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경찰 앱도 등장 … 보이스피싱 진화

2023-03-23 11:16:02 게재

고전적인 수법에도 피해 사례 반복 … 집중단속에 전체 범죄 건수는 감소

당국의 집중 단속으로 줄었지만 유사 경찰 애플리케이션(앱)까지 활용하는 등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도 진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 때문에 고전적인 수법인데도 피해자들이 속아 넘어가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전화금융사기 수법은 크게 기관사칭형과 대출사기형, 납치빙자형으로 분류된다.
22일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에서 이지용 팀장이 '폴-안티스파이 앱' 사칭 전화금융사기범 검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은 검찰, 금융감독원 등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면서 시작된다. 사기범들은 피해자의 명의가 도용됐거나 범죄사건에 연루됐다는 명목으로 피해자를 속여 피싱사이트로 유도한다. 이후 신용카드정보, 금융거래정보를 알아낸 뒤 피해자 명의 계좌에서 돈을 빼가거나 대출을 받기도 한다.

경찰의 앱을 사칭한 악성 앱을 만들어 60억원대 사기를 벌인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이버수사국은 최근 '폴-안티스파이 앱'을 사칭한 악성 앱으로 개인정보를 빼내고 범죄에 활용한 중국인 콜센터 관리자 A씨를 구속했다. 한국인 조직원 B씨와 C씨도 검거했다.

이들은 2018년 10월부터 2019년 4월까지 휴대전화 938대에 악성 앱을 심은 뒤 166명에게서 약 61억원을 편취했다.

폴-안티스파이 앱은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이 2014년 8월 개발해 2021년 12월 31일까지 배포한 불법 도청 감지 앱이다. 6년 넘는 기간에 약 238만회 다운로드됐다. 사기범 일당은 이같은 신뢰성과 대중성을 역이용했다. 현재는 '시티즌코난' 앱으로 통합돼 다운로드 서비스가 종료된 상태다.

일당은 법원·검찰·금융감독원 등 정부 기관으로 속여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뒤 악성 앱을 휴대전화에 설치하도록 유도했다. 허위로 작성된 압수수색영장·구속영장 등을 메신저나 메일로 보내 피해자가 의심 없이 앱을 깔도록 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수사·금융기관으로 전화를 할 경우 중국에 있는 전화금융사기 조직의 콜센터로 연결이 되도록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일당은 통화내용뿐 아니라 통화 종료 후 주변 음성을 실시간 도청해 피해자들의 대응을 파악했다. 특히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앱 프로그램을 암호화하기도 했다.

경찰은 인터폴 등과 공조해 중국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 조직 총책과 주요 간부들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어떤 정부 기관도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공문서를 발송하지 않는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대출사기형 범죄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 주거나 신용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대출 상품이 있다면서 수수료나 보증금, 통장, 현금카드 등을 요구해 돈을 빼앗는 수법이다.

경찰에 따르면 60대 여성 D씨는 한 금융기관으로부터 '기존 대출을 상환하면 금리가 낮은 상품으로 전환해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D씨는 이들에게 3450만원을 건넸는데 이들은 금융기관 직원이 아닌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다.

이처럼 고전적인 수법인 저금리 전환 대출 등에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속아 넘어가는 것은 사기범들도 진화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보이스피싱 조직은 사투리를 쓰지 않고, 전화번호 변작기를 이용해 해외 발신 전화번호를 010 번호로 둔갑시키거나 악성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는 등 지능화하고 있다.

납치빙자형 피싱 수법도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택배 배송조회 서비스를 가장한 인터넷사이트 링크를 문자메시지로 보낸 뒤 접속하면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훔쳐 연락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피해자 자녀나 부모의 전화번호로 변조한 뒤 연락해 자녀나 부모가 납치당한 것처럼 가장해 자금을 가로챈다. 피해자는 저장해 놓은 가족 번호로 전화가 오기 때문에 통화 내용을 신뢰하게 된다.

실제로 70대 여성 E씨는 대전 대덕구 한 우체국에서 2400만원을 출금하려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한 우체국 직원의 제지를 받았다. E씨는 직원 설명에도 "아들이 납치됐으니까 빨리 돈을 찾아야 한다"고 고함치며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출동한 경찰이 1시간 동안 설득하고 가족들과 전화 연결을 한 뒤에야 범죄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한편 경찰이 대포통장 등 범행수단 단속을 강화하면서 전화금융사기 발생 건수와 피해 액수가 전년에 비해 크게 줄었다.

최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발생한 전화금융사기 범죄 건수는 2만479건, 피해액은 5147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발생 건수(2만8646)는 28.5%, 피해액(7172억원)은 28.2% 줄었다. 같은 기간 전화금융사기 범죄 검거 건수와 검거 인원은 2만3245건과 2만367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1%와 4.3% 감소했다.

전체 검거 인원은 소폭 줄었으나 조직 내 윗선이자 총책을 맡은 피의자 검거는 늘었다. 이는 경찰이 해외 사법기관과 공조를 통해 해외에 있는 콜센터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데 따른 것이다. 이 기간 검거된 조직 내 상선급 피의자는 626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21.6% 증가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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