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성취평가제

성취평가제가 고교학점제 성패 '갈림길'

2023-01-18 10:43:46 게재

2025년 선택 과목에 전면 적용 … 1등급 변별에 치우친 상대평가 바뀔까

고교학점제가 2025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공통과목을 수강한 후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해 졸업하는 제도다.
교육부는 성취평가제 전면 도입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새 개정 교육과정은 주로 고교 1학년이 수강하는 공통과목의 경우 9등급 상대평가와 성취평가를 함께 시행하고 주로 2·3학년이 수강하는 선택과목은 성취평가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해 원하는 수업을 듣도록 한 고교학점제 취지에 맞춰 공통과목도 성취평가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한편에서는 내신 부풀리기와 외고·자사고 쏠림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 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고교학점제의 성패를 가를 성취평가제, 핵심 쟁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는 2025년까지 모든 선택과목에 대한 성취평가제 확대 도입을 예고했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학생들은 학점 이수를 위해 수업 시간의 2/3의 출석 외에도 각 과목이 요구하는 최소 성취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3년간 누적 학점 192학점 이상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면 고교 졸업 자격이 주어진다.

현재 진로선택 과목에 우선 도입된 성취평가는 A·B·C 3단계 성취도로 평가된다. 과목별 성취도와 함께 원점수, 과목 평균 및 성취 수준별 학생 비율로 성적이 산출되는 방식이다(표 1).

고교학점제 하에서는 모든 선택과목이 석차등급 없이 A·B·C·D·E 5단계 성취도로 평가된다(표 2). 성취율을 기준으로 A는 90% 이상, B는 80%~90% 미만, C는 70% 이상~80% 미만, D는 60% 이상~70% 미만, E는 40% 이상~60% 미만이다.

이때 성취 수준 E를 받은 학생까지는 과목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하지만 40% 미만의 성취율을 보이면 해당 과목은 미이수, 즉 'I(Incomplete)'로 처리된다. 대학에서 미이수 과목에 통상 부여하는 F학점과 같은 의미다. 학교는 진단평가나 학습 관리 등을 통해 미이수 예방에 중점을 둬야 하며 미이수가 발생하는 경우 보충 이수를 원칙으로 하되 대체 이수도 가능하다.

◆이미 시행한 성취평가제 유명무실 = 성취평가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2011년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이 발표되면서 2012년 중학교와 고등학교 전문 교과에 성취평가제가 도입된 것을 시작으로 2014년에는 고등학교 보통 교과까지 도입됐다. 그러나 대학 입시 문제가 첨예한 고등학교에서는 현실적인 이유로 상대평가 방식인 석차 9등급제가 여전히 공존했다. 성적표에 성취도와 석차등급이 함께 표기되지만 대입에서는 석차등급이 주로 활용되면서 성취평가제가 어느 정도 안착된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에서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어려웠다. 사실상 유명무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학생들이 상대평가로 인해 이수자 수에 따른 성적 유불리를 고민하지 않고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인정하려면 온전한 성취평가제는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고등학교 과목 체계를 재구조화한다. 일반 선택과목과 진로 선택과목에 더해 융합 선택과목이 새롭게 도입된다. 확대된 선택과목 전반에 도입될 성취평가제 개선안이 필요하다.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에도 1학년 때 배우는 공통과목은 상대평가인 석차 9등급을 병기하게 되어있지만 공통과목에 대한 성취평가제 적용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취평가제 확대되면 내신 부풀리기 재연 우려 = 성취평가제가 확대되면 일선 학교에서 무더기로 높은 성취도를 매긴 과거의 성적 부풀리기가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른다. 1995~2004년 절대평가를 도입했을 당시 이런 문제 때문에 대학들이 내신성적을 불신, 입학 전형에서 내신 반영률을 줄이는 등 혼란이 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12월 낸 '고교학점제도입에 따른 성취평가제 개선 방안'을 보면 최근 3년 동안 고등학교 성취평가 결과를 조사한 자료가 있다.

일반고 사례를 보면 전체적으로 A와 E 수준 비율이 다른 성취 수준에 비해 많은 편이었다. 고정 분할 점수 산출 방법에 비해 단위 학교 산출 분할 점수 방법에 의해 산출된 A와 B의 비율이 많았다. 대체로 C와 D 수준의 비율이 다른 수준에 비해 적은 편이었지만 단위 학교 산출 분할 점수 방법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연구진은 이 결과에 대해 "연도별로 지속적인 증가나 감소 현상이 뚜렷하지 않아 성취평가제 초기에 지적된 성적 부풀리기 현상이 우려될 정도로 과도하게 나타났거나 E 수준 비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지는 않았다"며 "성취 수준별 비율과 과목 평균을 공개하게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석차 9등급제와 병행하기 때문에 상위 등급 학생들의 변별을 위해서도 A 수준의 학생 비율을 과도하게 부풀릴 수 없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교육부, 2월 성취평가제 시행 방안 발표 = 교육부는 오는 2월 고교학점제의 핵심인 성취평가제 방식에 대해 현장의 수용 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발표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현재 예고된 1학년 공통과목의 9등급 병기를 완전한 성취평가로 전환할지 여부, 현장의 준비 정도 등을 집중 검토해 시행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현장 교사들은 진로 선택과목에 완전한 성취평가제가 들어오면서 과목 특성을 살린 다양한 학생 중심활동 수업의 여지가 생겼다는 데 공감한다. 이재호 강원 양양고 교사는 "진로 선택과목인 '심화국어' 수업을 석차등급이 산출되던 때와 성취평가로 진행됐을 때를 비교해 관찰해보니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며 "감점에 대한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나니 학생들에게 충분한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교사들의 평가 전문성을 높이고 국가와 시·도교육청 차원의 보다 정교한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등 아직 남은 과제는 많지만 학생 선택과 책임 교육을 표방하는 고교학점제가 현장에 안착되려면 성취평가제 전환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학생 수 절대 감소를 걱정하는 저출산 시대에 여전히 소수의 상위 학생들에게만 집중된 수업과 평가, 대입 전형을 고수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교육 정책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 이전 정부에서 나타난 오락가락 정책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 일관된 정책 방향 제시가 앞으로 남은 길을 헤쳐나갈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기수 기자·정애선 내일교육 기자 as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