서울에 위치한 마약중독 전문병원인 서울시립은평병원과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지난해 외래로만 각각 1건과 2건 총 3명의 중독자를 치료했을 뿐이다. 최근 5년치 실적을 봐도 각각 14건과 4건으로 총 20건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국 중독환자 치료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던 강남을지병원(서울)은 정부에서 받지 못한 지원 치료비에 따른 재정난으로 2018년 지정 해제를 요청했다. 전국에서 가장 필요한 곳에서 가장 많은 중독 환자를 치료했던 전문병원이 정부의 예산 지원 부족으로 문을 닫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5년간 전국 21곳의 중독자 치료 전문병원 운영실태를 살펴보면 △치료보호 건 수 330건(2017년) →280건(2021년) △지정병상 수 330개(2017)→292개(2021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수 170명(2017)→132명(2021년)으로 치료 실적은 물론 재발방지 인프라 측면에서도 부실해지고 있다.

마약사범 치료와 재활을 위해선 관련 인프라나 투입 예산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됐지만 지지부진하다. 실제로 치료보호를 위한 예산은 2019년 1억7000만원, 2020년 2억5000만원, 2021년 2억6000만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올해는 4억1600만원으로 증액됐지만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민간의료기관에 대해선 국비와 지방비 5대5 비율로 지원하는데 지자체 재정 사정으로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환자들의 치료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태 의원은 "우리 사회 마약의 문제는 처벌만 있고 치료가 없는 것"이라며 "국가차원에서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해 재발방지가 평생에 걸쳐 이뤄질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암수율 고려하면 중독자 1% 미만 지원 = 실제로 지난해 치료보호지정병원에서 치료보호를 받은 마약류 중독 환자는 총 280명으로 전년(143명) 대비 95.8% 증가했다. 대부분은 자의로 병원을 찾았으며 검사가 의뢰한 경우는 1명 뿐이다. 반면,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 인원은 1187명으로 전년(897명) 대비 32.3% 증가했다. 이는 검찰에서 마약류 투약자 등에 대해 처벌 위주 보다는 치료·재활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부여해 조속한 사회복귀를 고려한 결과다. 또 약물중독재활센터에 수용해 치료를 받도록 하는 치료감호 대상은 18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을 다 합쳐도 전체 마약사범과 비교하면 10% 미만만 치료·재활의 기회를 얻는다는 뜻이다. 특히 암수율을 고려하면 1% 미만의 투약자만이 지원을 받는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마약류 남용의 실태와 대책 보고서'에서 '형사사법제도를 치료의 관문으로 삼으라'는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권고를 인용하며 "형사사법절차의 모든 단계별로 치료 시스템을 적용해 시행한다면 재범률에 분명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제언했다.

◆선진국, 치료 강제하기도 = 오래전부터 마약이 사회문제로 대두됐던 선진국들은 사법체계에 중독자를 치료로 유도하거나 강제하는 제도를 운영한다.

미국의 약물법원(Drug Court)은 마약을 포함한 약물사범만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특수법원이다. 약물법원은 한국처럼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를 시행하고 있지만, 판사, 검사, 변호사, 치료전문가, 사회복지전문가 등이 협력해 체계적으로 치료와 관리·감독을 한다.

약물법원 시스템은 호주, 캐나다, 영국, 브라질,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등으로 확산됐다.

영국의 경우, 치료명령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마약류 재활 조건제도(DRR)가 널리 이용되고 있다. 보호관찰의 역할을 강화하고 집행유예 조건 위반 정황이 발견되면 다시 치료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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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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