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인공지능(AI) 두뇌가 되다
10여년 전 과감한 베팅에 1조달러클럽 등극 … 블룸버그 "전성기 인텔 떠올리는 고객 많아"
엔비디아가 도전에 나섰다
(NVIDIA rises to the challenge) /
강력한 GPU와 AI로
(With their powerful GPUs and AI) /
그들은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They push the boundaries of technology's edge)
이는 챗GPT가 최근 쓴 시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우리회사에 대한 시를 써 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결과물이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BBW) 최신호는 "황은 10여년 전 자사의 컴퓨터 칩이 인공지능(AI)의 두뇌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 베팅했다. 그는 챗GPT의 시에 흡족했다"고 전했다.
지난 30년 동안 엔비디아 칩은 비디오게임을 구현하는 주요 엔진이었다. 하지만 황은 자사의 칩이 인공지능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세트를 선별하는 데에도 매우 적합하다고 자신했다. 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그는 연구팀에 AI용 서버를 구축하도록 지시했고, 2016년 완성된 첫번째 서버를 '오픈AI' 창립자인 일론 머스크와 샘 앨트먼에게 직접 건넸다. AI 슈퍼컴퓨터로 불리는 이 장비는 서류가방만한 크기에 8개의 상호연결된 그래픽프로세서가 탑재돼 있다. 기존 컴퓨터프로세서로는 6일 이상 걸리는 작업을 2시간 만에 처리할 수 있었다.
오픈AI는 지난해 말 2만개 이상의 엔비디아 그래픽프로세서로 구성된 챗GPT를 출시했다. 올 2월 이 챗봇 사용자는 1억명을 돌파했다.
AI 붐에 동참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기업이 엔비디아 칩에 목을 매고 있다. 엔비디아 칩은 알파벳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가 사용하는 클라우드인프라의 핵심 구성요소다. 데이터센터 운영업체들은 지난해 엔비디아 칩을 대량주문하면서 총 150억달러를 건넸다. 황은 지난 5월 17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챗GPT와 유사한 수많은 것들을 보게 될 것"이라며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컴퓨팅의 재탄생이자 재창조"라고 말했다.
최근 엔비디아 기업가치는 1조달러를 넘어섰다. 역대 9번째로 1조달러를 돌파한 기업이 됐다. 하룻밤 새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오랜 라이벌인 AMD에 육박했고, 또 다른 라이벌인 인텔보다 7배 많은 가치를 자랑하고 있다.
황이 비디오게임 칩 제조업체에서 AI 선구자로 변신할 수 있었던 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마법 같은 능력 덕분이지만 사실 황이 옳았던 것만큼이나 틀렸던 적도 많았다. 엔비디아는 스마트폰 접근방식에서 실수를 저질렀고, 여러 컴퓨터그래픽카드를 출시했지만 반향을 얻지 못하기도 했다. '암호화폐 채굴 열풍은 계속될 것'이라고 오판했고 칩 설계업체 ARM사를 400억달러에 인수하려다 실패했다.
BBW는 "하지만 황은 고도의 생존본능을 보여줬다. 그는 엔비디아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냉정하게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엔비디아 칩 받으려면 8개월 기다려야
엔비디아는 갑자기 전세계 가장 중요한 기술의 핵심에 서게 됐다. '데이터센터 가속기'로 불리는 특정 칩 시장의 80%를 점유한다. 현재 엔비디아의 AI프로세서 하나를 기다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8개월에 달한다.
자율주행차 소프트웨어와 시를 쓰는 챗GPT 등 AI를 가능케 하는 게 바로 엔비디아의 '암페어100'이다. 19세기 프랑스 물리학자 앙드레-마리 앙페르의 이름을 딴 이 칩은 성냥갑만한 크기다.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도쿄 지하철 노선도처럼 복잡한 회로에 약 540억개 미세부품이 배열돼 있다.
황이 1993년 엔비디아를 설립했을 때만 해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 30세였던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석사학위를 받고 AMD를 비롯한 여러 칩 제조업체에서 근무한 바 있다. 비디오게임 전문 프로세서의 필요성을 인식한 그는 동료 엔지니어 두명과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초기 자체 개발한 칩은 실패로 돌아갔다. 현금이 바닥나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그는 방향을 바꿔 MS윈도우를 실행하는 컴퓨터용으로 설계된 새로운 칩에 집중, 델과 게이트웨이를 고객으로 맞았다. '하프라이프'와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돼 컴퓨터게임의 황금기를 열었던 1998회계연도, 엔비디아는 410만달러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이듬해 상장했다.
엔비디아의 최우선과제는 절대강자 인텔로부터 살아남는 것이었다. 게임 덕분에 엔비디아는 GPU라는 그래픽처리장치의 틈새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텔의 중앙처리장치, 즉 CPU는 다른 거의 모든 용도로 사용됐다. 수십년 동안 인텔은 세계최대 칩 제조업체였다. 인텔 CPU는 1980년대부터 컴퓨터 대부분에 탑재됐다. 데이터센터 프로세서 시장 점유율은 99%에 달했다. 인텔 칩도 게임을 할 수는 있지만 엔비디아 칩만큼 뛰어난 건 아니다.
BBW는 GPU와 CPU의 차이점을 이렇게 비유했다. '식료품점에 간다고 가정할 때 쇼핑카트가 CPU다. 통로를 걸어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식료품 구매방식이다. 반면 GPU는 장바구니를 든 수십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것과 같다. 한명은 시리얼, 다른 한명은 과일, 또 다른 한명은 화장지를 구입한다.'
엔비디아 GPU는 수백만개 픽셀을 한번에 로드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반면 인텔 CPU는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불러오고, 웹 브라우저를 실행하고, 유튜브 동영상을 재생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GPU의 작업방식은 '병렬컴퓨팅'(parallel computing)이다. 황은 이 기술이 가장 까다로운 기술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론적으로 더 많은 GPU를 함께 연결하면 주어진 시간 동안 시스템이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을 크게 늘릴 수 있다. 이를 통해 '무어의 법칙'이 맞닥뜨린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여겼다.
1960년대 인텔 공동창립자 고든 무어가 고안한 이 법칙은 칩에 탑재된 트랜지스터 수가 약 2년마다 두배씩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놀랍도록 정확한 이 예측은 반세기 동안 프로세서 성능의 엄청난 향상을 가져왔지만 약 10년 전 벽에 부닥쳤다. 데이터센터에 인텔 CPU를 더 많이 추가하는 것은 마트통로를 쇼핑카트로 꽉 채우는 격이었다.
'인텔 넘어서겠다' 자신감이 현실로
2010년대 들어 칩 고객들이 다른 옵션을 찾기 시작하면서 황의 엔비디아에 기회가 생겼다. 병렬컴퓨팅의 GPU가 완벽한 대체물이 되면서다. 하지만 당시 서버에서 실행되는 거의 모든 코드가 인텔 CPU용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이 큰 장애물이었다. 다행히 황에게는 당시 막 결실을 맺기 시작한 솔루션이 있었다. 2006년 그는 '컴퓨팅 통합장치 아키텍처'의 약자인 '쿠다'(Cuda)라는 새로운 프로그래밍언어를 개발해 엔비디아 프로세서가 실행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유형을 확장했다.
쿠다의 초기실험은 해저에서 이뤄졌다. 미국 유전서비스 기업 슐룸베르거의 자회사 '웨스턴게코'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해저 석유매장 징후를 전자적으로 스캔하는 알고리즘을 최적화했다. 석유 시추탐사엔 방대한 데이터 마이닝이 필요하다. 1억달러가 소요되는 시추탐사 결과를 좌우한다. GPU를 사용한 웨스턴게코는 이전에 사용하던 컴퓨터보다 6배 이상 빠르게 데이터를 마이닝할 수 있었다. 이같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면서 엔비디아 기술이 게임영역 외에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입증됐다.
2012년 이미지인식 경진대회에서 더 큰 돌파구가 마련되면서 GPU의 잠재력이 완전히 드러났다. GPU 기반 딥러닝 기술을 적용한 '알렉스넷'(AlexNet)이 이미지 내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능력에서 기록을 세웠다. 알렉스넷의 오류율은 15.3%로, 2위 도전자보다 10% 포인트 넘게 우수했다. 이 신경망은 쿠다와 엔비디아 GPU로 훈련됐다. 알렉스넷은 GPU로 구동되는 AI가 인간에 근접한 수준으로 일부작업을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2014년 사석에서 황은 "언젠가 엔비디아가 인텔을 추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다와 AI 기반 GPU는 이 시기 황이 시도한 많은 베팅 중 일부에 불과했다. 다른 베팅 대부분은 실패로 끝났다. 그는 다시 모바일장치에 진출하기 위해 인텔과 경쟁했지만, 두 기업 모두 퀄컴에 패했다. 엔비디아는 태블릿컴퓨터와 텔레비전 셋톱박스, 스마트스피커를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기술주가 폭등하던 시기, 엔비디아는 두가지 이정표를 넘었다. 2020년 7월 미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칩 제조업체에 올랐다. 그 다음달에는 데이터센터 부문 분기별 매출이 처음으로 게임 부문 매출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대만 TSMC 설립자 모리스 창은 "10년 전 황은 엔비디아가 인텔보다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었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 많은 사람들이 비디오게임을 즐기고, 비트코인 등 디지털화폐에 거액을 베팅하면서 암호화폐채굴에 탁월한 엔비디아 GPU 수요가 급증했다. 황은 이 모멘텀을 타고 반도체 설계업체 Arm을 인수하려 나섰다. 400억달러 입찰을 통해 모바일분야에서 입지를 확보하고 다른 많은 종류의 제품으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Arm의 칩 설계에 의존하던 기업들은 엔비디아 세력확장을 경계했고, 미국 규제당국은 합병을 막기 위해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황은 2022년 2월 인수를 포기했다.
할인도 협상도 없는 엔비디아
엔비디아 고객들은 전성기 시절 인텔을 떠올린다. 할인도, 협상도, 프리패스도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엔비디아의 거대 고객들 일부는 자체 칩을 개발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칩 설계와 정교한 프로그래밍으로 무장한 엔비디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아마존웹서비스 부사장 나페아 브샤라는 "다른 많은 기업들도 엔비디아처럼 동일한 속도와 실행력을 갖추고 시장을 창출했으면 좋겠다. 그랬다면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위치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는 2018년 엔비디아 기술과 결별하려고 했다. 그는 테슬라 전기차에 탑재된 엔비디아 자율주행 플랫폼을 대체할 자체 칩을 공개했다.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담당 부사장인 사라 타리크는 "자체 칩을 개발해 처음부터 끝까지 적용하는 건 테슬라에게 전략적인 영역"이라며 "하지만 테슬라는 데이터센터 트레이닝을 위해 여전히 엔비디아 GPU의 큰 고객"이라고 말했다. 머스크는 최근 또 다른 AI 프로젝트를 위해 엔비디아 GPU 수천개를 주문했다.
알파벳과 아마존, MS도 칩 설계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했다. 구글은 텐서 처리장치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인기있는 AI이미지 생성앱인 미드저니는 지난 3월 모델학습을 위해 엔비디아 GPU와 함께 구글 프로세서를 채택한다고 발표했다. 뉴스트리트 리서치에 따르면 구글 칩은 엔비디아의 암페어100보다 가격 대비 성능이 6배나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구글 칩은 데이터처리방식에서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가성비 역시 1~2년 이상 유지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뉴스트리트 애널리스트 피에르 페라구는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조차도 황을 매우 매우 정중하게 대한다"며 "엔비디아를 화나게 하는 것을 모두가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구글 대변인은 "구글은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며 "구글 칩은 엔비디아 GPU를 보완하는 역할을 그친다"고 밝혔다.
한편 황은 미국이 중국과의 싸움을 멈춰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엔비디아의 암페어100 등 최첨단 칩은 지난해 대중 수출규제 목록에 올랐다. 황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중 규제는 의도와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자국 반도체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으며 이미 50개 이상의 GPU회사를 갖고 있다.
황은 미국의 규제가 대만을 겨냥한 침공을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중국이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어느 시점에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대만으로 가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