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제 첨단산업 공급망 재편 첫발"

2023-03-17 10:52:13 게재

일본 언론, 정상회담 경제분야 주목 … 윤 대통령 국익 강조에도 당장 경제적 실익 의문

일본정부와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정상회담과 관련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중국 배제 공급망 재편'의 걸림돌을 제거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윤 대통령 등 우리 정부도 이러한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이 한일 양국간 회담이지만 사실상 한미일 3국 공조의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문제는 정상회담 이후 당장 우리 경제에 실익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한일간 무역역조가 심화되는 가운데 경제협력이 강화될수록 양국간 기울어진 운동장은 더 심해질 수 있어서다. 다만 전세계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향후 정부와 기업이 적극 대처해 나갈 경우 우리 경제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일 정상회담에 어른거리는 미국

일본 언론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가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에 한국이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요미우리신문은 16일 "한미일 3국은 이미 경제안보대화의 틀을 갖고 있다"며 "이번 정상회담은 한일 양국간 대화를 강화하고 연계를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17일 "수면 아래서는 한국과 미국 일본 대만 등 4개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하는 '칩4 동맹' 구상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한미일 3국은 지난달 28일 미국 하와이에서 왕윤종 대통령실 비서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제안보를 주제로 실무자급 회담을 처음 가졌다. 이 회담은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이 회의에서 3국은 양자 및 우주기술, 반도체와 하이테크 분야 등 최첨단 산업의 공급망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는 내부 보고서에서 3국 경제대화에 대한 미국 주도성을 언급했다. JETRO는 "미국 산업계는 첨단산업에서 다국간 공조가 필요하다며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 한국 일본과 연계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며 "3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도 참가하고 있기에 첨단산업의 공급망 논의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번 회담에서 한일 양국은 상설적 '경제안보 협의체'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이미 가동되고 있는 한미간, 미일간 '경제 2+2장관회담'과 비슷하게 한일 양국간에도 관련 협력체가 생기는 셈이다. 한미, 한일, 미일 양자협력을 통해 '한미일 3자협력체'로 가는 모양새다.

5월 열리는 히로시마 G7 정상회담에 윤 대통령이 참석해 한미일 3자 정상회담이 열리면 큰틀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경제·안보틀이 완성된다.

오마바 전 대통령 때 비서실장을 했던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16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에만 한미일 3자협의가 40차례 이상 열렸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우정과 신뢰관계를 정상화한 것"이라고 말해 이번 정상회담을 보는 미국의 시각을 드러냈다.

한일 정상회담, 경제적 실익있나

한국과 일본의 무역수지만 놓고 보면 갈수록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 대일본 수출 306억1000만달러, 수입 547억1000만달러로 무역수지 적자가 241억달러에 달했다. 무역적자는 일본의 수출 보복이 있던 해인 2019년(192억달러)에 비해 오히려 50억달러 가까이 늘었다.

무역수지 적자 내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이 무역거래한 97개 품목 가운데 47개 품목이 적자였고, 50개 품목이 흑자였다. 하지만 한국이 대일 무역적자를 낸 상위 5개 품목을 보면 전자 및 기계, 첨단기기 등이다. 전자기기 및 부품의 적자폭이 75억2000만달러로 가장 컸고, 원자로 및 각종 기계류 적자도 69억8000만달러에 달했다.

첨단산업 분야인 광학기기와 의료·정밀기기에서도 31억달러 적자를 냈다. 이밖에도 한국의 상위 10개 적자품목에는 화학제품 등 첨단기술이 필요한 제품이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흑자폭은 적었고 대체로 광물성 연료(34억5000만달러)와 어류(2억3000만달러) 등 1차산업에 해당하는 품목이었다. 농수산물과 광물 등을 중심으로 흑자를 내다 보니 수출입 물량(중량)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금액에서는 많은 격차를 보였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57년간 일본에 대한 수출은 8271억달러로, 수입(1조5204억달러)에 비해 크게 적었다. 역대 대일본 누적 무역적자만 6932억7000만달러에 달한다.

양국간 무역거래만 보면 한국이 일본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국익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양국간 무역거래가 활성화될수록 오히려 적자폭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일본학과 교수는 "한일 무역구조상 이번 정상회담 이후 곧바로 크게 바뀔 것은 없다. 소부장 글로벌 공급망의 특성이 그렇다"고 말했다.

일본 내에서 한국을 반도체 산업 등의 경쟁자로 보는 것도 높은 수준의 협력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반도체 분야 경쟁국"이라며 "우선 재고정보 등을 공유하는 정도의 협력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최근 도요타와 NTT, 소니 등 대기업이 출자해 만든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가 홋카이도에 2나노급 최첨단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양국간 경제협력과 교류를 단순 무역수지 금액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평가도 있다. 이는 최근 전세계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이 강점을 갖는 반도체 등의 제품에서 일본과의 유기적 관계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기반한다.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등 완제품에 쓰이는 각종 소재와 부품, 장비 등의 상당수가 일본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4차산업혁명과 탈탄소 산업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제조 강국인 한일 두나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것과 관련해 상호보완적인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는 평가다. 일본이 전통적으로 화학산업과 수소 기술 등에서 앞서고 있기에 다양한 기술 협력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수소 및 양자기술 등 최첨단 분야에서 미일 등과 '프랜드쇼어링'을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우리가 거기서 낙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우리가 당장 경제적으로 실익을 얻지 못해도 향후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미국 일본과 협상하면서 우리의 자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통화스왑 체결하나

윤 대통령은 16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양국이 금융과 외환 분야에서도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이 첨단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많았다. 금융과 외환분야까지 협력하기로 한 점은 일정한 성과라는 평가다.

이에 따라 한일이 중앙은행 차원에서 통화스왑 등을 체결할지 주목된다. 한국과 일본은 2008년 글로벌 외환위기 당시 2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왑을 맺었지만 2012년 계약을 종료했다. 최근 환율이 급등락하는 가운데 일본 엔화와 스왑을 체결하면 적지않은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엔화 가치가 예전같지 않지만 여전히 주요 기축통화 중 하나다. 전세계 가장 많은 대외 금융자산을 가진 일본과 유사시 통화를 교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 나쁠 이유가 없다.

한일 양국 경제계의 상호협력 방식과 규모 등에도 관심이 쏠린다.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한국의 재계인사가 대거 일본으로 건너가 한일 경제계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한다. 이 자리에 윤 대통령도 참석한다. 일본 언론도 이 회장 등 한국 재계 핵심인사들이 방문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재벌 총수와 전경련 간부들이 참석했다"며 "우주 분야, 양자 기술, 바이오 등 첨단기술 개발에서 각각 강점을 살려서 신산업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분석했다.

양국간 관광객이 늘어나는 데 대한 기대감도 크다. 특히 일본은 한국인 방문객이 전체의 절반에 가깝다. 일본 관광국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147만5000명 가운데 한국인이 56만8600명에 달했다. 일본 경제계는 또 2019년 '노재팬'으로 줄어든 한국 내 소비재 시장 점유율을 되찾을 기대감도 숨기지 않고 있다.

일본 전자업체 관계자는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반도체 분야 등에서 한국과 경합 관계에 있지만 한편으로 한국은 중요한 조달처"라며 "한국과 연계 강화로 연결할 수 있다면 환영할 일"이라고 했다.

일본 아사히 맥주와 유니클로 등 소비재 기업도 '노재팬' 이후 줄어든 한국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환영하고 있다. 아사히맥주 관계자는 "한국은 향후 주력해나갈 시장"이라면서 고급 맥주를 내세워 재공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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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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