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베 수교 30년, 더 나은 미래 위한 협력원칙 정해야

2022-12-02 11:15:54 게재

교역액, 4.8억달러에서 2021년 807억달러로 160배 증가 … 베트남은 30년 미래 함께할 동반자

아세안면을 신설하며…
위기가 닥치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개인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며 우리나라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세안(ASEAN. 동남아국가연합)과 인도 등 남아시아가 재조명 되고 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은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의 제2의 무역상대국이다. 이들 국가와 협력의 강화 속에서 미중경쟁 위기 극복의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무엇보다 상대를 알아야 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민들도 서로를 잘 이해하는 게 관계개선의 첫걸음이라 믿는다. 내일신문은 아세안면을 신설해 매월 두차례 아세안 소식을 전한다. <편집자 주>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전략실장

2022년 12월 한국과 베트남은 수교 30주년이 됐다. 1992년 12월 22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양국은 경제 분야뿐 아니라 사회·문화, 정치·외교 분야의 협력도 꾸준히 전개해 왔다.

양국 관계의 가장 큰 성과는 경제 부문이지만, 양국이 활발하게 교류하는 현 시점에서 경제적 성과에만 의존해 양국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더욱 넓은 시야에서 지난 30년 동안의 양국 관계를 평가하고 다가올 30년에 대한 시금석을 정립해야 한다.

양국은 고위급 교류와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를 격상하며 서로에 대한 가치를 높여왔다. 2001년에 양국은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고, 2009년에는 협력의 폭을 넓혀 정치·안보 및 지역·국제 현안에 대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양국이 직면한 국제 경제 환경 = 1992년 수교 당시만 해도 양국 교역액은 4억8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기업의 베트남 직접투자가 급증하면서 2021년 양국 교역액은 수교 당시보다 160여배 증가한 807억달러를 돌파하였다. 그 결과 베트남은 한국의 4대 교역 상대국 중 하나가 되었고, 한국은 베트남의 3대 교역 파트너이자 1위 투자국이 되었다. 경제협력의 성과는 정치· 외교, 사회·문화 부문의 협력 수준을 높이는 기폭제가 되었고, 정치·외교적으로 특별한 불협화음 없이 지난 30년을 원만하게 양국 관계를 유지했다.

최근 한국과 베트남이 직면한 국제 경제 환경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양국 모두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위해 확장한 유동성과 공급망 불안정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물가상승으로 이어졌다. 물가 안정을 위해 취해진 미국의 금리인상은 신흥국의 금융시장 불안을 가중하고 있다. 상호 보완적 관계에 기반해 성장한 한국과 베트남은 양국 관계를 한 단계 격상하고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조력자로 서로를 여기고, 당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함께 모색할 때다.

박진 외교부장관(가운데)이 8월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베트남 수교 30주년 및 제77주년 베트남 국경일 기념 리셉션에 참석해 행사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한-베트남 의원친선협회 회장인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손경식 경총 회장, 박 외교장관, 응우옌 부 뚱 주한베트남대사 내외.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2022년 9월 현지조사에서 만난 베트남 외교부 관리는 양국관계가 동맹으로까지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국의 체제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실현성이 떨어지는 의견이지만, 베트남 관료 입장에서 한국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양국관계 진전 장애요소 해소 노력 = 양국 관계를 고도화하고 새로운 협력 모델을 형성하려면 현재 상황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우선 필요하다. 양국 관계의 본 모습을 감추기보다는 민낯을 드러내고 문제가 있으면 개선하고 잘하는 점이 있다면 이를 더욱 북돋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까지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이 과정을 회피해 왔다. 하지만 다가올 30년의 양국 관계가 올곧고 굳건하게 발전하려면 양국 관계의 도전 과제를 검토하는 활동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경제 부문의 성과로 다른 부분의 문제점이 저절로 해소될 거라는 기대는 양국 관계의 지속가능성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

양국의 경제·사회·문화·외교 등 모든 부분이 서로 보완적으로 엮여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정 부문의 성과에 현혹되어 미진한 부분을 눈감는다면, 그 문제점이 기존의 성과마저 잠식하는 상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우주 왕복선 콜롬비아호는 아주 작은 부품인 오링(O-ring)의 결함으로 인해 공중에서 폭발했다.

생산요소의 보완관계를 연구해온 노벨상 수상자 마이클 클레이머 교수는 보완적으로 작동하는 생산요소 가운데 하나가 잘못되면 전체 생산이 0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과 베트남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시너지를 내며 양국이 성장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완관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양국 관계의 진전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발굴하고 이를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양국 관계의 도전 과제를 거리낌 없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정품목 비중 급속히 증가 = 먼저 경제 부문의 협력에 있어 특정 품목에 집중된 교역 구조의 해소가 필요하다. 한국의 대베트남 직접투자는 2000년대에는 섬유봉제업 중심의 저부가가치 노동집약적 산업에 집중된 반면, 2010년대에는 전기·전자 산업을 중심으로 한 중고위 기술 산업으로 전환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부가가치가 높은 중고위 기술이나 고위 기술 산업에 대한 한국의 대베트남 직접투자가 증가했고, 한국은 베트남으로부터 중간재 수입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양국 관계가 공급망으로 더욱 긴밀하게 연계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양국 교역에서 특정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증가했다. 2010~15년 사이 한국의 대베트남 총수출에서 대베트남 5대 수출 품목(MTI 3단위 기준)이 차지하던 비중은 36%였는데 2016~22년 기간 이 비중은 55%로 증가했다. 한국의 대베트남 수입에 있어서도 5대 품목을 기준으로 동기간을 비교하면 45%에서 55%로 증가했다. 교역에 있어 특정 품목의 쏠림현상은 특정 국가로의 쏠림만큼이나 공급망의 안정성 면에서 우려를 낳는다. 특히 양국이 더욱 공급망으로 연계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쏠림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주베트남한국대사관이 11월 21일 하노이 호찌민정치아카데미 대강당에서 국립외교원과 함께 한·베 수교 30주년 기념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고 22일 밝혔다. 사진은 축사하는 주베트남한국대사관 오영주 대사. 하노이=연합뉴스


둘째, 수교 이후 양국 간 인적교류는 눈에 띄게 증가했지만, 경제 부문의 협력에 비해 사회·문화 부문과 외교·안보 부문에서의 협력은 상대적으로 지체되었다.

양국 관계의 고도화는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외교 등 양국 관계를 규정하는 모든 면에서 협력이 고도화됨을 의미한다. 어느 한 부문의 지체는 결국 양국 관계에 예상 못한 갈등을 가져와 다른 부문의 지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문화적 유사성은 한국과 베트남 국민 간의 친밀감을 상승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렇지만 이를 사회 분야의 협력 수요로 전환하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민간 기업의 투자 및 진출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협력 부문 간 불균형적인 협력은 경제 협력의 성과를 다시 퇴행하게 만들 수 있다.

도전과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협력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양국은 협력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원칙에 입각한 협력은 오해의 여지를 최소화할 수 있고, 이는 다시 높은 수준의 신뢰로 이어진다. 필자는 협력원칙으로 다음 네 가지를 안으로 제시한다.

◆상호 호혜적 발전 토대 마련해야 = 첫째, 양국은 상호 호혜적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일국의 이익만이 아니라 베트남의 발전이 한국에 도움이 되고 한국의 발전이 베트남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둘째, 양국은 투명한 제도를 수립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투명하다는 것은 상대국의 제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제도적 차이를 감추기보다는 조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상호 문화에 대한 포용성을 강화해야 한다. 소위 한류라는 조류에 휩쓸려 한국 것이 최고인 양 여기기보다는,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해야 한다. 한류가 한류로 끝나지 않고 베트남 문화 속에서 지속가능하려면 베트남의 문화를 한류 속에 녹여낼 필요가 있다.

한류가 베트남 문화뿐 아니라 아세안의 다양한 문화를 포용할 때 한류는 '아세안류'가 되고 '글로벌류'로 승화할 수 있다. 한국의 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에 묶여 있는 한 세계 속에서 다수의 문화 가운데 한 지류(支流)일 뿐이다. 배타적 틀 속에서 상대국 문화를 바라보기보다는 동일한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포용의 시각이 필요하다.

넷째, 양국은 국제사회 속에서 서로에게 책임 있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책임'은 다름을 존중하는 공존성과 실현 가능성을 내포한다. 즉 양국이 서로를 책임 있는 동반자로 인정할 때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고, 장기적으로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다.

한국이 베트남에 많은 시혜를 베풀었으니 양국 관계를 주종관계로 인식하는 사고는 잘못된 것이다. 일본은 지난 30년 간 한국보다 8배 이상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베트남에 공여했고, 프랑스와 독일도 한국보다 많은 ODA를 공여했다. 한국기업이 베트남에 투자함으로써 베트남 성장에 일정 부분 기여했지만, 한국기업도 베트남 진출을 통해 유형·무형의 이익을 얻었다.

한국-베트남 수교 30년이 되는 올해, 양국은 글로벌 대전환기를 헤쳐갈 파트너이자 다가올 30년의 미래를 함께 건설할 동반자라는 점을 다시 인식하고 새롭게 협력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