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말하는 산재예방 ⑨

일상화된 안전보건 규정 위반

2022-09-27 11:13:43 게재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

3월 31일 한 자동차 공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대형트럭 운전석을 앞으로 젖히고 그 하부의 부품을 점검하던 중 젖혀놓은 운전석을 고정한 볼트가 예기치 않게 빠져 운전석이 내려앉아 발생한 사망사고다. 그런 상황들에 대비해서 자체 안전규정에는 운전석의 낙하를 방지하는 안전조치가 명시돼 있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위반은 일상화돼있다.

규정과 현장 사이의 간극

사고 예방을 위한 기업의 규정은 법규와 안전보건기술지침(KOSHA GUIDE) 보다 좀 더 구체적인 조치들로 돼있다. 그러나 그 조치들이 현장에서 항상 이행되지는 않는다.

규정을 정할 때 현장의 구체적인 작업 조건 또는 환경에 대한 반영이 불충분했거나, 반영됐더라도 현장의 작업 조건 및 환경이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정해진 규정을 적용하기가 불가능하거나, 불합리한 상황이 되어버린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을 계속 방치하면 위반이 당연시되고 일상이 된다.

안전조치는 자주 발생하는 일이 아닌,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비다. 게다가 인간의 지름길 본성은 안전조치가 효율성에 방해가 되면 위반을 더욱 빠르게 합리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규정이 현장의 작업 조건과 환경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해서 규정을 합리적으로 수정하거나, 준수를 강화함으로써 규정과 현장의 간극을 좁혀가야 한다. 지켜지지 않을 조항은 폐지해야 한다. 다른 위반의 빌미가 된다.

이것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정한 각종 점검의 핵심이다. 점검을 통해 정해진 규정과 현장 간의 간극을 좁힘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작동하도록 유지·보수해야 한다. 시행령에서 정한 점검으로 현장에서 놓친 위반사항을 찾아 시정하는 것은 '추수 후 이삭줍기'에 불과한 자원낭비다.

불합리한 행정이 위반 가속화

앞서 언급한 사고발생 기업의 여러 공장 가운데 한 공장 안전책임자에게 수년 전에 들은 얘기다. 부적절한 산업안전 감독으로 인해 생산관계자들에게 안전규칙의 준수를 강조하기가 어렵게 됐다는 내용이다.

안전규칙에는 작업발판 재료 간의 간격 기준이 3cm 이내였는데, 현장의 어느 특정 위치에서 그 간격이 1cm 정도 초과한 부분이 적발되어 과태료가 부과됐다는 것이다. 감독 시에 행정상의 하자는 없었지만, 이런 사례는 현장 관계자들로 하여금 산업안전 행정을 크게 불신하게 만들고 산업안전 규칙 준수 의지를 꺾어버리고 만다.

중대재해처벌법 집행과정에도 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 사고의 수사과정에서 법규를 불합리하게 확대해 위반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안전규칙 제38조의 작업계획서가 대표적인 사례다.

안전규칙은 사회 이슈가 되었던 사고들이 발생될 때마다 덧붙이기 위주의 제·개정을 거치면서 각 조항 간의 중복, 균형, 구체화 정도의 전체적인 일관성이 부족하게 된다. 선언적인 조문과 포괄적인 조문, 구체적인 조문이 혼재되어 있다. 안전규칙은 완벽히 준수할 수도 없지만, 설사 다 준수하더라도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없다.

법규·규정 현장 변화를 반영해야

이러한 측면을 논외로 하더라도 제38조의 작업계획서 작성의무는, 조문의 맥락과 내용으로 볼 때 일정 규모 이상인 위험한 작업에 해당되는 의무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사고 발생 시 수사기관에서 정확히 위반을 적용할 조항을 찾을 수 없는 경우에 이와 같은 포괄적 조항을 비현실적으로 확대해석하여 위반으로 적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사법부의 판단에 작동하는 객관성과 합리성을 고려하면 처벌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양동이로 물을 몇번 퍼나르는 작업도 작업계획서를 작성하라는 것인가라는 볼멘 반문들이 여기저기 일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걸 보면 수사과정에서의 무리한 적용은 현장의 심각한 자원 낭비를 조장하거나, 안전을 운수소관으로 여기게 만들어 해당 조항의 위반을 일상화시키는 원인이 될 것 같다.

법규와 기업의 규정이 현장에서 지켜지고 합당하게 적용되려면, 현장의 상황들을 지속적으로 세밀하게 살피면서 합리성과 현실성에 따라 보완해가야 한다. 이것이 정부와 경영책임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법규는 제정보다 현장의 변화에 따르는 개정이 더 절실하게 요구된다. 문득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는 솔로몬의 잠언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