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말하는 산재예방 ⑫

정책보다 중요한 집행의 메시지

2022-12-27 10:56:31 게재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2014년에 산재 사고사망율이 전년대비 18.3%p, 태안화력 고 김용균씨 사고 여파로 2019년은 9.8%p 줄었다. 두 해의 경우, 특정 사고로 형성된 사회적 메시지가 미미한 감소세에 있던 사고사망율을 크게 줄였다.

기업은 생존 차원에서 사회적 메시지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그 결과 올해 초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은 관련 분야의 인력수요를 크게 증가시켰다. 기업이 움직이고 있다. 이제 이와 같은 컨벤션 효과를 정부가 실질적인 중대재해 감축으로 이어가야 한다.

때 맞춰 정부는 각계의 의견들을 반영해 2021년 0.43인 사고사망만인율(1만명 당 사고사망자 비율)을 202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0.29를 목표로 하는 중대재해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날씨와 기후

특정 일자, 특정 위치의 날씨는 아직 조절할 방법이 없다. 날씨는 많은 기상 변수들의 민감한 조화여서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수집한 데이터를 전산장비로 해석한 일기예보 정도다.

그러나 기후의 경우는 다르다. 기후 현상인 지구 온난화가 인류의 생존에 중요한 변수임을 지각하고 전 인류적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 탄소중립, 더 나아가 재생에너지 개발 등의 대책을 통해 온난화의 속도를 늦추려 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개별 날씨의 전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산업재해도 이와 유사하다. 개별 사고는 날씨와 같이 많은 요소들이 간섭, 조합된 결과여서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안전확보가 생산현장 내 모든 작업의 전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법과 정책 집행을 통해 안전제일이 표어가 아닌 기업의 규범이 되도록 하는 경영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항간에 중대재해법 시행 1년이 다되어 가는데 "시행 전에 비교해 중대재해 감소가 미미하다"라는 섣부른 얘기가 있다. 섣부른 판단에 앞서 법과 정책의 집행이 어떤 메시지를 내어놓고 있는가를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시간 준수 확인을 위주로 하는 안전보건교육 규제가 오히려 교육을 형식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집행의 메시지를 간과한 규제는 현장의 안전실무를 사고예방보다 증빙서류 작성에 매몰시킨다. 따라서 법과 정책 집행은 그 메시지를 섬세하게 돌아보지 않으면 사회적 이득보다 손실을 키우게 된다.

도박꾼의 오류

동전 던지기 내기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동전의 앞면이 연속 3번 나온 후에 당신은 어디에 걸겠는가? 당신은 아마 나와 마찬가지로 뒷면에 걸 것 같다. 이것이 일반적인 판단 오류 중 하나다. 동전을 한번 던져서 앞 또는 뒤가 나오는 것은 우연이 결정하는 독립사건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와 같은 사건에 확률을 고려한다. 확률은 '큰 수의 법칙'을 따른다. 즉 던지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 전체의 결과가 앞, 뒤 각각 1/2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런 보편적 오류가 도박꾼들을 도박판에 떠나지 못하게 붙들어 불행한 결과를 맞게 한다.

사고 발생 기업에 대해 관계 공무원이 화를 내기도 하고, 국회와 정부에서 기업경영자를 호출해서 추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공공분야의 이런 응징적 대응에는 도박꾼의 오류와 유사한 심리적 오류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해당 기업이 사고 경향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사고가 예측 가능하거나 작위적 결과라면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다.

사고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표본의 양이 국가 수준 정도가 아닌, 개별 기업 단위에서 사고 경향성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관련법을 집행하시는 분들의 순수한 열정과 본심이 화 또는 부적절한 추궁으로 인해 부당한 편익을 바라거나, 권한 또는 성실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곡해돼 규제의 당위성을 훼손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정부의 목표 달성은 사고 사망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근로자 수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고 예방이 관건이다. 그러나 그에 해당하는 270만여개의 사업장 수는 정부의 직·간접 개입이 어렵기도 하고, 개별 사업장 입장에서는 1000년에 1번도 되지 않는 사고 확률 때문에 능동적 참여가 쉽지 않다. 안전이 사회적 규범으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의 성공을 응원합니다. 그러나 안전을 우선하지 않으려면 사업하지 마세요"라는 분명한 사회적 메시지를 법과 정책 집행으로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