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정치지도자의 올바른 민생 챙기기
요즘 '민생 챙기기'라는 말이 정치인들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정치가 궁극적으로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이를 위한 정치인들의 노력을 민생 챙기기라고 부른다면, 민생 챙기기는 당연히 정치인들이 실천해야할 덕목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말하는 민생 챙기기가 과연 이런 진정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의문이다.
민생 챙기기 또는 민생 행보라고 하면, 으레 기자들을 대동해 현장을 방문하기 일쑤이다. 물론 국민들이 당면하는 현실을 제대로 아는 것은 올바른 민생 챙기기를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들이 현장을 찾고 당위론적으로 옳은 소리 또는 국민들 귀에 달콤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진정한 민생 챙기기는 아니다.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가 현장 지도를 통해 민생을 챙기고 독려해서 국민 삶의 질이 향상된다면, 아마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이 우리보다 훨씬 더 높아야만 할 것이다. 정치지도자들의 현장 방문은 권위주의적 통치자들이 좋아하는 정권 홍보 수단일 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민생챙기기인가, 정권홍보인가
정치지도자의 올바른 민생 챙기기는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입법과 정책 집행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도,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불편함이나 불합리를 바로 잡는 정책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느끼거나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법과 정책만으로 궁극적인 국민 삶의 향상이 이뤄질 수는 없다.
오히려 국민 삶의 질에 심층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다 근원적인 사회, 경제, 정치 문제를 회피하거나 불리한 국면을 전환하고자 하는 의도로 민생 챙기기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혹은 즉각적이고 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민생 챙기기라고 국민과 여론을 호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는 민생 챙기기 정책이고, 경제민주화나 복지 그리고 국정원 개혁은 민생 챙기기 정책이 아니라는 식의 잘못된 프레임을 정치권이 만들고 있다.
정부의 역할 재정립, 경제 구조 혁신, 사회 안정망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복지의 구현 등 근원적인 법제도와 정책의 변혁 없이는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였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의 인위적 경기부양 정책이나 규제 완화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값비싼 경험을 이미 MB정부에서 한 바 있다.
재벌체제로는 '성장'도 어렵다
개발도상국 시기의 재벌구조와 정부의 적극적 개입 정책으로는 한국 경제가 단계를 뛰어 넘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정책은 궁극적으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담보하게 하는 근원적인 민생 챙기기 정책인 것이다.
국민 삶의 질이 경제적인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위기는 궁극적으로 국민 삶의 질의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민생 챙기기가 우리 사회의 근원적 문제를 덮고 피상적이고 대중영합적 땜질식 정책 대응을 미화하기 위해 오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복지국가라는 세 가지 근본 가치를 실현하는 법제도의 확립과 정책의 집행이 바로 민생 챙기기의 핵심임을 정치지도자들이 망각해서는 안 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ㆍ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