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전원회의 '화물연대 사건' 속기록 살펴보니

"꼭 현장조사 고집할 필요 있었나" 내부에서도 격론

2023-03-16 11:20:16 게재

'격노한 대통령'에 맞춤형 보여주기식 조사?

자료제출·출석요구도 제대로 않고 현장조사

정작 본조사는 파업 철회하자 흐지부지 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에 대해 무리한 현장조사를 시도한 정황이 확인됐다. 자료제출이나 출석조사 방식으로도 조사가 가능했지만 공정위는 현장조사를 고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조사 접촉과정에서 화물연대측은 "인근 까페 등 조용한 곳에서 조사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공정위측이 '화물연대 사무실'을 주장하면서 아예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공정거래위원장 고발 나선 민주노총 | 지난해 12월14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건설산업연맹 주최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 고발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윤택근 수석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공정위가 사건과 관련해서 대외적으로 입장을 표명해서 안됨에도 불구하고, 화물연대 투쟁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장이 언론에 공개적으로 화물연대 및 건설노조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는 등 부당하게 사건에 개입했다며 공정거래위원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엄정한 대응'을 선언한 상황을 고려한 '정치적' 현장조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화물연대의 조사불응사건을 논의한 공정위 전원회의 위원들 사이에서 "노사문제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좀 더 여유를 갖고 대응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전원회의는 격론 끝에 조사에 불응한 화물연대를 검찰에 고발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참석한 7명 위원 가운데 복수의 위원은 검찰 고발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슬아슬한 다수결로 검찰고발이 이뤄진 셈이다.

◆중대사안 판단 전원회의로 넘겨 = 16일 공정위에 따르면 불공정사건의 1심 재판부 역할을 하는 공정위 위원회는 중대사안은 9명 위원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회의에서 결정한다. 그렇지 않은 사건은 위원 3명이 참석하는 소회의에 맡긴다.

공정위는 당초 화물연대 조사불응 사건을 소회의로 넘겼다. 하지만 1월10일 열린 소회의에서 장시간 격론을 벌인 끝에 최종결론을 전원회의로 미뤘다.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이례적 절차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회의로 넘어간 사건을 다시 전원회의로 돌린 사례는 최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회적 논란이 큰 사안인데다, 위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크게 엇갈린 사건이었단 말이기도 하다. 결국 이 사건은 1월16일 전원회의에서 다뤄졌다. 전체 위원 9명 중 이날 참석한 위원은 7명이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행사참석'을 이유로 불참했지만 실제 이유는 달랐다는 후문이다.

◆무관여 원칙 깬 한기정 위원장 = 지난해 12월2일 공정위의 화물연대 본부에 대한 현장조사가 무산되자 한 위원장은 브리핑을 열고 "고의적인 현장진입 저지가 계속될 경우 고발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위원장의 발언은 그간 공정위가 밝혀온 위원장의 '무관여' 방침과 배치된다.

공정위원장은 공정거래사건의 검찰 격인 사무처를 총괄하지만 재판부 격인 전원회의의 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따라서 위원장은 사무처의 조사계획에 대해서만 포괄적 결재를 받고, 이후 조사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 지시를 하지 않는다. 위원장이 조사에 구체적으로 관여할 경우, 거의 매주 열리는 전원회의마다 '제척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한 위원장은 현장조사 결과(현장조사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대외적으로 구체적 지시(검찰 고발 가능)를 내린 셈이다. 화물연대는 이후 한 위원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에 고발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해 한 위원장 스스로 전원회의를 제척했다는 것이다.

◆왜 현장조사만 고집했나 = 속기록을 보면 위원들은 화물연대에 대한 현장조사가 꼭 필요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한 위원은 "이 사건보다 더 중요한 공동행위 사건들도 공정위가 자료제출명령이나 조사계획표를 미리 보내기도 한다"며 "꼭 현장에 가서만 자료를 확보해야 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사무처 심사관(검사격)은 "부당한 공동행위나 사업자단체 금지행위는 자료제출명령만으로는 정확한 사실관계 제출을 담보하기 어려워 현장조사를 우선해왔다"고 답했다. 그러자 공정위 위원은 "공공연하게 언론에 다 보도가 돼서 내용을 많이 아는 사안에 대해 현장조사한 사안은 그렇게 많지 않다"며 "일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은 출석 조사나 자료제출명령을 통해 확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반박했다.

◆조사공문에 위반혐의도 없어 = 현장조사를 시도하면서 조사 공문에 법 위반 혐의를 기재하지 않고 광범위한 내부 자료를 요구한 것도 확인됐다. 공정위가 무리한 '노조 때리기'에 나섰다가 조사 절차적 정당성과 법 취지마저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공정위가 화물연대에 제시한 '현장조사 공문'(지난해 12월 2일 교부)을 보면 조사목적 항목에 '법 제40조 1항 및 제51조 제1항 위반 여부 조사'라고 명시했다. 구체적인 법 위반 혐의는 누락하고 법 조항만 기재한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 조사절차규칙 제10조는 조사공문에 기재되는 조사목적에 관련 법 조항과 법 위반혐의를 함께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조사절차규칙에 부당한 공동행위 조사는 법 위반혐의의 기재 및 설명을 생략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이 있다"며 "화물연대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조사였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밝혔다.

당시 공정위는 화물연대측 변호사 등이 이 문제를 제기하자 추가 현장조사를 시도하면서 뒤늦게 혐의내용을 기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화물연대에 요구한 내부 자료 항목도 구체적이지 않고 포괄적이란 점도 지적됐다.

공정위는 현장조사공문 조사방법 항목에 '법 제81조의 규정에 의한 업무 및 경영상황, 장부, 서류, 전산자료, 음성 녹음자료, 화상자료 등과 기타 조사공무원이 요구하는 자료 및 물건에 대한 제출, 보고, 열람, 확인, 복사, 일시 보관과 임직원에 대한 진술, 설명 등을 조사'한다고 명시했다. 요청 자료 등이 광범위해 사실상 조사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셈이다.

◆근로자냐 사업자냐 의견 분분 = 화물연대를 사업자단체로 볼 수 있느냐를 놓고도 위원들의 격론이 이어졌다. 속기론을 보면 공정위 심사관은 "화물연대본부의 구성원은 사업자에 해당하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노동자)가 사업자가 아닌 것은 아니라고 저희는 보고 있다"고 했다.

특고는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위탁계약에 의해 노동을 하고 수수료와 같은 대가를 받는 노동자를 뜻한다. 학습지 교사, 대리운전기사, 배달기사, 화물차 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특고는 그 특수성 때문에 노동자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고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과 행정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대법원이 '화물 기사에 노동자성이 있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공정위는 고용노동부의 판단을 빌어 화물연대를 사업자단체로 결론내렸다. 심사관은 "노동부가 12월 5일자 보도자료에서 '(화물연대는)노동조합법상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지 않았고 단체행동과 관련돼서 법적 절차, 조정 절차 및 쟁의 찬반투표 등을 거치지 않아 노동조합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며 노동부의 판단을 강조했다.

그러자 한 공정위 위원은 "법원 판례를 보면 노동조합의 설립 신고 자체는 형식적인 요건"이라며 "신고가 없다고 노동조합성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심사관은 "노동조합법에 따른 쟁의의 행위가 되려면 일단 노동조합이 인정이 돼야 되는데 노동부는 (화물연대는)노조가 아니라고 했다"고 답했다. 판례를 예시로 실질적인 판단 근거를 묻는 질문에 노동부의 판단을 앞세워 똑같은 답을 반복한 셈이다.

◆파업상황 종료되자 흐지부지 = 공정위 사무처가 3차례 현장조사로 요란을 떨었지만 정작 본조사는 시작도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본조사는 화물연대의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여부를 말한다.

공정위가 이례적으로 신속조사에 나선 실제 목표가 화물연대의 '불공정행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닌 다른 '정무적 이유'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당시 윤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동'을 벌인 것이란 해석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 1월16일에 있었던 화물연대 조사방해 고발 결정 심의속기록을 확인했다"며 "언론에는 본안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니, 정작 심사관은 피심인 적격성에 대해 '화물연대는 사업자단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눈가리고 아웅이 어디 있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원회의 위원들이 오히려 '적어도 누가 어떤 특정 범죄행위를 했는지 특정은 해야 할 거 아니냐. 기본적인 범죄 구성요건에 안 맞는 면이 있다'라고까지 하고 있다"며 "얼마나 무리수를 둔 것인지 공정위는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18년 이후 대법원은 '전속성과 소득의존성이 강하지 않은 측면이 있더라도 이를 들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임을 부정할 것은 아니다'라며 계약의 전속성·소득의존성 등은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보조적이고 부수적 지표임에 불과하다고 설시까지 해왔다"며 "그런데도 공정위는 고용노동부의 판단과 자의적 판단을 토대로 시종일관 고발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고 했다. 박 의원은 "결론을 정해놓고 돌진하는 이 정도의 무리수라면 대통령실의 오더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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