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남식의 중동 톺아보기

롤러코스트 탄 이란핵합의 재협상

2022-09-22 11:53:38 게재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아중동연구부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도 키이우가 포연에 휩싸이고 여러 도시 공방전의 전황을 알리는 외신이 연일 전해졌다. 2차대전 이후 유럽을 전장으로 하는 첫 전면전이었기에 그 충격은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요한 외교 사안 하나가 한동안 동력을 잃었다. 바로 이란핵합의 재협상이다.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이 성사시켰던 합의를 3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파기했다. 보다 정확히는 6개 당사국 중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제재는 즉각 복원되었고 이란 경제는 휘청거렸다. 생활고로 인한 빈민층이 거리시위에 나섰다. 이란은 다시 핵능력 강화를 모색했다. 만일 이란이 선을 넘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큰일이었다. 적대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가만히 있을 리 없고, 제국의 복원을 꿈꾸는 튀르키예도 들썩일 것이었다. 중동 전역이 핵도미노 위협에 직면하게 될 상황이었다.

에너지 위기 직면한 유럽이 팔 걷어붙여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이 합의를 되살리겠노라고 공언했고 당선 직후 협상이 시작되었다. 올 초 우여곡절 끝에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전쟁이 발목을 잡았다. 중재역할을 자임하던 러시아가 오히려 훼방자로 바뀌었다. 희망은 점차 옅어졌다.

지난 8월 초 반전이 나타났다. 유럽 전장에 신경쓰느라 이란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던 유럽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의외였다. 에너지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으로 에너지 비용이 치솟자 이란을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석유와 천연가스의 보고(寶庫) 카스피해와 페르시아 걸프해역을 아우르는 이란이 정상적인 에너지 수출국으로 나설 것이라는 희망의 신호만으로도 일단 가격 안정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및 유럽연합은 '최종문안'을 만들어 이란과 미국 양측에 전달했다. 일단 이란과 미국은 타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기싸움 중이다. 아직 타결 가능성을 확신할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전쟁 초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유럽의 강한 드라이브가 작동하고 있기에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이렇듯 롤러코스터처럼 기대와 실망을 거듭하게 만드는 이란핵합의 재협상의 배경은 무엇일까? 주인공 미국과 이란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치열하게 다투는 쟁점들은 무엇일까?

되짚어보면 이란핵합의는 오바마정부의 중동 거리두기, 즉 아시아 재균형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은 9.11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장병들의 희생과 막대한 전비 소요를 감수하고도 중동의 안정과 민주화는 요원함을 깨달았다. 셰일혁명 이후 중동석유 의존도가 예전 같지 않은 미국으로서는 본토 테러의 재발만 막을 수 있다면 굳이 중동에서 품을 들이며 희생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반면 중국의 기세는 무섭게 치솟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과 당시 바이든 부통령의 백악관은 중동에 투입했던 미국의 전략자산을 중국 견제를 위해 옮기려 했다. 이른바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다.

하지만 미국은 중동을 그대로 놓아두고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힘의 공백 상태에서 이란이 자연스레 핵개발은 물론 역내 대리세력 배후조종을 통해 혼란 국면을 조성할 가능성이 컸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등이 가만히 있을 리 없고, 충돌로 인한 혼란상태에서 IS나 알카에다류의 폭력적 극단주의가 발호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중동에 다시 발이 묶이게 된다.

결국 미국은 이란의 핵개발 의욕을 좌초시키기 위해 무력 수단 대신 외교적 해법을 택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중동을 안정화시킬 수 없었음을 경험했던 터다. 2015년 이란핵합의가 탄생한 배경이다. 트럼프의 탈퇴를 거쳐 다시 바이든이 재가동하기 위해 협상을 시작한 맥락이기도 하다. 바이든도 첨단분야에서 굴기하는 중국에 위협을 느끼고 인도태평양전략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 이해 일치하지만 쟁점 만만찮아

하지만 아직 미국과 이란 양국의 인식차가 크다. 2015년 이란핵합의 본질은 철저하게 '핵문제만 다룬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동지역 내 미국의 우방국들은 이란의 핵개발뿐 아니라 헤즈볼라 등 친이란 세력들의 무력위협과 미사일 개발 및 이전 등의 행동도 묵과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재협상 과정에서 이란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가 들어오는 수순이니 2015년 합의안 원안을 그대로 유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바이든정부는 '확장판' 새 합의안을 제시하며 이란을 압박한다. 미국은 이란의 핵합의 준수의무 기간을 더 연장하고, 핵문제뿐 아니라 이란의 역내 대리세력 지원 및 도발 중단, 미사일 개발 중단 등을 새 합의에 담을 것을 요구하는 중이다.

미국은 이란과 벌이는 재협상을 반대하는 중동 우방국들의 입장을 반영해야 했다. 국내정치 요인도 작용했다. 워싱턴 내 반(反)이란 여론이 만만치 않고,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상태에서 이란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보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쟁점들도 만만찮다. 세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혁명수비대를 해외테러집단으로 규정한 데 대한 이란의 반발이 격렬하다. 이란은 자국의 정규 무장조직을 마치 알카에다 같은 극단주의 폭력테러집단과 등치시켰다며 분노했다. 혁명수비대는 최고지도자의 직할부대로 혁명의 수출과 옹위라는 양대 목표를 수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동전역의 친이란 무장집단을 지원하면서 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트럼프는 테러집단으로 분류했다. 이란 보수세력의 핵심인 혁명수비대의 테러집단 해제는 뜨거운 쟁점이다. 국내 여론상 바이든은 이를 해제하기 어렵다.

둘째, 이란 내 일부 미신고 시설에서의 핵물질 검출 의혹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공론화한 이슈이기에 이란은 더욱 강하게 반발한다. 만일 비밀 핵시설에서 몰래 우라늄 농축을 해왔다면 이란이 핵합의를 어긴 셈이 된다.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명분 없이 끝까지 거부한다면 재협상 타결은 어려워진다.

셋째, 재발방지 보증 문제다. 다시 합의했다가 2년 뒤 트럼프가 나타나 또 파기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의식이다. 미국이 다시는 일방적으로 파기하지 못하도록 법적장치를 만들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조차도 이란에 의혹을 갖고 있기에 미국 의회가 조약에 준해 이 합의를 법적으로 보증할 리 만무하다.

바이든과 하메네이, 상황 반전시킬까

결국 이란핵합의를 바라보는 양국의 시선, 쟁점을 보면 재협상 타결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섣불리 파기를 예단할 수도 없다. 합의 타결을 통해 얻는 이익이 미국과 이란 양국 모두에게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란을 이대로 놓아두었다가는 인태전략에 집중하기 어렵다. 또다시 중동에 발이 묶이는 비극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자칫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게 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핵확산 금지조약은 사실상 붕괴하게 되며 바이든이 내세우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그물이 완전히 해체될 수도 있다.

이란 입장에서도 제재를 견디며 미국과 계속 각을 세우는 것이 유리하지 않다. 한번 풀렸던 제재가 다시 복원되니 이전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 대중들의 불만이 심상치 않다. 경제난으로 인한 대중들의 불만이 시위로 전환되어 거리에 나서게 되면 이란 권부는 체제 붕괴의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결국 바이든과 하메네이 두 지도자가 어느 순간에 치킨게임을 끝내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가 관심 포인트다. 여기에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유럽 국가들의 중재 여력이 얼마만큼 작용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 되고 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아중동연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