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 분야 공들이는 대형로펌

2023-04-24 11:08:08 게재

공정위·검찰 수사에 납품대금 연동제까지 … 기업 사전 대응 위해 자문분야 문의도 증가

법무법인들이 공정거래 분야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나 검찰수사가 종전보다 강화되는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반기에 도입되는 납품대금 연동제 등 법·제도 변화에 따른 수요까지 늘고 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은 공정거래분야 강화를 위한 반부패과 신설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확대를 추진중이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는 정책과 조사를 이원화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 조사부분이 특별세무조사를 전담하는 국세청 조사4국과 같은 형태로 운영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검찰이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 인지수사 여부를 검토한다는 서초동발 풍문까지 더해지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검찰은 조직 개편 가능성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며 손사래 쳤지만 "공정거래 사건에 대해 국민들 관심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법무법인 광장이 중소벤처기업부와 공동으로 개최한 납품대금 연동제 설명회 현장 모습. 광장과 중기부는 애초 지난달 1차 설명회를 열었지만 예상을 넘어선 참석자들로 인해 두번째 설명회를 열었다. 다른 대형로펌들도 같은 내용의 설명회를 연다. 중기부의 납품대금 연동제도 대형로펌 공정개래 부문의 중요 업무가 됐다. 사진 법무법인 광장 제공


일부 기업들은 일감몰아주기나 하도급 분쟁을 주로 다루던 공정위 사무소 담당 사건들이 공정위 본부로 넘어가고 있다며 추이를 지켜보는 상황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알아챈 대형로펌의 움직임도 예년과 다른 모습이다. 공정거래분야의 한 변호사는 "로펌의 변호사 영입은 일상적이지만 올초부터 경쟁이 심화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공정조사, 기업일반범죄로 확대 =검찰의 공정거래범죄수사가 횡령과 배임 등 기업범죄일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애초 한국타이어의 경우 사주 일가와 특수 관계인 회사에 수익을 몰아준 불공정거래로 시작이 됐다. 하지만 이내 사주일가의 횡령과 배임으로 확대됐고, 기업 경영권 분쟁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가구업체의 담합 역시 리니언시를 통해 효과를 높였다. 공정위가 불공정 행위를 한 기업을 압박할수록 리니언시를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리니언시는 담합 등 불공정행위를 한 기업이 이를 자진신고하면 과징금 등을 면제해주는 등 혜택을 주는 것을 말한다. 담합을 한 기업간 상호불신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눈치 전쟁이 불거지기도 한다.

내부자 고발로 인해 사주가 기소된 경우도 있다. 계열사를 통해 사주 개인 회사에 수익을 가져다 준 DL 이해욱 회장 역시, 내부 직원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 1·2심은 모두 벌금 2억원을 선고 한 바 있다.

화우 공정거래그룹장인 김철호 변호사는 "검찰은 그동안 공정거래 사건을 충분히 수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공정거래 분야의 경쟁은 그동안 있어왔던 것으로 최근에 심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하도급 단가 깎기나 일감 줄이기와 같은 단순 분쟁도 공정위나 검찰이 캐다보면 사주나 임원들과 특수관계인 기업과 관련성이 나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며 "현재로서는 기업의 컴플라이언스(준법) 강화 외에 대처할 방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단순히 날카로운 검찰 수사가 대형로펌의 공정거래 조직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2021년 12월 개정 공정거래법으로 인해 관련 법의 변화가 많아지고 있다. 이는 단순 송무가 아닌 자문 분야에서 일거리가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하도급법이나 가맹사업법, 상생협력법 등 공정위 소관 법률의 변화다.

공정위는 올 1월부터 온라인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을 시행하고, 온라인플랫폼정책과를 신설하기도 했다. 이는 앱마켓과 온라인플랫폼, 스마트기기의 경쟁제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조사 및 조치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10월부터 시행되는 납품대금 연동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물품이나 자재, 원료 등을 주문했는데 그 가격 변동이 심해 중소기업의 손실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위반 기업에는 5000만원 이하 과태료와 시정명령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형사처벌은 없지만 손해를 본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민사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이 바뀌면서 크고 작은 소송이 이어질 전망이다.

대형로펌은 공정거래 부분이 납품대금 연동제도 담당하고 있다. 최근 대형로펌들은 중소벤처기업부와 손을 잡고 다양한 세미나를 열고 있는데, 대면 행사의 경우 자리가 없을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회에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도입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위원회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내부 준법의식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평가를 잘 받으면 공정위가 인센티브를 주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관련 기업들이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운영하기 위해 대형로펌에 자문을 요청하고 있다.

◆판+검 내세운 팀 구성 = 대형 로펌들은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대형로펌이 영입한 판사, 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른은 삼성 웰스토리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 출신의 고진원 변호사를 영입한 뒤 송무 및 자문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고법판사 출신 김용하 변호사를 공정거래그룹장으로 영입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의 행정조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공정거래 관련 사건 판례에 대한 다양한 연구활동을 벌인 바 있다.

화우는 김윤호 변호사를 최근 영입했다. 공정위 파견은 물론 공정거래조사부 전신인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와 서울고검 공정거래팀, 대검찰청 공정거래법 대스크포스(TF)를 거친 전문가다.

광장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1부장을 지낸 전준철·김형근 변호사를 내세우고 있다. 고등법원에서 공정거래사건을 담당한 이인석 정수진 변호사도 최근에 영입했다.

세종은 검찰출신으로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을 지낸 김민형 변호사를, 판사 출신으로는 고법판사 출신 최한순·강문경·권순열 변호사를 최근 영입했다. 강문경 변호사는 서울고법 재직시절 국정농단 사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건을 맡은 바 있다.

공정거래형사대응팀을 출범시킨 태평양은 채규하 전 공정위 사무처장을 영입했다. 채 전 사무처장은 30년간 공정위 요직을 거친 전문가로, 로펌 내 공정거래 사안에 자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태평양은 이밖에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출신인 김정환 변호사도 보강했다.

김앤장도 고법판사 출신 홍기만 진상훈 변호사 외에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황은규 신원일 변호사, 곽세붕 전 공정위 상임위원 등을 영입하는 등 공정거래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대륙아주도 공정위 출신의 김형일 전문위원과 김나정 변호사를 영입하는 등 공정거래 분야 몸집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다른 로펌에서 근무하던 변호사들을 스카웃하기도 했다.

김선일 안성열 오승완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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