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최고금리 인하 전후' 대출 시장 분석

신용대출 받은 중·저신용자는 줄고, 고신용 차주는 늘어

2023-11-08 10:49:03 게재

코로나19 겪으면서 가계부채 급증했지만 취약계층 대출 접근성 낮아져

대부업 올 상반기 신규 대출 6만명 … 2020~2022년 연 25만~32만명

'법정 최고금리 인하의 역설'이 현실로 나타났다.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대출금리 한도를 낮추면 저신용자들이 고금리 고통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금융회사들이 저신용자들에 대한 대출을 줄이거나 중단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신용자들은 돈을 빌리려고 연 1000% 이상의 이자를 제시하는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렸다.


7일 내일신문이 서민금융연구원과 함께 2021년 7월 법정 최고금리를 24%에서 20%로 인하했던 시점을 전후해 3년간(2020년 ~2023년 6월말) 신용등급별 신용대출 차주와 대출잔액(자료 NICE신용정보)을 비교한 결과 신용등급 상위 1구간(상위 10% 이상)~4구간(상위 30~40%) 차주수는 2020년말 370만2000명에서 410만9000명으로 40만7000명(11%) 늘어난 반면, 중하위 5구간(상위40~50%)~10구간(하위 10% 이하) 차주수는 같은 기간 855만4000명에서 789만6000명으로 65만8000명(7.6%) 감소했다.

◆신용평점 중위 구간, 신용대출 34조원 줄어 = 신용등급별 신용대출 잔액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상위 구간(1~4)은 같은 기간 17조3314억원(11.5%) 증가한 반면, 중위 구간(5~6)은 34조4978억(27.3%) 감소했다.

결론적으로 상위 구간은 차주수와 신용대출 잔액이 모두 증가했고 차주 1인당 신용대출 금액도 25.9% 증가했다. 하지만 중위 구간은 차주수 및 신용대출 잔액이 모두 감소했고 차주 1인당 신용대출 금액도 13.7% 감소해 접근성과 가용성이 모두 악화됐다. 다만 최하위 구간(9~10)은 2조7481억원 증가했는데, 차주수는 감소했지만 정책자금 집중으로 1인당 신용대출액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이는 경기침체, 시장금리 인상, 금융회사의 보수적 대출형태 등으로 신용접근성이 저하됐기 때문"이라며 "일부러 신용등급을 낮춰 정책자금을 받으려는 기현상도 발견됐다"고 밝혔다.


중·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대출 영업을 하는 대부업체의 신규 차주수 현황을 보면 취약계층의 금융접근성 악화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2020년 대부업 신규 차주수는 32만7000명이었지만 2021년 30만7000명, 지난해 25만명으로 줄었고, 올해 상반기는 6만4000명에 그쳤다. 올해 하반기 신규 차주가 상반기 수준을 유지해도 전년 대비 절반에 불과한 셈이다. 대부업체의 가계대출 신규금액은 2020년 3조5811억원에서 2021년 5조2107억원으로 늘었지만 지난해 4조5038억원으로 줄었고, 올해 상반기는 5792억원으로 급감했다.

코로나19 이후 가계부채가 급증했지만 취약계층의 대출 접근성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대부업체들은 저금리 시기에 조달금리가 4~5%였지만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조달금리가 점차 상승해 9~10%대로 뛰었다. 조달금리가 2배 이상 상승했지만 오히려 법정 최고금리는 24%에서 20%로 내려가면서 수익성을 내기 어려워 사실상 신규 영업을 중단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서민·취약계층에 금융지원 제때 공급하도록 노력" |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7일 서울 강남구 서울금융복지센터 청년동행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서민·취약계층에 꼭 필요한 금융 지원이 제때 공급되고, 불법채권추심 등 불법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강력하고 꾸준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대부업 영업 중단 추세, 2금융권 확대 우려 =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대부업뿐 아니라 은행을 제외한 2금융권이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은행은 예금을 통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지만 2금융권은 계속된 금리 인상으로 조달 금리가 높아져 수익을 내기 힘들어지면 대출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연동형 최고금리 체계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최고금리 체계는 저신용자와 서민의 고금리 부담을 덜어주고 가계부채 부담을 경감시켜주고자 도입됐지만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낮은 수준의 고정형 최고금리는 시장참여자가 경제 상황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며 "그로 인해 저신용자의 금융소외 및 대부업자의 시장이탈 등 금융시장에서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연 20%로 고정돼 있는 최고금리를 대부금융 등에 국한해 시장금리 연동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대출 금액과 종류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최고 금리 상한을 두고, 연동형 최고금리 체계는 분기 또는 기간별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상한'으로 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대부업의 경우 금융권 차입이 어려우며, 자산유동화를 통한 자금조달도 어렵기 때문에 기준금리는 2금융권인 카드채 발행금리를 기준으로 할 필요가 있다"며 "금리의 실효성을 위해 최고금리는 시장금리보다 높게 설정돼야 하고, 비용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 국가들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도입 = 연동형 최고금리 제도는 주요 국가에서 실제로 운영되고 있다. 국가별 최고금리 제도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97개국 중 최소 76개 국가가 대출에 대한 최고금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최소 26개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고정형 최고금리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중 2/3는 저소득 또는 저중소득 국가들로 나타났다. EU(유럽연합) 회원국 중 고정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를 채택하는 국가는 5곳뿐이다. 선진국 또는 고소득 국가들은 대부분 연동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금리의 상승과 하락에 따라 법정 최고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방식이다.

최고금리제를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는 프랑스는 과거 고정형 최고금리 체계를 도입했지만 연동형으로 전환했다. 고정형 최고금리 제도는 다양한 대출의 자금조달 비용을 고려할 수 없었고 자금조달 비용 등의 부담이 커지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실무상 적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매번 최고금리에 대한 임시 조치를 취했던 프랑스 정부는 결국 고정형을 포기했다. 현재는 중앙은행이 분기별로 공시하는 직전 분기 동종대출 시장금리 평균의 133%를 최고금리로 정하고 있다.

미국은 각 주별로 법적 이자율을 제한하고 있지만 대출규모와 만기별 금리 상한을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소액대부시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페이데이론(Payday loan, 일명 '월급날 대출'로 500달러 미만 단기대출)은 금리 상한이 높고, 500달러 이상 대출에 대해 13개주의 법정 최고금리는 연 36~60% 수준이다.

김 교수는 "프랑스와 미국의 사례를 보면 시장 상황보다 낮은 수준의 법정 최고금리는 오히려 약탈적 고리대금업과 불법 대부업을 활성화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20% 고정형 단일 상한 금리를 도입했으나,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따라 2006년 대비 올해 3월 등록 대금업체는 89.2%, 소비자신용대출 잔액은 62.8% 감소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해 시장이 완전히 망가졌다"며 우리나라 역시 일본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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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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