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CBDC(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 대중 반발도 거세

2023-03-15 11:00:49 게재

1~2년내 20여개국 출시 전망 … FT "유럽·미국서 개인정보 노출과 국가감시 등 우려 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110개국 이상이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통계에 따르면 약 85개국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CBDC) 발행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은행 싱크탱크인 '공적통화·금융기구 포럼'(OMFIF)은 최근 "설문조사 결과 20여개국이 향후 1~2년 내 CBDC를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제은행간 통신협회'(SWIFT)도 각기 다른 플랫폼에 구축된 각국 CBDC의 원활한 거래를 위해 시험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CBDC와 법정화폐 시스템을 오가는 솔루션을 개발한 SWIFT는 현재 18개국 중앙은행 및 상업은행과 협력하고 있다.

프랑스중앙은행과 도이치분데스방크, 싱가포르통화청, BNP파리바, HSBC, 인테사산파올로, 내셔널웨스트민스터은행, 캐나다왕립은행, SMBC, 소시에테제네랄, 스탠다드차터드, UBS 등이다. SWIFT는 지난 12주간 이들 은행과 공동테스트를 통해 모두 4736건의 거래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CBDC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대중적, 정치적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 "미국 비평가들은 CBDC를 '바이든 코인'이라고 조롱하고, 유럽인들은 개인정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에서는 검증된 결제앱 대신 국가가 지원하는 디지털화폐를 사용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기술적 채비 앞서 대중적 지지 필요

디지털화폐의 목표는 더 저렴하고 빠른 결제, 더 넓은 금융포용성, 암호화폐·빅테크를 대체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사생활 침해로 간주한다. 또 해당 프로젝트가 어떤 혜택을 제공할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 코넬대 국제통상정책 교수인 에스와르 프라사드는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CBDC 도입을 위한 기술적 채비를 갖추고 있다"며 "하지만 이를 밀어붙이기 전 대중적 정치적 지지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과 기업·개인을 매개하는 시중은행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CBDC로 자금이 국고로 몰리면 유동성 고갈에 직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CBDC 보유한도를 정하거나 예금에 대한 이자를 낮게 책정 또는 전혀 제공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역으로 CBDC의 보급과 확산을 저해할 수 있다.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인 하랄트 울리흐는 "CBDC가 사용되지 않는다면 당혹스런 실패가 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너무 매력적으로 만들면 은행의 수익을 잠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BDC를 출시한 국가들에서도 도입은 단편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바하마 동카리브 자메이카와 함께 일반인을 위한 디지털화폐를 도입한 4개 국가 중 하나인 나이지리아에서는 2021년 10월 출시 후 1년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0.5% 미만의 시민만 'e나이라'(eNaira)를 사용한다.

나이지리아 경제학자 모소페 아루바이는 CBDC 사용률이 저조한 이유로 시민과 정부 간의 신뢰 부족을 들었다. 그는 "사람들은 e나이라에 회의적"이라며 "책임지는 사람 없이 돈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결제앱인 알리페이·위챗의 지배력에 도전하기 위해 2020년 일부 도시에서 시범프로그램을 시작한 중국 역시 CBDC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2년 3분기 기준 민간 디지털시스템을 통한 거래액은 87조5000억위안(12조5000억달러)에 달했지만 디지털위안을 통한 거래액은 1000억위안(145억달러)에 그쳤다. 중국 인민은행 간부를 지낸 시에핑은 지난해 12월"시범운영의 결과가 영 신통치 않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화폐가 가치를 갖기 위해 널리 사용돼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BIS 혁신허브 책임자인 세실리아 스킹슬리는 "스웨덴 유통지폐가 GDP의 약 1%고 일본 유통지폐가 GDP의 20%가 넘는다고 해서 스웨덴 크로나지폐가 일본 엔화지폐보다 가치가 덜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FT에 따르면 각국 정부가 CBDC에 달려들게 된 원동력은 통화발행권에 대한 위협이다. 2019년 6월에 시작돼 지난해 1월 조용히 종료된 페이스북 주도의 '리브라 프로젝트'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의 독점적인 통화발행권한에 대한 위협을 부각시켰다. 유로존의 경우 미국 결제대기업인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지배력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이 디지털유로를 추진하게 됐다.

하지만 2021년 ECB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 시민들은 CBDC가 개인정보 보호에 미칠 부작용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초 수백명의 사람들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심가를 행진하며 '금융당국이 디지털유로를 통해 개인의 소비를 감시하고 제한할 수 있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파리경영대 부교수인 마리나 니포로스는 "유럽 역사를 보면 중앙정부가 시민의 개인정보를 오용한 충격적인 사례가 많다"며 "많은 유럽인들에게 개인정보 보호란 그 어떤 새로운 프로젝트에서도 존중 받아야 할 후천적 권리"라고 말했다.

반면 각국 중앙은행들은 익명성이 지나치게 보장되면 자금세탁 및 테러방지 노력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디지털유로 프로젝트를 감독하는 ECB 이사 파비오 파네타는 지난달 "ECB가 개인의 지급결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도록 중재안을 내겠다"고 말했다. ECB 역시 "액수가 적은 금융거래에 대해선 감시를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재무학 교수인 대럴 더피는 "그같은 조치로 안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데이터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손을 뒤로 묶을 것인가"라고 말했다.

금융 프라이버시 권리 박탈?

미국에서도 대중적 저항이 거세다. 미정부가 높은 인플레이션에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디지털달러는 온라인에서 '바이든 벅스' '바이든 코인'으로 불리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미 현금을 없애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는 허위정보가 넘친다.

경제학자이자 변호사인 짐 리카즈는 "CBDC는 더 좋고 더 빠르고 더 저렴하다고 홍보되고 있지만, 정치적 적들을 지목하고 식별하는 무기로 쓰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스턴연방준비은행과 뉴욕연방준비은행이 디지털달러 도입과 관련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지만, 일부 관계자들은 CBDC에 시큰둥한 상황이다.

연준 이사인 크리스토퍼 월러는 지난해 10월 "디지털달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재무부 국내금융 담당 차관인 넬리 리앙은 같은 해 12월 "현재로서는 디지털달러 도입 필요성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리앙 차관은 이달 "조만간 재무부와 연준, 백악관이 디지털달러 도입과 관련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CBDC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디지털달러가 저소득 가구의 결제 비용을 줄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캔자스시티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은행계좌가 없는 미국 가구의 4.5%는 현금으로 100달러짜리 청구서를 지불할 경우 많게는 12.99달러의 비용을 낼 수 있다.

BIS 혁신허브 책임자인 스킹슬리는 "CBDC는 대중들이 원하는 일부분을 충족시키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지배적인 형태의 화폐가 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계좌가 없는 사람들이 디지털화폐를 접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영국중앙은행은 "2025년 '브리트코인'(일명 디지털파운드) 도입에 대한 최종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지만, 영국 의회에선 "이미 은행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더 간단하고 목표가 분명한 방법이 있다"는 회의론이 거세다. 영국 하원 경제위원회도 2022년 "디지털파운드가 국가 감시와 같은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며 적대적인 국가와 범죄자들에게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톰 에머 의원(미네소타주)은 지난달 말 "선출되지 않은 워싱턴 관료들이 미국인의 금융 프라이버시 권리를 박탈하려 한다. CBDC를 발행하려는 그들의 시도를 막겠다"며 'CBDC 감시 방지 주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연준이 개인에게 디지털달러를 직접 제공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코넬대 프라사드 교수는 "현재 정치적 환경에서 CBDC라는 개념은 음모론적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연준이 높은 우선순위의 과제로 삼는다면, 일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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