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귀의 ESG경영

EU 지속가능성보고지침, 남의 일 아니다

2023-01-30 11:51:41 게재
김진귀 삼정KPMG 전무이사, ESG 정보공시/인증 리더

지난해 11월 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 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을 최종 승인했다.

이에 따라 EU에서는 기업들이 환경, 사회, 지배구조 측면에서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들을 상세하게 공시해야 한다. CSRD와 함께 실무적인 공시기준인 유럽지속가능성보고표준(ESRS, 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 최종안도 발표됐다.

이제 CSRD를 중심으로 ESRS, EU택소노미(Taxonomy), 지속가능경영 공시규제(SFDR, 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로 연계되는 강력한 EU 그린 딜 공시정책이 완성단계에 이르고 있다.

국내 언론도 CSRD 확정을 신속하게 보도했으나, 우리보다 ESG정책이 앞서가는 EU만의 규제로 인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은 한국기업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2028년부터는 한국 모기업도 적용

CSDR에 따르면 EU기업들은 우선 규모에 따라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한국의 EU 현지법인들이 많이 해당될 것으로 예상되는 다른 큰 그룹(Other large EU companies)은 2025년부터 적용된다. 그런데 '큰 그룹'이라는 명칭과는 다르게 해당 조건은 생각보다 작아 임직원 250명, 매출 4000만유로(약540억원), 총자산 2000만유로(약270억원) 이상 중 2개만 해당돼도 적용대상이 된다. 많은 EU진출 한국기업이 여기에 포함된다.

흥미로운 점은 2028년부터는 EU에서 실질적인 기업활동을 하는 한국의 최상위 모기업들도 적용범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현지 진출한 외국기업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모회사에 대해서도 공시의무를 부과하는 매우 이례적인 규제다.

그 대상도 엄격해서 연결그룹기준으로 EU내 매출이 1억5000만유로(약2000억원) 이상이면서, EU 내 매출 4000만유로(약540억원) 이상의 지점이나 현지법인이 있으면 적용대상이다.

더구나 ESRS의 공시요구사항은 가장 광범위하고 상세해 한국기업들은 대응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ESRS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포괄하는 12개의 기준서가 82개의 공시요구 사항과 114개의 핵심성과지표(KPIs, Key performance indicators)를 포함하고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공시체계 구축에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예상된다.

이슈는 한국 기업들이 조만간 다음 2가지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할 상황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대안1은 각 지역별 공시규제에 대응하는 것이다. 2025년부터 EU현지법인은 ESRS기준, 한국 모회사는 연결기준으로 아마도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을, 그러다가 2028년부터 한국 모회사는 ESRS기준도 대응해야 한다. 과거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전에 글로벌기업들을 힘들게 한 국가별 다중회계보고(Multi-GAAP reporting) 상황이 재현되는 것이다.

대안2는 본사 및 그룹차원에서 ESRS를 충족하는 공시체계를 구축해 ISSB 기준도 동시에 대응하는 것이다. ISSB도 ESRS를 참조할 수 있도록 기준을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EU에서는 최상위 모회사가 CSRD를 충족하는 전체 그룹연결기준의 지속가능보고서를 자발적으로 공시한다면 EU내 각 자회사들의 CSRD 공시의무를 면제해 준다. 이것은 공시 규제를 이중 관리하는 것에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기업들에게는 강력한 인센티브로써, EU 역외기업들에게도 CSRD를 확산하려는 매우 정교한 정책 세팅이다.

ESRS의 가치체인 기반 공시 요구도 부담

EU는 지속가능한 경제로의 전환을 차근차근 준비하며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독려하고 있다. 자신들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는 순간 EU 역외기업들에게는 CSRD가 강력한 규제나 장벽으로 작동되거나, 새로운 규제와 압박의 기초 데이터로 활용될 것이다. 단순히 ESRS에 따른 정보공시 부담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수직계열화를 바탕으로 한 제조경쟁력이 중요 원천인 한국기업의 입장에서 많은 환경·사회적 정보가 노출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부담이다.

이러한 고민이 해외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기업들만의 숙제로 남겨지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지원과 정부의 세밀한 정책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진귀 삼정KPMG 전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