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환경 개선 시급

응급환자 우선 진료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2023-07-04 10:51:18 게재

노인인구 급증 시기 '일차의료'도 필수의료 … 지역별 병상총량-비급여 제한도 시급

우리나라 보건의료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의사인력 부족과 더불어 의료전달체계와 제도의 부실로 국민-환자는 적절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응급환자 수용은 한계에 이르러 뺑뺑이 돌다 거리에서 사망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만성질환 관리도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과 환자의 건강 수준이 공적 관리체계에 의해 차별없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운에 맡겨진 상황이다.
적절한 건강관리는 병 걸리기 전에 일상에서 예방 차원의 건강실천, 병 발생을 막는 보건의료 개입, 병에 걸렸을 때 신속한 진단과 조기치료로 중증화로 가는 것을 통제하는 응급의료의 제공 수준에 의해 이뤄진다. 하지만 만성질환자 관리는 부실하고 응급의료는 두말할 것도 없다.
최근 응급의료 분야 부실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자 정부는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근본적인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만성질환 관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일차의료분야 강화에는 소극적이다. 보건의료전문가들에게 국내 의료환경 개선안을 물었다.

응급환자를 우선으로 대응하는 의료환경이 필요하다는 보건의료전문가들의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3월 21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모습. 연합뉴스

 


보건의료는 사회적 공공재다. 시장에만 맡길 경우 공급자의 서비스 제공 독점과 이용자의 소득수준에 따라 불평등 발생 등 국민 모두가 누려야 할 건강권을 침해받을 수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개입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은 친시장-산업적 경향을 보여왔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많은 병상수에도 응급병상은 부족하고 동네의원은 많지만 주민에게 지속적으로 건강관리를 해주는 일차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보건의료환경은 '수도권 대형병원 의료 이용 쏠림'과 '지방주민의 낮은 건강수준과 높은 사망률이라는 의료이용 불평등'을 낳는다.

3일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우리나라 보건의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응급환자를 우선하는 의료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윤 서울대의대 교수는 "의사인력 확충 이외에 병상수를 마음대로 늘리지 못하게 환경을 바꿔야 하며 지역간 의료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방에서 일할 의사를 확보하고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비응급으로 의료자원 배분해야 =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필수의료 강화를 보건의료분야 주요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관련해서 의료서비스를 소아 산부인과 응급 등 항목별로 필수-비필수로 나누는 것 보다는 응급과 비응급(예약이 가능한 부분)으로 의료자원을 나누는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위원장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는 상급종합병원도 비응급 부분에 과도한 자원이 배분돼 있다. 대표적으로 상급종합병원도 중환자실 법정기준이 전체병상의 5%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응급수술이 필요한 신경외과 흉부외과 외상외과 등은 최소한의 인력만 고용한다.

암이나 골절수술 같은 비응급 질환에 투입되는 인력과 자원을 응급질환으로 옮기려면 세심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

정 위원장은 "응급환자 수술이나 병실이 우선 확보돼야 한다. 비응급환자의 수술이나 예약입원은 뒤로 미뤄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윤 서울대의대 교수는 "병원이 응급환자에 입원할 병실과 수술할 의사를 내주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병원들은 응급실 의사인력이 부족한 탓을 하지만 미국 병원의 경우 응급의사가 부족하면 외래나 병동에 있는 의사를 응급실로 불러 내려오게 한다. 비응급환자의 진료는 뒤로 미루고 응급환자의 생명을 먼저 챙기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비응급 환자군의 병상이나 수술을 미룰 수 있는데도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하거나 타원으로 전원했을 경우에는 벌칙이 부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응급질환 환자군을 진료하는 수가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의료 행위를 많이 할수록 수익이 더 발생하는 행위별수가제로는 응급질환 진료에 대한 보상은 어렵다.

응급진료는 행위수량를 임의로 늘릴 수 없고 예약진료처럼 낮 시간에 몰아서 진료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은 "'응급'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둔 사후보상으로 수가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일정한 인력 병상 수술실 등 기준을 두고 유지할 경우 행위수에 상관없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중환자 진료에 특화된 상급종합병원부터 이런 보상체계와 응급 우선 진료체계를 도입하고 권역별 응급센터도 비슷한 기준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방식을 정착하려면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 및 선별'에 인센티브를 더 주는 것도 필요하다.

◆응급질환 원인인 만성질환 등한시 안돼 = 2025년 노인인구 1000만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노인인구에게 흔한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질환 관리도 필수적 의료서비스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만성질환 관리를 잘해야 심혈관계질환 등의 응급질환 발생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차의료영역이 '필수의료'가 아닌 듯 방치해선 안된다. 특히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필수의료의 범위를 소아 응급 외상 분만 같은 식으로 항목화하면서 거꾸로 수많은 응급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만성질환에 대한 일차의료부분을 방치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일차의료는 의사들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할 부분이다. 일차진료는 1차 2차 3차의료기관 같은 전달체계의 문제가 아니다. 최초 접촉과 지속적 진료 관리의 의미를 갖는 주치의제도 성격이 있다. 일차의료체계를 제대로 갖춰야 비응급질환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초고령사회에 맞게 진료자원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사회통합돌봄에서 보건의료 연계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더 많은 의사들이 일차의료 영역으로 진출하도록 주치의제도 시범사업, 환자등록제 시범사업 등을 많은 지역에서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일차의료에 진출하려는 의사들을 양성할 수 있는 의과대학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전문의 중심의 현행 개원동네의원체계는 필수적 의료서비스 제공에서도 걸림돌이 되고 응급진료체계에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손보험, 비급여 규제 강화 = 환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의료제도 개선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민간의료보험을 규제하고 우리나라도 일본의 혼합진료금지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 교수에 따르면 건강보험 가입자들도 낮은 건강보험보장성을 보완하기 위해 민간의료보험을 든다. 민간의료보험과 더불어 도수치료 미용주사 백내장수술 같은 비급여진료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의학적으로 큰 도움이 안되거나 할 필요가 없는 진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건강보험 진료비보다 두세배 비싸니 의사와 병원은 비급여 진료를 선호한다.

2007년 실손의료보험이 전면 허용된 이후 매년 10% 정도 팽창해 이제 4000만명이 가입하고 22조원 시장을 형성했다. 산업적으로는 성공했겠지만 각종 낭비적 의료의 온상이라는 점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와 건강관리서비스 인증, 비대면 진료앱 도입 등은 민간보험 활성화를 더욱 촉진한다.

정 위원장은 "의사들이 선택적 진료영역에서 높은 초과수익을 거두게 되면서 필수의료분야의 인력부족 현상이 심화된다. 민영보험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에 나서야 한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건강관리서비스 인증,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비대면진료 전면허용'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진료수가 지불제도(행위별수가제), 인구당 의사와 병상수를 가지고 있는 일본은 실손의료보험이 없다. 일본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높기 때문이지만 비급여 진료를 섞지 못하도록 하는 혼합진료금지 규정 때문이다.

비급여와 급여진료를 섞지 못하게 되면 필수적 의료서비스는 대부분 건강보험에서 제공하고, 건강보험의 적정수가도 완성될 수 있어 건강보험진료만으로 운영되는 의료기관이 내실화된다. 비급여진료는 선택영역으로 남아 공적재원에 영향을 주지 않고 피부미용이나 대체의학 등에서 운영되면서 필수 의료서비스 제공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된다.

◆수도권 병상 확대로 지방의료 붕괴 = 수도권 대형병원의 병상확대와 의료이용 쏠림 문제가 제기된 지는 오래됐다.

3일 김주경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에 따르면 2012년 12월 병상공급 과잉과 수도권 등 특정지역 집중현상, 의료이용 과다 문제를 개선하고 나아가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지역단위로 병상총량을 관리하는 시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이와 관련해서 보건의료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최근 앞으로 5년 이내 6000병상 규모의 대학병원 분원 10개를 수도권에 짓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지역주민은 반길 수 있다. 하지만 그 병원에 일할 의사와 간호사 인력은 1년 배출 의사수와 간호사의 1/3 수준인 각각 3000명과 8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결국 다른 지역 병원에서 이동해야 가능한 상황이다. 지방의료인력이 수도권에 더 몰리게 되고 응급환자-중증환자에 대한 지방의 의료수준도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병상 공급 권한을 가진 정부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김 윤 서울대의대 교수는 "보건복지부는 2019년 의료법이 개정돼 지역별 병상 공급을 규제할 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시행할 시행령·시행규칙도 만들지 않고 병상수를 관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입법조사관은 "병상 총량 규제가 신규자의 시장 진입을 막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병상 집중에 따른 의료인력과 환자의 쏠림, 투자비용 회수를 위한 필요 이상의 의료서비스 제공 등으로 개인과 사회의 비용지출이 급격히 늘어나는 문제점이 훨씬 심각하므로, 병상 관리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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