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각국 노동자 훈련 통해 친중파 육성

2023-07-12 00:00:01 게재

워싱턴포스트 "25개국서 진행되는 '루반공방' 직업훈련, 중국 소프트파워 제고 효과 톡톡"

중국정부가 각국 노동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이 현지의 호평을 받고 있다.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제조시스템부터 중국 전통 한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교육을 제공한다.

11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중국은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전세계 25개국에 30개 이상의 '루반공방'(Luban Workshop)을 운영하고 있다. 루반(魯班)은 춘추시대인 기원전 5세기 노나라에 살았던 중국의 대목수이자 발명가 이름이다. 전세계 수만명의 젊은 노동자들이 루반공방을 졸업했다.

WP는 "중국의 차관에 기반해 중국 노동력으로 건설한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가 다른 나라의 경제발전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루반공방이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 일환으로 시작

2016년 처음 도입된 루반공방은 중국의 산업력과 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글로벌 인프라 프로젝트 네트워크인 '일대일로'의 일부였다.

루반공방은 공자학원과 유사하며 때로 함께 운영되기도 했다. 2018년 전세계 149개국에 530개의 공자학원이 있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공자학원을 '중국정부의 선전수단'이라고 비판하면서 최근 몇년 동안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반면 중국정부 또는 중국기업이 후원하는 루반공방의 직업교육은 실용성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공자학원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다.

첫번째 루반공방은 2016년 중국 톈진시 주도로 태국 아유타야에 설립됐다. 톈진에 본사를 둔 화학물질 제조사가 아유타야 직업훈련생들에게 장비를 사용해 고숙련제조에 사용되는 유압시스템과 디지털회로 작동법을 가르쳤다. 톈진시정부는 공식문서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필요에 따라 직업교육을 통해 '중국모델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공방을 건설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번째 공방은 2017년 5월 런던 남부 크롤리칼리지에 개설됐다. 톈진푸드그룹이 후원한 이 공방에서 학생들은 중국식 페이스트리와 쿵파오치킨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이 공방 프로그램은 2020년 종료됐다. 크롤리칼리지 측은 '루반공방 파일럿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2017년 말 인도네시아 포노로고에 세번째 루반공방이 문을 열었다. 톈진시와 인도네시아에 모두 연고를 둔 중국태생 사업가 재스퍼 호가 공방을 주도했다. 포노로고 루반공방은 자동차제조기술과 드론기술, 로봇공학 및 IT에 중점을 뒀다. 톈진에 본사를 두고 IT서비스와 기술제품을 제공하는 치청테크놀로지가 인도네시아 교사들을 교육하고 기술적으로 지원했다.

이후 루반공방은 캄보디아 프놈펜과 파키스탄 라호르로 확장됐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중국과 가까운 포르투갈에서도 전기자동화와 산업용로봇에 초점을 맞춘 루반공방이 개설됐다. 포르투갈 루반공방을 공동설립한 톈진직업기계전기대학 총장은 "중국기술을 '선진국'에 수출하는 것은 중국의 발전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10월 중국·아프리카 협력 외교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 전역에 10개의 루반공방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케냐와 지부티 말리 코트디부아르 에티오피아에 루반공방이 개설됐다.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서 중국어교육이 포함된 대학수준 인증서를 제공한다.

아프리카대륙의 루반공방은 중국-아프리카 협력의 핵심 구성요소다. 에티오피아 루반공방은 동아프리카 전역의 루반공방에서 가르칠 교수진을 양성하며, 해외훈련 및 교육에 대한 중국의 포괄적인 접근방식을 보여준다. 올해 4월엔 중국 기술기업 화웨이가 자사의 기술 및 제품에 특화된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에티오피아 박사과정 학생인 체가예 알라무는 "우리는 중국의 혁신사례를 배우고 이를 대형프로젝트에 적용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인도네시아 포노로고에서는 약 3600명의 학생이 루반공방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직업교육 커리큘럼의 필수과정으로 자리잡았다. 졸업생 72%가 일자리를 찾았으며 대부분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많은 도시들이 루반공방을 유치하려 노력하고 있다.

WP는 "중국기업과 교육기관을 외교의 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중국의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루반공방은 경제력과 함께 소프트파워를 확장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상징한다"며 "중국은 기술력을 활용해 자국을 미국의 대안 강국이자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전했다.

호주국립대 연구원이자 곧 발표될 '루반공방 보고서' 저자인 더크 반 데르 클리는 "중국의 목표는 세계 신흥경제를 자국의 산업시스템에 더욱 긴밀히 연계하는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혜국에 진정한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루반공방 역시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근본적인 목표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신흥경제국과 긴밀히 연계

중국은 각 루반공방의 전문분야를 결정한다. 일부 공방은 일대일로나 기타 중국의 주요 사업에 맞춰져 있다. 목표는 현지노동자를 훈련시켜 중국기업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중국노동자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지부티의 루반공방에서는 중국이 투자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행 전기철도'를 운영할 인력을 양성한다. 우간다 루반공방은 중국이 운영하는 '중국-우간다 음발레 산업단지' 실무교육학교와 함께 설립됐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선임연구원 스티븐 펠드스타인은 루반공방에 대해 "중국 노동력 사용에 대한 현지국가들의 오랜 비판을 해결하는 동시에 이들 국가들이 미래에 중국기술을 채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매우 현명한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개도국에 거액의 빚을 안겼다는 비판을 받아온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대일로 프로그램을 축소했다. 또 인프라 대출을 받은 국가에 구제금융을 제공해야 했다. 미국 리서치기업 로디움그룹연구소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부터 올해 3월 말까지 해외 인프라 프로젝트와 관련된 780억달러 이상의 대출을 재협상하거나 상각했다. 가나와 스리랑카 레바논 등 9개국이 2020년 이후 채무불이행에 빠졌다.

보스턴대 글로벌개발 정책센터의 선임 학술연구원 레베카 레이는 "루반공방은 해외에서 더 많은 활동을 계속하되 목표에 보다 적합한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루반공방은 시진핑 주석의 새로운 일대일로 구호인 '작고 아름다운' 프로젝트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대중국 반감 줄고 호감 높아져

루반공방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반감은 낮아지고 호감은 높아지고 있다. WP는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 남아공에서 인터뷰한 루반공방 교사와 학생, 졸업생 10여명은 중국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고마움을 표시했다"며 "반면 중국의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 소수민족, 특히 위구르 무슬림에 대한 처우에 대한 비판은 일축했다"고 전했다.

2021년 호주 로위연구소 여론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국민 10명 중 6명은 '다른 국가와 협력해 중국의 영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거나 매우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22년 호주국립대 논문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화웨이를 주요 사이버보안 파트너로 삼고 있으며 민감한 인프라인 5G네트워크에 대한 화웨이의 참여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우려를 하지 않고 있다.

이는 화웨이의 적극적인 현지교육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화웨이는 인도네시아 전역의 33개 이상의 대학에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화웨이는 2019년부터 약 7000명의 인도네시아 공무원을 교육했으며, 2020년에는 10만명의 인도네시아인에게 클라우드 컴퓨팅과 5G를 포함한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무슬림에 대한 중국의 처우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WP에 따르면 루반공방 참여자들은 중국에서 무슬림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확신하며 서방세계의 인식과 반대되는 입장을 보였다.

중국에서 40일 동안 자동차공학과 로봇공학, 드론교육을 받은 인도네시아 교사 이르판 프리요노는 "인도네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주 금요일 무슬림 두개골 모자를 쓰고 모스크에 갔다"며 "중국은 무슬림을 존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카르타 소재 경제법연구센터 연구원 무하마드 줄피카르 라흐마트는 "루반공방은 특히 인도네시아 무슬림공동체와 친선을 쌓기 위한 중국의 광범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다른 무슬림 국가에서도 비슷한 노력이 엿보인다. 지열에너지와 천연가스 수송에 초점을 맞춘 타지키스탄 루반공방의 뒤를 이어 올해 12월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전역에 새로운 루반공방이 문을 연다.

라흐마트는 연구논문에서 "중국이 이슬람학문을 추구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고 있다"며 "인도네시아 대학과 교육기관이 중국에 학생을 파견하는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학생들이 주요 이슈에 대해 중국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자국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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