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실리' 갈림길에 선 민주당 … 이재명 "현실 무시 못해"

2023-11-29 10:49:57 게재

비례제 토론 전 "1당·과반 놓치면 여당 역주행 못 막아" 강조

'위성정당 금지·병립형 반대' 약속 불이행 출구전략 해석도

"신뢰 잃으면 영원히 못 이겨" 반발 … 30일 의총 격론 불가피

더불어민주당이 30일 의원총회를 열어 내년 총선에 적용될 선거제 개편안을 논의한다. 비례대표 배분 방식을 놓고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와 병립형 회귀를 놓고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는 가운데 이재명 대표는 28일 '1당·과반 의석'을 강조하며 "다른 생각"을 언급했다. 이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약속했던 위성정당 금지·병립형 회귀 반대 입장을 거둬들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연동형 유지 및 위성정당 방지법 처리 촉구 기자회견 | 지난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2024정치개혁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연동형 유지 및 위성정당 방지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민주당은 30일 의원총회를 열고 여야 간 선거제 협상,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선거제 개편안 논의 상황 등을 보고하고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에 대한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놓고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와 병립형 회귀를 놓고 찬반 의견이 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하되 '비례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원들이 요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병립형 회귀'도 검토해야 한다는 '실리론'을 펴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선거제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던 이재명 대표가 '이상과 현실의 조화' 등을 들며 현실론 입장을 내놓으면서 여야 선거법 협상에서 민주당의 실리론이 더욱 커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는 28일 개인 유튜브 방송을 통해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정상적인 정치가 작동하는 사회라면 상식과 보편적 국민 정서를 고려해 타협과 대화를 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집권 여당의 과거 퇴행, 역주행을 막을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창했던 '서생적 문제의식·상인의 현실감각'을 들면서 "이상과 현실의 조화로 한발짝씩 나아가는게 중요하다"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더 나쁜 세상이 되지 않게 막는 것도 아주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했다.

이어 "최근 벌어진 (선거제 개편 관련) 여러 논쟁들도 이 문제와 관련해 현실을 어떻게 파악하느냐, 우리의 역할을 뭐라고 규정하느냐 진단과 대처 방안이 다른 것(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우리가 나아가야 될 길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특히 '이기는 선거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 주세요'라는 시청자 댓글을 읽은 후 "맞다. 선거는 승부 아닌가.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 있겠나"라고 말했다. "어쨌든 선거는, 뭐 무조건은 아니지만, 어쨌든 결과로는 이겨야 한다"고도 했다. 이 대표의 이같은 언급을 두고 비례대표제 논의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 또는 '위성정당을 유지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야 한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에 담았던 위성정당 금지 등의 정치개혁 약속을 '현실적 이유'를 들어 깨겠다는 언급으로도 읽힌다.

민주당 안에선 그간 연동형 유지를 전제로 한 의원들의 목소리가 컸다. 김상희 의원 등 75명의 민주당 의원은 위성정당 금지·병립형 회귀 반대 등을 골자로 한 '위성정당 방지법' 당론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발의자인 김상희 의원은 28일 "정치개혁은 민주당의 숙원이며 한국 정치의 퇴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현행 선거제도를 과거로 회귀하겠다는 것은 정치개혁의 의지를 우리 스스로 뒤집는 꼴이다. 위성정당 방지법을 당론으로 채택하여 어느 정당도 직접적인 위성정당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 법안에 참여한 이탄희 의원은 위성정당과 본정당 합당 시 국고보조금을 삭감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도 발의해둔 상태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총선용 위성정당을 방지하기 위한 연동형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정치개혁을 약속한 만큼 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두관 의원은 28일 페이스북에 "정치개혁을 약속했는데, 당 지도부가 병립형 비례를 놓고 여당과 야합할 것이란 소식이 들린다"면서 "병립형은 소탐대실"이라고 지적했다. 이탄희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당장의 이익보다 대의와 가치를 선택하는 김대중·노무현 정신으로 돌아가자"면서 지역구인 경기 용인정 출마를 포기하겠다며 "나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고 험지든 어디든 당이 가라 하는 곳으로 가겠다"라고도 했다.

직전 원내대표였던 박광온 의원은 SNS에 "민주당은 국민 개혁정당으로서 위성정당을 방지하고, 연동형 비례선거제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민 의원은 이 대표의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 발언을 들어 "선거 승리를 위해 약속을 저버리고 선거제 퇴행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라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겠다고 덤비면 영원히 못 이긴다"고 주장했다.

반면 현실적 선택이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진성준 의원은 29일 CBS라디오 김현정 뉴스쇼에서 "내년 총선에서 윤석열정권을 심판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방침인데 원내 1당이 무너지고 다수당을 놓치면 퇴행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며 "당초 목표와는 상반된 결과가 예상되는 길로 무작정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의 이상적인 모습 약속과 당면한 총선 정국에서 현실적인 목표는 다를 수 있다"면서 "국민의힘에서 (연동형 유지는) 절대로 안 된다, 심지어 위성정당 금지법조차도 안 된다고 하면서 병립형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데 현실적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약속 불이행에 대한 국민적 지탄이 제기될 수 있으나 비례의석을 전부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용민 의원은 27일 SNS에 "민주당이 승리하는 선거제도를 주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격론이 예상된 가운데 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이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문제제기 강도를 높이는 상황과 맞물려 긴장감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명환 박준규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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