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확장 신기술' vs '이미지도용 불과'

2023-03-08 11:20:53 게재

AI가 만든 그림 놓고 이탈리아 창작자들 논쟁 … 카메라 등장과 비견될지 관심

구글이 2017년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기인 '딥드림'을 출시했을 때 인터넷상의 즉각적인 반응은 호기심이 대세였다. AI가 그린 그림이 매우 환각적이고 몽환적이었기에 현실과의 괴리감이 컸다.

당시 일각에선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그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신경망이 개발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시기가 도래했다.

지난해부터 달리(Dall-E),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미드저니(Midjourney) 등 AI 기반 텍스트-이미지 변환 소프트웨어가 속속 출시됐다. 이들 소프트웨어는 간단한 텍스트 명령을 통해 사람이 그린 듯한 이미지를 손쉽고 빠르게 생성한다.


기자도 미드저니를 통해 4가지 이미지를 생성해봤다. 우선 '상상하라'(imagine)는 명령어 뒤에 고흐(Gogh)와 자연(nature) 밤(night) 별(stars) 산들바람(breeze) 유화(oil painting) 사람(people) 등의 주제어를 넣었다(왼쪽 위). 두번째 한국인(South korean) 분노(anger) 미국(US) 인플레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현대(Hyundai) 등을 넣고 그림을 생성했다(오른쪽 위).

세번째로 한국인 분노 일본(Japan) 전시(wartime) 강제노동(forced labour) 등의 주제어(왼쪽 아래)를, 마지막으로 한국인 물가상승(inflation) 분노(anger) 가난(poverty) 등의 단어를 넣은 뒤 그림을 생성했다(오른쪽 아래). 4개 그림을 생성하는 데 각각 10여초가 걸렸을 뿐이다.

7일 이탈리아 주간지 '인테르나치오날레'(Internazionale)에 따르면 예술가이자 철학자인 프란체스코 디사는 미드저니로 만든 이미지와 스토리를 기반으로 최근 잡지(L'Indiscreto)를 펴내기도 했다. 디사는 "이 기술은 예술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며 "AI 이미지 생성기는 카메라에 비견되는 도구"라고 확신했다.

처음 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새로운 매체가 이미지를 그토록 빨리 생성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당시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이 그림과 삽화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디사는 "사람들은 카메라의 사용법이 너무 쉬워 '버튼만 누르면 되는' 사진은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현재 사진은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적 기술적 윤리적 문제

AI 이미지 생성기는 클래식 판타지 일러스트레이션부터 미래주의 아크릴 페인팅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놀라운 품질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많은 경우 사람이 직접 그린 작품과 구분할 수 없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이 단 몇초 만에 이루어진다. 머릿속에 아이디어만 있으면 한시간에 수백장의 고화질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이탈리아 프로그래머이자 작가인 그레고리오 마기니는 "우리는 사진이나 디지털 그래픽 출현에 버금가는 혁명을 맞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혁명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아직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비평가 데메트리오 파파로니는 '갈라파고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예술가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명령어를 입력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가해지는 위험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삽화가이자 만화가인 로렌조 세코티는 "AI 이미지 생성기의 출현으로 모든 그래픽 디자인 직업이 위험에 빠졌다"고 반박한다. 그는 "새로운 기술은 예술적·기술적 문제뿐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도 제기한다"며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사용료를 받는 회사들이 이미지 제작자의 허락 없이 온라인에서 수십억개의 이미지로 제품을 학습시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드저니는 수많은 아티스트를 '알고' 있기에 그들의 스타일을 따라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미드저니가 학습한 데이터 세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학습을 마친 AI는 특정 아티스트와 유사한 이미지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이미지를 검색하지 않고 스스로 작동한다는 의미다.

로렌조 세코티는 이를 '도용'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AI가 만든 이미지를 합법화할 수 있을까. 많은 예술가들은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마추어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활동하는 대형포털 '아트 스테이션'(Art Station)에서 창작자들은 AI를 통한 이미지 생성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기술 자체에 내재된 다른 문제가 있다. 식별 불가능성이다. 미드저니 이미지는 많은 경우 사람이 만든 이미지와 구별할 수 없다. 이는 사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탈리아의 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미드저니로 몇초 만에 만든 이미지를 판매하다 적발됐다. AI가 생성한 작품으로 미술 대회에서 우승한 사례도 있다. 이 문제는 실제 인물의 이미지를 AI가 수정하는 '딥페이크'로도 이어진다. 이는 일종의 역설을 통해서만 해결될 전망이다. AI만이 AI가 만든 작품을 감지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테르나치오날레는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AI가 학습한 데이터 세트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다. 미드저니는 한번 학습하면 학습을 취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버전에서 제외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저작자를 둘러싼 질문들

텍스트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르면 AI가 저작물을 생성한다. 이를 수행하는 사람은 예술가일까, 프로그래머일까. DJ는 다른 사람의 음악을 믹싱하고 큐레이터는 전시회를 열고 데코레이터는 방을 꾸민다. 모두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기반으로 일하지만 실력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약간의 예술적 지식과 취향만 있으면 미학적으로 만족스러운 이미지 수천장을 빠르게 생성할 수 있다. 단어를 입력하면 이미지가 나타나지만 단어의 취사선택은 결과물의 품질을 좌우한다. 결국 아이디어가 좋아야 한다.

인테르나치오날레는 "가까운 미래에 AI 이미지 생성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서서히 예술가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작가의 수가 증가하고 카메라가 정교해지면서 아마추어와 전문가 및 예술가를 점차 구분할 수 있게 된 과정과 비슷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적조치에 나선 창작자들

달리와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등은 무단으로 확보한 이미지로 구성된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통해 학습한다. 점점 더 많은 예술가들이 정치적 법적 수단을 통해 AI 제작자들과 맞서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로렌조 세코티를 비롯한 프란체스코 아르티바니, 파올라 바바토, 엘레나 카사그란데, 마누엘레 피오르, 아리엘 비토리 등의 창작자들이 유럽연합(EU) 차원에서 기술기업들의 데이터 수집 방식을 규제하는 데 필요한 법적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대대적인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다. 목표액 7만유로 중 3만유로 이상을 모금했다. 이들은 전문로펌의 도움을 받아 이미지 제작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구속력 있는 EU규정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1월 13일 사라 앤더슨과 켈리 맥커넌, 칼라 오티즈 등 3명의 미국 창작자들은 "스테이블 디퓨전과 미드저니가 수백만 아티스트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미지제공기업인 게티이미지도 소송에 참여했다.

이에 대해 프란체스코 디사는 "창작자들과 게티이미지가 승리한다 해도 AI 기술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독점을 만들 것"이라며 "방대한 양의 이미지를 구매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남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사라진다"고 말했다.

인테르나치오날레도 "달리와 스테이블 디퓨전, 미드저니 등 3대 텍스트-이미지 변환 소프트웨어 회사 중 소송을 당하지 않은 유일한 회사가 달리를 출시한 오픈AI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이 기업은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이 후원한다. 경제적 정치적 힘이 적잖게 작용한 결과"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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