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북미회담과 남북관계

2012-03-07 12:12:12 게재

중국 남송(南宋)때 시인인 육유(陸游)의 시 유산서촌(游山西村) 중 산중수복의무로, 유암화명우일촌(山重水複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이라는 구절이 있다. "산첩첩 물겹겹 길 다한 듯하더니, 버드나무 짙푸르고 꽃잎 화사한 곳에 또 마을 하나가 있네"라는 뜻이다.

북핵문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중수복무의로(山重水複疑無路)였다. 하지만 북미간 2·29 합의를 계기로 미국과 김정은 체제와 새로운 북핵 릴레이가 시작됐다.

한국도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하지만 분명한 선을 그었다.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북미관계가 진전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남북관계개선이라는 관문을 넘지 않으면 6자회담재개도 어렵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 출범 후 남북관계는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미 이명박정부와는 영원히 상대를 하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았다. 4년 동안 갈등을 빚고 심지어 일촉즉발의 전쟁위험도 겪은 남북한이다.

북한이 이명박정부와 남은 임기 1년에 뭔가를 하겠다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한국에 대한 비난수위를 높여가면서 국내정치를 강화하고 있다.

남북의 입장을 정리해 보면 북한은 이명박정부와는 상대를 안한다고 하고 한국은 남북관계개선을 6자회담 재개의 전제로 하고 있다. 결국 남북이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이명박정부가 끝날 때가지 남북관계도 6자회담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돌이켜 보면 지난 정부 때 수천, 수만 명의 한국인들이 북한을 드나들던 변화는 그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할 변화였다. 마찬가지로 이명박정부에 들어와서 남북관계가 이렇게 악화될 줄은 누구도 생각 못 했을 것이다.

대북 '선결조건' 내세워 입지 좁혀

미불유초(靡不有初 처음이 있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명박정부 역시 남북관계를 자기식의 비전으로 발전시키려 했다. '비핵 개방 3000'도 결코 북한을 붕괴시키겠다고 만들어낸 것은 아닐 것이다. 실용을 내세운 경제대통령에 기대도 컸다.

이명박정부가 구상한 북한과의 경제협력방안은 노무현정부 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난 정부와의 과잉차별화로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 그 결과 좋은 의도도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처음부터 선결조건을 자주 내세워 스스로의 입지를 좁힌 면이 없지 않다. 초기의 '비핵', 금강산사건 당시 '현장조사', 천안함사건 후의 '선 사과' 등이 그런 것이다.

지금에 와서 '남북관계개선'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운 것도 어찌 보면 그 연장선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선결조건은 이명박정부가 강조해 온 원칙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문제는 원칙은 있는데 타협이 없었다는 것이다. 북한에 압박과 제재를 가하면 굴복하리라는 것과 북한정권이 붕괴될 수 있다는 기본 판단에 문제가 있은 것 같다.

요즘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을 실패로 단정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성패 여부를 떠나 햇볕정책과 마찬가지로 한반도문제를 푸는 하나의 패턴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보수진영에서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정책을 실험해 본 것이다.

이 패턴이 북한에 주는 시사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남북관계에서의 주도권뿐만 아니라 북핵문제해결에서도 주도권을 행사하려 하였다.

한국이 북핵문제 당사자임을 강조하였다. 한국의 북핵문제 주도권은 최근의 북미회담으로 무색해지는 느낌이다. 미국은 철저히 자기국익을 앞에 내세우고 있다.

원활한 남북관계가 문제해결의 지렛대

북핵문제의 매듭을 푼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이다. 북한의 최종목적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이다. 만약 북한이 북핵과 무엇을 맞바꾼다면 그것은 단연 미국과의 수교일 것이다.

한국은 사실 북핵문제 해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적이 없지 않다. 9·19공동선언을 도출할 때 한국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 결국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원활한 남북관계였다.

남북관계개선은 신뢰가 바탕이다. 깨질 대로 깨진 신뢰를 되찾아 다음 정권에 넘겨주는 것이 이명박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집중해야 할 일 같다.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봄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진징이(金景一) 중국 베이징대 교수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