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대학'발 대학 통폐합 시작되나

2023-06-02 11:23:19 게재

'27개 대학, 13개 대학으로' 통합 전제 신청 … '정량평가' 대신 '정성평가'

정부의 '글로컬대학 30'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대학 간 통폐합의 신호탄 역할을 할지에 대학가 이목이 집중됐다. 교육부가 지난달 31일 마감한 신청서 접수에 대학 통합을 전제로 한 신청서가 대거 접수됐기 때문이다.

2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글로컬대학 사업 공모에 신청 가능한 166개교 중 108개교(약 65.1%)가 지원서를 냈다. 상대적으로 정부의 재정 지원이 적은 사립 일반대는 66개교 중 64개교(약 97%)가 신청하는 등 가장 높은 지원율을 보였다.

눈여겨 볼 대목은 27개 대학이 13건의 공동 신청서를 접수했다는 점이다. 공동 신청은 2개 이상의 대학이 통합을 전제로 신청하는 경우다. 사립 일반대와 사립 전문대가 공동으로 신청한 건수가 7건(15개교)으로 가장 많았고, 국립대와 국립대 간 공동 신청도 4건(8개교)을 기록했다. 이 외에 국립대와 공립전문대 1건(2교), 사립 일반대와 사립 일반대 1건(2교) 등이다.
글로컬대학 30 추진방안 공청회 | 지난 3월 16일 정부세종청사 15동 대강당에서 열린 '제1회 글로컬대학 30 추진방안(시안) 공청회'에서 한 참석자가 이 사업 추진 방안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은파 기자


◆2014년 이후 통폐합 중단 상태 =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학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대학가에서는 '글로컬대학'발 대규모 통폐합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설마'하는 분위기가 컸다. 그 만큼 대학 통폐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통폐합은 학령인구 감소 위기가 본격화된 참여정부 시기부터 정부 주도로 추진됐다. 참여정부의 국립대 통폐합 방안과 이주호 장관 주도로 이명박정부부터 추진해온 재정지원제한대학 제도가 대표 사례다.

이런 노력에도 2005년 1건, 2006년 8건, 2012년 5건, 2014년 3건 등 지지부진하다 2014년부터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교육계에서는 글로컬대학 선정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통합 전제 대학이 대거 최종 선발된다면 그 파장은 예상보다 클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대학 간 통폐합은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통합을 전제로 낸 신청서가 받아들여져 예비지정 대학에 선정돼도 9월 본지정 평가 전에 각 대학은 구성원들의 통합 동의서를 포함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야 한다. 통합을 둘러싼 학내 갈등을 잠재우지 못하면 본지정 평가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과거 대학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했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구성원들의 반발이 컷지 때문이다. 여기에 지역 경제에 어려움이 커진다는 경제 논리까지 더해지면서 통합 논의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갔다.

신청서를 접수한 한 사립대 고위관계자는 "많이 참여할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많을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면서 "이는 지방대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사립 일반대 97% 신청 = 신청 대학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립대는 신청 가능한 31개교 중 25개교(80.6%), 공립대는 6개교 중 1개교(16.7%), 사립 일반대는 66개교 중 64개교(97%), 사립 전문대는 63개교 중 18개교(28.6%)가 각각 참여했다.

국립대에서는 춘천·청주·공주·전주·진주 등 교대 5곳과 한국교원대가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립 일반대 중에는 가톨릭꽃동네대, 목포가톨릭대 등 종교계 대학이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역별로는 부산이 16개교(14건), 대구 6개교(4건), 광주 8개교(8건), 대전 9개교(7건), 울산 1개교(1건), 세종 2개교(2건), 강원 6개교(5건), 충북 8개교(6건), 충남 15개교(14건), 전북 9개교(6건), 전남 6개교(6건), 경북 14개교(13건), 경남 7개교(7건), 제주 1개교(1건)가 각각 신청서를 제출했다.

앞서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와 급격한 산업구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지역사회 맞춤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혁신 계획을 갖춘 대학을 2026년까지 30곳 뽑아 글로컬대학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대학들은 각각 5년간 1000억원을 지원받는다.

◆2026년까지 30곳 선정 = 교육부와 민간전문가로 구성한 글로컬대학위원회는 6월 예비 선정을 위한 평가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인 평가·심의에 돌입한다.

예비지정 평가는 대학의 혁신 비전과 과제를 핵심적으로 제시한 최대 5쪽 분량의 '혁신기획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특정 지표를 충족했는지 여부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정량평가 대신 '정성평가'로 한다는 의미다.

예비지정은 본지정의 1.5배수인 최대 15개 내외를 뽑겠다는 방침이나 조건을 채운 대학이 부족하면 덜 뽑을 수도 있다. 예비지정 대학들은 3개월 동안 지자체, 지역 산업체와 공동으로 혁신기획서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 광역지자체를 통해 제출한다. 실행계획서는 대학-지자체-산업체 간 역할을 제시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어떻게 연계해 활용할지도 포함해야 한다.

글로컬대학위원회는 이후 본지정 평가와 이의신청 등을 거쳐 최종 결과를 10월에 확정한다.

교육부는 예비지정 합격 대학이 제출한 혁신기획서 일체를 공개할 예정이다. 탈락한 대학 중에서 공개에 동의한 곳의 경우에도 보고서를 공개한다. 평가위원회 명단은 일체 비공개다. 대신 예비지정과 본지정 과정에서 평가위원회를 따로 꾸린다.

교육부는 공정성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위원의 출신학교와 소속기관을 고려한 상피제도 적용한다.

한편 글로컬대학 선정과 관련해 일부에서 공정성 논란이 제기된다. 교육부가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시범지역인 7개 시도소재 대학에 '지역적 특성' 부문에서 10점을 우선 부여하기로 하면서 강원 등 이에 해당하지 않는 지역 자치단체와 대학들이 반발하고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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