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도서관│⑤ 북스타트코리아

"아가야, 우리 사회가 너를 환영해" … 다양성 확대에 중점

2023-08-03 10:55:18 게재

아기에게 책꾸러미 선물하고 책 읽어주며 환대 … 온가족 함께 공공도서관 가는 문화 만들어·도서관 수 증가에도 영향

송현경 기자: 올해 북스타트 사업이 20주년을 맞았다.

이경근 북스타트코리아 총괄실장: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되고 난 이후 2000년대 초반 다양한 사회운동을 하는 결사체들이 만들어졌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책사회)도 2001년 만들어졌다. 당시 영국의 북스타트 사업을 알게 됐고 책사회, 지역 활동가, 학계, 언론계, 출판계 등이 모여 우리나라에서 북스타트를 시작하자는 논의를 하게 됐다. 2003년 중랑구 보건소에서 북스타트 출범식을 하고 책꾸러미를 나눠줬다.

처음 후원금에 기초 지방자치단체별로 예산을 편성해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중앙 정부와 광역 지자체도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북스타트 책꾸러미는 나이에 따라 7가지로 확장했다. 주로 공공도서관을 기반으로 사업을 펼친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랑구 중랑구립정보도서관에서 이신영 중랑구립정보도서관 북스타트 담당 사서(왼쪽), 이경근 북스타트코리아 총괄실장(가운데), 박소희 늘푸른어린이도서관장이 모여 북스타트 사업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사진 이의종

 


북스타트로 사회가 아이를 함께 기른다

박소희 늘푸른어린이도서관장: 인천 연수구는 1990년대 중반 형성된 신도시로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공공도서관 유치 운동을 했다. 그렇게 개관한 도서관이 연수도서관과 계양도서관이다. 이용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아기들이 바닥에서 기어다니며 책을 보고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유아차(유모차)를 탄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책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다 북스타트를 알게 됐고 인천 연수구에서도 시작하게 됐다.

이경근: 북스타트 프로그램 현장에 가보면 아기들이 방긋방긋 웃는다. 아기들이 읽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의 얘기를 듣는 것은 정말 좋아한다. 아기에겐 '까꿍' 소리도 재미있고 책의 그림들, 색깔들도 너무 재미있다. 또 책에는 다양성 인권 평등 행복 사랑과 같은 중요한 가치들이 담겨 있다.

북스타트 사업은 사회적으로 아이를 함께 길러내는 사업이다. 아기에게 말하는 거다. "잘 왔어. 우리 사회가 너를 환영해. 국가가, 지역이, 도서관이, 사서 선생님이, 옆집 아주머니가 너를 환영한다."

박소희: 사업 초기엔 거의 활동가들의 힘으로 움직였다. 예산을 편성할 수 있도록 활동가들이 지자체를 설득했다. 당시엔 일화도 많았다. 아기에게 책을 전달해야 하는데 받으러 오지 않으면 가정에 찾아갔다. 다문화 가정을 방문하면서 어떻게 그림책을 읽어줘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북스타트 사업은 공공도서관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북스타트 사업을 시작으로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지자체들이 공공도서관을 열심히 건립하게 됐다.

2020년 북스타트 공모전에 출품된 사진. 아기가 아빠와 책을 읽으며 웃고 있다. 사진 북스타트코리아 제공


0세 나이에 맞는 그림책을 읽다

송현경: 실제 현장에서 북스타트는 어떻게 진행되나.

이신영 중랑구립정보도서관 사서: 올해 중랑구립정보도서관은 북스타트 사업을 영유아 프로그램과 양육자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영유아도 나이에 따라 나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영아를 대상으로 하는 신체놀이, 오감에 집중한 프로그램과 만 4~6세 문해력이 성장하는 시기에 할 수 있는 책놀이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책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1~2달 여러 회차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양육자 프로그램의 경우, 기존엔 그림책 관련 교육이나 육아법 등에 집중했고 그림책 관련 활동가도 양성했다. 올해엔 교육법이나 방법론에 집중하기보다는 양육과 돌봄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인문학적 접근을 하고 있다. 주양육자들이 직장맘은 물론 아빠 조부모 등으로 다양화하는 가운데 돌봄은 사회적으로 탐구해볼 만한 주제다.

북스타트 참여자들은 도서관의 다양한 생애주기 사업들에 참여하면서 꾸준히 책과 함께하며 성장한다.

박소희: 북스타트 사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책꾸러미다. 북스타트 사업에서 1년에 1차례 각 단계별 30여권의 책을 선정해 공지하면 각 지역에서 단계에 맞춰 그중 2권을 선정해 선물한다. 우리 작가가 쓴 우리 그림책을 선물하는 것이 원칙이다. 아기들이 물고 빨기 때문에 딱딱하고 두꺼운 용지를 사용한다. 아기들이 위험하지 않게 모서리가 둥근 책을 선정한다.

이경근: 책을 선정할 때 '창의력 발달'과 같은 문구가 들어간 책들은 선정하지 않는다. 그 문구들은 아기의 현재 삶을 존중하기보다는 아기에게 미래를 위해 준비하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0세를 위해서는 0세로서 행복하게 볼 수 있는 책을 선정한다. 5세가 읽을 책을 읽으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지 않는다. 내용 중 편협한 시각이 있는지도 살핀다.

박소희: 20년 전만 해도 영아를 독자로 하는 그림책이 없었다. 그래서 출판사와 연구해 책을 개발했고 아기들에게 안전하도록 콩기름으로 인쇄했다. 북스타트는 그림책 출판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이신영: 실제로 도서관에서 이용자들을 만나다 보면 요즘엔 성인들이 그림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을 느낀다. 성인들의 그림책 읽는 모임을 많이 볼 수 있다.

어르신 대상 시니어 북스타트 시작

송현경: 북스타트 사업은 점차 확장해왔다.

박소희: 북스타트 사업은 사회 흐름에 맞춰 변화했다. 초반에 활동가들은 양육자와 아이가 동등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내 뜻에 맞는 아이가 되도록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눈 맞추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2010년쯤엔 조부모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직장맘들이 생기고 재취업하고자 하는 여성들도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양육 환경을 만들어주고 어린이집 등 사회적 육아기관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상황이 됐다.

최근엔 출생률이 감소하면서 한명, 한명이 소중한 시대가 됐다. 아기들 각각에 개별적으로 맞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경근: 올해 시범사업으로 '북스타트 아기마중'이라는 사업을 하고 있다. 예비 부모나 예비 양육자가 먼저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아기와 육아를 기쁨과 경이로움으로 만날 수 있도록 매력적인 그림책을 준비한다.

또 '시니어 북스타트'를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다. 어르신들에게 그림책으로 된 책꾸러미를 선물하고 프로그램을 연다.

아기가 도서관을 방문한 게 처음엔 혁신이었지만 지금은 당연한 것처럼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 어르신들이 도서관에 자연스럽게 방문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많은 어르신들이 도서관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전국 23개 도서관에서 실험 중이다. 책으로 인생을 시작하자는 의미의 '북스타트 리스타트'라는 문구와 함께 그림책으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예술 놀이를 고민하고 있다.

이신영: 중랑구립정보도서관은 시니어 북스타트 시범사업으로 '그림책 인문학 워크숍'을 기획했다. 신중년을 대상으로 그림책을 함께 감상하고 토론하며 그림책을 실제로 만들기까지 해보려고 한다. 워크숍을 다 마치면 꼭 전시를 해서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다.

생애주기별 북스타트로 소통하는 사회를

송현경: 북스타트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운영할 계획인가.

이경근: 보다 다양성을 확대해나가려고 한다. 영국의 경우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대상 북스타트 사업이 별도로 진행된다. 책 역시 30개 언어로 준비해 제공한다.

최근엔 매체 다양성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예를 들면 전자책은 계속 좋지 않다고 해야 할까. 전자책은 저렴하게 만들고 손쉽게 유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신진작가들이 처음 책을 내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오디오북은 시각장애인과 어르신에게 중요한 매체다.

이신영: 도서관도 기술 발달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한다. 도서관은 전통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기관이었다.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챗GPT 등 AI 시대가 되면서 근본적으로 도서관과 사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해도 결국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물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최근엔 기술이 발달하고 온라인 플랫폼이 확산되면서 온라인 모임이 오프라인 모임으로 연결되는 등 오히려 사람들 간 만남이 확장되는 느낌도 있다. 북스타트 역시 사람이 만나서 함께하는 일이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박소희: 생애주기별 북스타트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책읽기가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길 희망한다. 먼저 책을 읽은 사람들이 책으로 연결되고 서로 소통하는 사회가 우리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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