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종의 기후행동

'님기현상("내 임기 중에는 안돼")'을 말한다

2023-04-05 11:55:49 게재
윤세종 변호사, 기후환경단체플랜1.5 공동대표

지난 21일 정부가 탄소중립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이 기본계획에서 공개된 '감축경로', 즉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해마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지금 기후변화를 둘러싼 정책적 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기본계획은 2023년 배출량 6억3390만톤을 2030년까지 4억3660만톤으로, 8년 동안 약 2억톤을 줄인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런데 이 감축량 2억톤 중 2023~2027년 기간에 배정된 감축량은 25%에 불과하다. 나머지 75%는 2028~2030년 단 3년 동안 모두 줄일 계획이다. 그나마 절반에 가까운 감축은 마지막해인 2030년 한해에 한꺼번에 감축하겠다고 했다.

이번 정부의 임기가 2027년까지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후변화가 중대한 위협이고 탄소중립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정치적 언명에는 주저함이 없는 정부가 막상 감축부담은 '나 아닌 누구'에게 미루었다. "우리 동네에는 안돼"라는 님비(NIMBY)처럼 "내 임기 동안은 안 돼"라는 것이니 '님기현상'이라 이름 붙여야 할 것 같다.

이런 현상이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번 기본계획안에서 유일하게 산업부문은 감축목표가 오히려 완화되었다. 기본계획안이 발표되고 나자 기업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대규모 설비 신증설을 앞두고 있는 석유화학 기업들이 가장 큰 수혜자라는 해석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탄소배출 감축을 기업의 경쟁력으로 여기는 흐름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기업들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의 핵심은 현상유지와 규제방어다. 지금 기업 의사결정자들의 솔직한 속마음에 가장 가까운 것은 "내가 그때까지 회사에 있을 것도 아닌데"일지도 모른다.

온실가스 감축경로 다음 정부로 미뤄버려

정부는 어쨌든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감축목표를 달성하는 계획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2030년에 몇톤을 배출하느냐가 아니라 2030년까지 몇톤을 배출하느냐다. 감축부담을 늦춘 만큼 누적배출량은 증가한다. 2021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 때 정부는 기준연도인 2018년부터 일정하게 감축하는 것을 전제로 2030년 목표를 설정했다. 이 '직선경로'에 비해 이번 기본계획안의 감축경로는 2030년까지 무려 5억톤의 온실가스를 추가로 배출한다. 우리나라 한 해 배출량에 맞먹는 양이 추가된 것이다.

정부의 설명과 달리 이 계획대로라면 2030년 감축목표 달성 자체도 극히 어렵다. 2027년 이후에 계획된 급격한 감축의 상당부분은 해외감축과 탄소포집저장을 통해 달성할 예정이다. 두 방식 모두 현재는 감축실적이 전무하며, 앞으로도 기술적 제도적 불확실성이 크다.

특히 해외감축은 연도별 계획도 내놓지 못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세워놓은 목표달성도 힘겨워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가 초과 감축한 실적을 가져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기본계획안에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은 없었다. 2027년 이후에 고민할 일이기 때문이다.

기본계획안 발표 하루 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제6차 통합보고서가 발표되었다. IPCC는 "인류가 생존가능한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기회의 창문이 빠르게 닫히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즉각적인 감축노력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IPCC가 마지막 기회라고 얘기하는 기간이 바로 지금부터 2030년까지다.

우리나라는 2009년에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한 이래로 한번도 그 목표를 지키지 못했다. 2009년에 설정한 2020년 목표는 2015년에 2030년으로 미뤄졌고, 2021년에 강화한 2030년 목표는 이번 기본계획을 통해 대폭 완화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책임과 부담을 미룰 수 없는 시점이 와버렸다. 임기에 갇힌 이해관계를 벗어나서 즉각적인 대처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아직 '기회의 창문'에 틈 있어

지금 탄소예산이 소진되는 속도를 고려하면 "기회의 창문"에 아직 틈이 있다고,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해 감축노력을 기울인다면 희망이 있다는 과학적 평가는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2030년 경 발표될 다음번 IPCC 보고서에 무슨 내용이 담길지는 이제 과학이 아닌 의지가 결정하는 영역이다. 이 결정적인 시기에 기후대응을 위한 의지를 모으는 것이 이번 정부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임무다. 기본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탄소중립 기본계획의 온실가스 감축경로는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한다.

윤세종 변호사, 기후환경단체플랜1.5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