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세법개정 유감

2013-08-19 10:56:12 게재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비과세 감면을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여론의 강한 역풍을 받고, 급기야 세금 부담 상한선을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리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그런데 이번 세법 개정 파동에서 여야 정치권의 반응과 대통령 및 정부의 대응은 우리 정치와 정책 과정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먼저, 근원적 문제는 덮어두고 대중영합주의적 처방으로 일단 모면하고 보자는 대응을 대통령과 정부가 선택했다는 점이다. 세금 부담 상한선을 조정해 세 부담이 늘어나는 중산층 근로자들의 분노를 피하겠다는 개정안은 결국 세수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하경제에 대한 세수를 늘리는 세무조사를 통해 부족한 세금을 보완하겠다는 말은 일단 비는 피하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꼼수일 뿐이다.

세법 개정안에 대한 야당의 반응 역시 대중영합주의적이었다. 사실상 증세에 대한 중산층의 반발을 세금폭탄이라는 감정에 호소하는 구호로 포장한 것이다.

복지확대와 증세를 주장하던 민주당이 이처럼 말초적으로 반응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의 실정에 기대는 전략 외에 민주당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모든 재정지출은 결국 '국민 부담'

세법 개정 파동에서 여당은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MB정부에서의 부자와 대기업 감세를 철회하지 않고, 금융차명거래를 이용한 천문학적 탈세와 자산 및 금융 소득 등에 대한 세율도 그대로 두고, 부당내부거래로 벌어들이는 재벌총수일가의 사익편취에 대한 세 부담은 오히려 낮춰주는 전제 하에서 공무원이 마련한 최선안이었다.

이런 개정안이 중산층과 여론의 역풍을 받을 것이라는 정무적 판단을 제대로 못한 것은 여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실무를 담당한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의 일인양 발뺌하는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집권당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원적 문제는 덮어두고 피상적이고 대중영합주의적 처방으로 연명하고 있는 우리 정치와 정책 과정의 치부가 세법 개정 파동에서 드러난 것이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높은 성장을 하던 시절에는 미루고 보자는 전략의 치부가 드러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고도성장기를 벗어난 한국 경제에서, 이번 파동은 세상에 공짜는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정부의 재정지출은 궁극적으로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이제 국민에게 추가적 부담을 요구하려면, 이런 부담을 공평하게 짊어지게 되는지와 수긍할 수 있는 정책 목적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세정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오히려 이번 세법 개정 파동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합리적이고 투명한 공론 형성을 지향하는 정치와 정책 개혁이 시발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해 본다.

대중영합주의적 선거 전략과 다음 정권과 세대로 부담을 전가하는 정책 집행의 반복은 필연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 대(大)위기를 가져온다.

근본적 문제는 회피하고 대중영합적이고 임시방편적이었던 정치와 정책과의 단절이 이뤄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지는 지금부터 정치인, 언론, 시민사회 등이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