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남식의 중동 톺아보기

시진핑의 사우디 방문과 빈살만의 거친 게임

2022-12-15 11:55:51 게재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아프리카중동연구부장

12월 7일 중국 시진핑 주석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3연임 확정 이후 국빈으로 방문하는 첫 나라였고, 사우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최근 거침없는 대외 행보와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미중 전략경쟁이 깊어지는 와중에 전통적인 친미 우방국 사우디가 시진핑을 어떻게 맞이하고, 무엇을 약속할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사흘간 일정으로 리야드를 방문한 시진핑은 도착 이튿날 살만 국왕, 빈살만 왕세자와 각각 회담을 가졌다. 이어 15개 아랍국가 정상들과 제1차 중국-아랍정상회의, 걸프 6개 산유국 정상들과도 합동회의를 개최하는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물론 핵심은 다자 정상회의보다는 사우디와 중국 두 나라 간의 협력 의제에 모아졌다.

양국이 발표한 성과는 묵직하다.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를 심화해 2년마다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실질 협력으로는 사우디 왕세자의 야심찬 국가개조 프로젝트인 비전 2030과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엮어서 협력하는 구상을 발표했다. 에너지, 첨단기술, 건설-토목 인프라 등 총 38조원 규모의 34개 공동투자도 합의했다.

의전도 화려했다. 시진핑이 탑승한 항공기가 사우디 영공에 진입하자 사우디 공군 전투기 편대가 공중에서 영접하며 호위 비행을 했다. 빈살만은 환한 웃음으로 시진핑을 맞아 환대했으며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고 전해진다. 한마디로 사우디와 중국이 깊은 친구가 되었음을 과시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바이든은 홀대, 시진핑은 환대한 빈살만

금번 방문이 여느 정상회담보다 눈길을 끄는 이유는 따로 있다. 시점 때문이다. 오랜 우방 미국과 사우디 관계가 삐걱거리는 와중에 마치 미국과 국제사회에 보란 듯 개최되었다는 점이다.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 방문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당시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한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던 바이든은 사우디로 직접 날아갔다. 결이 맞지 않는 빈살만과의 만남이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 직접 빈살만에게 원유 증산을 요청했다. 그러나 면전에서 거절당했다.

뿐만 아니다. 왕실 연루설이 파다한 언론인 카쇼크지 살해 사건에 관해 바이든이 회담 모두에 언급하자, 빈살만은 이라크전쟁 당시 미군의 아부그라이브 수감 포로 인권탄압 문제로 맞받아쳤다. 이 정도면 참사에 가까운 회담이었다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장면이다. 그만큼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악화일로임에 틀림없다.

구조의 변화 때문이다. 냉전 해체, 9.11과 테러와의 전쟁 국면에서 시작된 미국의 중동 관여가 약화되어 떠나는 국면과 맞물렸다. 작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전격 철군을 보면서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는 불안했을 법하다. 이와 함께 석유와 안보의 교환을 축으로 해왔던 양국 관계에서 석유의 전략적 가치가 변화한 것도 큰 이유다. 셰일혁명으로 중동산 석유에 더 이상 의존할 필요가 없는 미국이다. 오랜 석유 공급자 사우디의 퇴행적 통치 행태를 마냥 용인할 까닭이 없었다. 특히 카쇼크지 살해사건 등 사우디의 인권탄압 문제나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한 예멘 내전 개입 등에 관해 미국은 신랄한 문제제기를 지속해왔다.

바이든 입장에서는 중국정부의 신장 위구르 탄압이나 홍콩 민주화시위 강제진압 등을 날서게 비판해야 했다. 바이든은 정작 미국과 가장 가까운 중동의 우방국 행태가 시대착오적이라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빈살만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미국의 길들이기를 거부했다. 빈살만 자신은 향후 수십년간 권좌에 있을 사람인데, 기껏 임기 2년 내지 6년이 남은 바이든의 압박을 수용하고 싶지 않다는 투가 역력했다. 강한 반감을 피력하며 미국의 역린을 건드렸다. 중국과의 호혜협력 강화를 거창하게 내세운 것이다.

사우디가 미국과 결별할 수 있을까

일부에서는 이제 사우디가 미중 경쟁의 국면에서 완연히 미국의 품을 떠났다는 말까지 나온다. 심지어 미국 패권 붕괴의 세계사적 사건이라는 분석도 등장했다. 사우디를 필두로 과거 미국의 우방국들 중 상당수가 중국의 품에 안기는 일들이 속속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그러나 금번 시진핑의 사우디 방문이 마치 거대한 국제질서 변화의 전주곡인양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미국과 사우디 두 나라는 아직 서로에게 필요불가결한 존재다. 석유의 존재감이 달라졌기에 티격태격 하지만, 사우디에겐 여전히 안보 문제가 최우선이다. 이란 산(産) 미사일과 드론이 본토 유전과 정유시설을 공격하는 위협은 상시적이다. 미국의 방공망을 근간으로 사우디 방어체계가 구축되어 있는 상황이다. 안보 시스템을 짧은 기간 다른 국가의 것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점진적으로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 73%의 무기를 미국에서 도입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마냥 각을 세우는 것은 무모하다. 사우디가 광범위한 경제협력을 중국과 논의하고 양자관계를 심화시켜 나간다 해도 왕실 생존의 골간인 대미 안보의존도를 고려하면 한계가 명확하다.

여기에 더해 사우디 왕실 주요 인사, 정부 핵심관료 등이 구축한 대미 인적 네트워크도 고려해야 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영미권에서 유학을 하고 업무 경험을 쌓았다. 국가 운영 관련 실행 계획과 노하우는 영미권 컨설팅 회사가 주로 맡아왔다. 사우디 국부펀드에 해당하는 공공개발기금의 투자나 아람코 운영 등도 영미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인적 지적 물적자산을 단기간 내에 중국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만만치 않은 일이다. 친중 노선으로의 급격한 전환 또는 기계적 중립외교는 현실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는 이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왕세자는 왜 미국에 대해 모질게 굴고, 중국에 대해서는 환대 일색이었던 것일까? 왕세자는 미국과의 절연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고 또 그렇게 할 의도도 없을 것이다. 다만 국제사회의 질서가 변화되어가는 시점에 미국의 요구에 더 이상 과거처럼 순종적으로 반응하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읽힌다. 한마디로 미국과 밀고 당기는 자존심 게임을 하면서 중국을 도구로 활용하는 구도가 아닐까?

중국 활용해 미국에 할 말 하겠다는 의도

빈살만 자신은 선대와는 달리 국가를 개조해 새로운 왕국을 이끌어야 한다는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왕국의 안보를 책임져주는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을 하고 선을 그을 부분은 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바이든이 인권과 가치 문제로 미래권력인 왕세자를 길들여 미국의 우방으로서 명분을 갖게 하려 하지만 굳이 거기에 반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젠 미국이 사우디의 역내 영향력을 인지하고 왕세자의 요구를 받아야 한다는 신호를 서로 세게 주고받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사이가 나빠진 커플이지만 손익관계를 계산하면 결코 결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 자기가 옳다고 싸우는 그림 아닐까?

빈살만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협력 확대가 나쁘지 않은 카드다. 실익도 취하면서 미국을 묶어둘 수 있는 선택지로 보는 듯하다. 관건은 어디까지 치고나갈 것인가이다. 워낙 독단적이고 즉흥적 의사결정으로 유명한 빈살만이기에 상황에 따라 선을 넘을 수도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두 개의 판별식이 있다. 논의된 여러 협력 사안들 중 중국은 사우디 및 걸프산유국의 석유 판매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는 데 관심이 크다. 동시에 사우디 내 여러 메가프로젝트에 화웨이 정보통신망을 구축하고 싶어한다. 미국이 사활을 걸고 막으려는 일이다.

페트로달러체제 유지와 중국 정보통신망의 확산 방지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미국과 사우디 관계가 본격적으로 해체되기 시작하는 국면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단 아직은 더 관망할 때다. 지금은 빈살만과 바이든의 길들이기 게임이 진행중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