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건설사 입찰비리, 재판서 유죄인정
2022-12-16 16:25:03 게재
국내 최대 울산 방파제 공사 심의위원 로비
위원 지인 업체 하도급 지원 약속, 지속 회유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4단독 신혁재 부장판사는 최근 제3자뇌물약속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토교통부 중앙건설심의위원회 항만분야 위원 A씨에 대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A씨에게 금품 제공을 시도하거나 편의를 봐주려한 한 대형건설사 임원 B씨에 대해서는 뇌물공여의사표시와 뇌물공여약속 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경찰과 검찰에 따르면 2017년 울산지방해양수산청은 울산신항 남방파제 2-2공구 입찰 공사를 턴키방식으로 발주했다. 울주군 해상에 1300m 길이 방파제를 축조하는 대규모 관급공사로 공사기간만 73개월, 공사비는 3400억원이 넘는 대형공사다.
국토부 중앙건설심의위는 각종 관급공사 입찰 심사를 담당하는 전문가 집단을 말한다. 당시 국토부는 A씨를 비롯한 설계 심의위원 13명을 선정했다. 입찰 과정을 거쳐 이 건설사 컨소시엄이 공사를 수주했다. 이듬해 수주 비리 의혹이 제기됐다. 심의위원에게 금품이 오고간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해양수산부 지방청에서 과장급으로 재직하다 퇴직한 A씨는 2017년 항만분야 심의위원으로 선정된 후 동문 후배인 대형건설사 직원 C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우리 회사 임원이 찾아뵙는다. 잘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회사 임원은 함께 재판에 넘겨진 B씨였다.
같은 회사 임직원인 B씨와 C씨는 A씨를 수차례 찾아왔다. 이들은 수백만원의 금품과 각종 홍보자료를 전달했지만 A씨는 모두 거부했다.
이들은 A씨가 우호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뒤 더 적극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건설사는 2015년부터 부외자금(비자금) 조성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 사실이 알려져 대규모 관급공사 입찰에 참여하지 못했다. 2017년 상반기에는 관급공사 턴키입찰에서 한건도 수주받지 못했다. 매출 하락은 물론 인원 감축 등 어려움을 겪고 있어 방파제 공사 계약이 절실했다.
B씨와 C씨는 심의위원 선정 전부터 집요하게 A씨 '관리'에 들어갔고 4달여간 수차례 접속했다. 2017년 6월 C씨는 A씨를 찾아가 "회사에서 1억원을 베팅하라니까 받으시고, 회사가 낙찰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제안했다. 역시 A씨는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C의 요청이 거듭되자 A씨는 "(알고 지내던) D사가 도와달라고 했는데 한번도 못 도와줬다. 공사를 수주하면 D사를 참여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턴키방식은 설계점수와 가격점수를 합산해 낙찰자를 선정하지만 대부분 설계평가에서 당락이 엇갈린다. 이 건설사는 바로 D사와 공사수주 관련 각서를 작성했고, 이를 A씨에게 보여준 뒤 다시 청탁을 했다.
결국 항만공사는 해당 건설사가 낙찰받았지만 D사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았다. D사가 높은 견적을 부르자 터무니없다며 계약을 하지 않았다.
A씨는 법정에서 "직접 뇌물 의사표시를 하거나 묵시적으로 동의한 적 없고, 각서 내용도 모른다"고 주장했지만 신 부장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 부장판사는 "공사수주가 절실했던 B씨는 A씨가 로비를 거절하자 구두로 하청을 주겠다는 약속에 그치는 관행과 달리 공사 액수와 항목을 기재한 각서를 작성했다"며 "A씨와 B씨 사이에 확정적 뇌물공여 약속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관행을 깨고 서류라는 '증거'를 남긴 것은 대형건설사가 공사 수주에 절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 부장판사는 "A씨는 공무집행 공정성에 대한 일반인 신뢰가 크게 훼손돼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득하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B씨의 범행을 도운 부하직원 3명에 대해서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물론 A, B씨도 1심 판결에 불복했고, 2심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가 심리할 예정이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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