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남식의 중동 톺아보기

우경화와 사법전쟁 '혼돈의 이스라엘'

2023-03-30 11:25:46 게재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아프리카중동연구부장

점입가경이다. 이스라엘 이야기다. 지난해 말 다시 등장한 네타냐후 총리 연립정부의 극우화가 도를 넘었다. 유대 민족주의와 종교 근본주의의 결합으로 정권을 다시 얻게 된 네타냐후는 이전보다 훨씬 보수적인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압박과 직결된다.

이타마르 벤 그비르 국가안전부장관은 취임 직후 동예루살렘 하람 알 샤리프(성전산, 현 이슬람성지)를 전격 방문, 아랍의 반발을 샀다. 이후에도 공공장소에서 팔레스타인 깃발 게양을 금지하는 등 아랍계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서안지구 정착촌 확대계획을 발표하고, 이미 폐쇄했던 정착촌을 재개발하는 법안까지 통과시키자 팔레스타인의 항의가 격렬해졌다.

또 다른 극우파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한술 더 떴다. 지난 1월 칸 텔레비전 인터뷰에서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파시스트다." 이 말과 함께 이스라엘을 종교법에 의해 통치되는 신정국가를 만드는 데 힘을 기울이겠노라 다짐했다. 이후 아예 스스로 인종차별주의자임을 선언하며 이스라엘 영토 확장에 나섰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놓고 있다.

단순히 말이 아닌 구체적 행동에도 나섰다. 서안지구는 현재 이스라엘의 점령지역이다. 본래 요르단 관할 지역이었으나 1967년 전쟁에서 점령한 이후 이스라엘이 군사적 통제권을 유지해 온 곳이다. 오슬로협정 이후 이 지역 대부분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에 귀속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각료인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이 서안지구의 민간 행정 책임자를 맡은 것이다. 군의 일시적 점령이 아닌 민간의 영속적 통제라는 상징성이 담겨 있다. 오슬로협정의 골간 즉 '두 국가 해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병합 정책에 나섰음을 공공연히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 수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서안지구의 충돌은 이미 심각단계를 넘어섰다.

사법부 무력화 시도에 국민 저항 이어져

혼돈은 극단주의 성향을 가진 일부 각료들의 반(反)팔레스타인 발언과 행동, 그리고 네타냐후의 묵인 때문만은 아니다. 더 심각한 사안이 있다. 사법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란이다. 신정부 출범 직후인 올 1월 4일 네타냐후정부는 사법개혁안을 발표했다. 대법원을 약화시키고, 법관 선출에 정부의 입김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법개혁이 아니라 사법무력화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개악이다.

이스라엘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헌법이 따로 없다. 1948년 5월 독립을 선언하면서 그해 10월까지 제헌 기한을 못박았다. 그러나 국가의 방향성을 두고 당시 세속주의 정파와 종교 근본주의 정파 간 이견이 극심했다. 결국 합의에 의한 헌법 제정에 실패하고 대신 정부조직 영토 국적 등을 규정하는 일련의 기본법들을 제정했다. 헌법은 따로 없지만 기본법을 기초로 국가를 운영해왔다. 내각책임제이기에 입법부 다수정파와 행정부가 동일한 상태에서 의회의 자의적 법률제정을 막기 위해 사법부에게 관련 권한이 주어졌다. 대법원은 기본법의 최종해석권을 통해 정부의 결정을 심사해왔다. 국민들은 사법부를 입법·행정부 의회를 견제하는 핵심 요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네타냐후정부는 이번 사법제도 개편안을 통해 크게 3가지 사법부 제어장치를 만들었다. 첫째, 법관선정위원회에 정부 인사를 과반수로 늘리는 안을 담았다. 사실상 친정부 성향의 법관 임명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둘째, 무효조항을 설치해 대법원이 위헌판결을 내린 법률일지라도 의회가 단순 다수 과반으로 찬성할 경우 다시 제정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조항은 '합리성 원칙 활용 금지'다. 합리성이란 법원이 법률 정책 및 인사 등 정부 행위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1월 18일 대법원은 이 합리성의 원칙을 적용, 부총리 및 보건장관직에 내정된 아리예 데리에 대해 각료직 부적합 판결을 내렸다. 조세 포탈 범죄자를 각료에 임명하는 것은 합리성 원칙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우경화, 중동정세에도 영향

이스라엘은 자유선거제도에 기반한 민주주의 국가다. 극우 성향의 내각과 그 폭주 행태는 이번 연립정부에서만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 소수이지만 캐스팅보트를 쥔 극우종교정당이 네타냐후와 결탁한 이례적인 결과다. 천신만고 끝에 정권을 다시 잡은 네타냐후가 자신의 우파 성향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이들 노선에 별다른 제동을 걸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사법제도 개편은 다른 문제다. 룰 자체를 뒤집음으로써 향후 정부가 간접적으로 헌법 해석 권한을 갖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흐트러뜨리는 결정이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저항에 나섰다. 13주째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시민 학생 법조인이 거리로 나섰다. 야당 정치인은 물론 정부내 중도파 각료들까지 반대의사를 명확히 했다. 반대한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해임되었다. 일부 예비군들은 징집에 응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3월 11일 시위에는 50만명이 참가,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결국 네타냐후 총리는 다음 회기로 입법을 연기했다. 그러나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언제 다시 국민들의 저항과 분노가 불거질지 모른다.

이스라엘의 우경화, 극단주의의 만연은 국제정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첫째, 중동내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민주주의 국가 이스라엘 정치의 극단주의 경도는 미국 중동정책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사우디와 UAE 등 전통적 우방이었던 걸프왕정이 중국으로 기울면서 긴장하고 있던 터다. 특히 지난 3월 10일 베이징에서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와 이란이 국교정상화를 선언한 장면은 미국에 충격이었다. 이제 중동에서 미국과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논의할 수 있는 파트너는 이스라엘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정치 난맥상은 워싱턴에 고스란히 부담이 된다.

결국 미국정부는 최근 임계점을 넘어선 이스라엘의 극우 행보에 대해 비판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정착촌 철수법 폐지 움직임과 관련, 국무부가 주미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하는 이례적인 장면도 드러났다. 그만큼 양국 관계가 삐걱거린다는 징후다.

둘째, 이스라엘의 우경화는 역내에서 아브라함협정의 미래와 연결된다. 이슬람 및 아랍의 선도국가를 자임하는 사우디 왕실이 현 국면의 이스라엘과 손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유대종교 근본주의 각료들이 팔레스타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에 나설 경우 사우디 왕실 자체가 위험에 처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중동내 이슬람권의 폭력적 극단주의 세력의 발호 가능성을 높인다. 그동안 소강국면을 맞았던 IS 등 테러리스트들은 이스라엘의 극단적 행보가 반가울 것이다. 분노를 투사할 대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은 그만큼 투쟁과 폭력을 동원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이스라엘의 배타적 모습은 중동내 테러리스트들을 깨우게 하는 불쏘시개다.

파시스트 자임하는 정부, 미국의 딜레마

어리석다. 이스라엘 극우 내각의 행태는 결국 자국을 위태롭게 한다. 선명한 이념을 내세울수록 안전하다고 믿을 터이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그동안 존중하며 함께했던 이유는 중동내 거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파시스트를 자임하는 이스라엘정부와 함께 어떻게 미국이 가치외교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외칠 수 있겠는가.

시민들의 분노도 아마 이 모순적 상황에 대한 탄식으로부터 말미암은 것 아닐까? 파시스트에게 600만 동족이 살해당한 나라의 정치인이 스스로 파시스트라 말하며 극우의 깃발을 드는 현실은 분명 괴이하기 때문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