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갑질 하청노동자

직장인 88%, "노란봉투법 올해 정기국회 통과를"

2022-11-15 10:33:38 게재

직장갑질119 '원청 갑질과 손해배상 특별 설문조사' … 45% '하청노동자 위한 법', '불법파업 조장 법' 17%

#. 원청 직원이 밀폐공간에 있는 설비를 교체해 달라기에 가스경보기가 울리니까 조금만 있다가 교체하겠다고 했더니 "어차피 계속 가스가 차 있는데 그럼 일 안 하실 거예요?"라고 말했어요.

#. 현장 작업 전에 위험요소를 찾아 산재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조치에 대해 말했더니 "지금까지 다친 사람은 없었어요"라며 무리한 작업을 지시했어요.

#. 학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입니다. 교내에서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앉을 수 있는 잔디밭에 우리는 앉을 수 없어요. 학교는 '잔디밭에 앉아 잔디가 훼손되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했어요.

#. 태풍으로 모든 대중교통이 중단된 상태였어요. 원청 직원은 9∼11시 자율출근이지만 하청업체 직원들은 9시 정시 출근하라고 통보했어요.


'비정규직 이제그만'이 9월 14일부터 20일까지 단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에서 '원청 갑질' 주관식 사례다. 이 같은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원청 갑질'은 일상이 됐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원청 사용자의 책임 강화와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78.7%는 '원청 갑질'을 경험·목격했다고 조사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14일 서울 종로 광화문 필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원청 갑질과 손해배상 특별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는 10월 14일부터 21일까지 1주일간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경제활동인구조사 취업자 인구 비율에 따라 실시했으며 표본오차는 95%에 신뢰수준은 ±3.1%p다.


◆원청교섭 이뤄졌으면 장기파업 없었다 =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8.1%는 노란봉투법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노동자의 범위와 사용자의 책임을 확대하는 노조법 2조 개정에 대해서는 89.4%가,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노조법 3조 개정에는 79.0%가 동의했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0.3%가 '모른다'고 답했다.

설문조사 분석에 참여한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 대다수가 노조법이 새로운 노동환경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인식했다"면서 "노란봉투법을 잘 모르더라도 원·하청 관계에서 원청회사가 손해배상을 악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노란봉투법에 대해 '하청 노동자를 위한 법'이라는 응답이 44.5%로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법'이라는 부정적인 의견(17.1%)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38.4%였다.

올해 발생한 원·하청 노사관계 갈등 사건에 대해 응답자의 다수가 알고 있었다. 실생활과 관련돼 있는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파업에 대해서 88.6%가 알고 있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이나 연세대 청소노동자 파업에 대해서도 60% 이상이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82.7%는 '원·하청 노사관계 갈등 상황에서 정부가 역할을 잘못했다'고 응답했다. 51일간 진행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파업사태에 대해 응답자의 79.4%는 '원청이 교섭에 참가했으면 장기간 파업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 교수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등에 정부가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닌 땜질식 처방을 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며 "대다수 직장인이 하청노동자의 파업을 막고 노사관계 안정화를 위해 원청회사가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14일 서울 종로 광화문 필원에서 열린 직장인 1000명 원청갑질 특별설문조사 발표회에서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직장인 78.7% '원청 갑질' 경험·목격 = 직장인 대다수는 원청업체로부터 갑질을 당하거나 목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청회사의 갑질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 있다는 답이 78.7%에 달했다.

갑질 형태 유형으로는 임금(기본급·성과급·상여금·격려금) 차별이 62.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위험하거나 힘든 일을 비정규직에 전가(56.3%) △원청 직원보다 적은 휴가 일수(52.3%) △명절 선물 다르게 지급(50.6%) 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는 '참거나 모른 척했다'가 53.7%로 가장 많았다. '회사를 그만뒀다'는 응답도 21.1%에 달했다.

직장인들은 원청회사의 하청회사에 대한 갑질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90.8%는 '하청회사를 상대로 한 원청회사의 갑질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원청의 갑질 종류에 대해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납품단가 인하하는 경우'와 '임금차별'을 21.7%로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휴가·복지시설 이용이나 노동조건 차별(18.5%) △위험한 업무 하청노동자에게 전가(16.3%) △정당한 이유 없는 기술자료 요구(10.9%) △원청이나 원청 관리자의 직장 내 괴롭힘(8.7%) 등이 뒤를 이었다.

원청회사의 갑질을 예방하기 위한 최우선 방법으로 '원청 갑질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26.1%로 가장 많았다. 이어 '원·하청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19.6%) 등의 순이었다.

◆법원, 쟁의행위 정당성 좁게 해석 = 하청을 상대로 한 손배가압류의 현실과 설문결과를 분석한 신하나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손해배상·가압류가 초래하는 중압감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훼손되고 노동자가 헌법상 기본권 행사를 감히 상상할 수 없도록 만든다"며 "특히 법원이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좁게 해석함으로 인해 노조법 제3·4조의 입법 취지를 몰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와 정부는 본 설문조사가 시사하는 바를 면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청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이날 함께 발표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원청 갑질' 사례에서도 잘 나타났다.

비정규직 문제 당사자를 중심으로 한 단체인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비정규직 이제그만)은 9월 14일부터 20일까지 비정규직 노동자 2074명(응답률 76%)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주관식) 결과도 발표했다.

'경험하거나 목격한 원청 갑질 사례를 적어달라'는 문항에 '회사에서 돈을 아끼려고 의자, 책상, 작업 테이블 등 원청에서 쓰다가 버리는 것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용한다' '위험을 감지한 하청노동자가 개선을 요청해도 무시하며 강제로 파견시킨다' '기계가 돌아갈 때 작업을 지시했다' 등의 호소가 줄을 이었다.

원청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위험업무 강요, 폭언·모욕은 물론 대리운전·안마 강요 같은 부당 지시를 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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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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