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금지, 재벌생태계 변화오나 ② - 순환출자 끊어도 경영권 위협 없다

2013-08-27 11:02:40 게재

LG그룹, 총수지배력 더 강화됐다

지주사 전환으로 투명성 확보 … 재계 '경영권 방어 때문에 투자 못한다' 핑계

내일신문 - 서울대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공동기획

재계가 순환출자 금지에 반대하며 가장 먼저 내세우는 논리는 '순환출자를 금지하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약해져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고 이에 따라 대규모 투자나 고용도 불가능해진다'는 주장도 되풀이된다.

하지만 내일신문이 서울대학교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와 공동으로 재벌의 지주회사 전환과정을 분석한 결과는 정반대였다.

재벌 중에는 지주회사로 전환해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는 곳들도 있다. 지난 2003년 지주회사로 탈바꿈한 LG그룹이 대표적인 예다.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분석에 따르면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이전인 2001년 4월 기준으로 LG그룹은 'LG화학-LG전자-LG캐피탈(2002년 이전 LG카드)-LG화학'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통해 총수일가가 그룹 전체를 지배했다. 당시 주력기업인 LG화학과 LG전자에 대한 총수일가의 지분율은 우선주를 포함해 각각 6.16%와 6.32%에 불과했다.

지주사 전환 이후 총수와 특수관계인의 지주사 지분(보통주 기준)은 2003년 38.41%, 2004년 49.19%까지 증가했고 2007년 이후에도 46%선을 유지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LG그룹은 지주회사가 될 기업 자사주를 매입한 뒤 인적분할 방식을 활용했다. 인적분할을 하게 되면 존속회사는 이 비율만큼 신설회사에 대한 지분을 갖게 되는데, 존속회사가 보유한 신설회사의 지분은 투자자산으로 분류돼 그만큼 자본이 늘어나는 효과를 보게 된다.

LG그룹은 또 공개매수를 통해 지주사 지분과 총수일가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을 교환했다. 지주사는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늘리고 총수 일가는 지주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지주사 전환에 들어간 순수비용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추산됐다. 자사주 매입과 총수일가의 지주사 지분 매입, 지주사의 자회사 지분매입에 일부 현금이 들어간다 해도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산의 종류가 바뀐 것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또 현물출자나 자기주식교환으로 인한 양도차익에 대해서는 해당 지주사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양도소득세와 법인세 과세이연 혜택을 받았다. 순수 비용은 거래대금의 0.5% 수준에 불과한 증권거래세 정도였다.

LG그룹이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주사로 전환했지만 경영권 방어 비용으로 인해 투자를 못한다는 이야기는 나온 적이 없다.

그런데도 재벌들이 경영권 위협과 투자여력 상실 등을 핑계로 순환출자를 고집하는 것은 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가공자본을 늘리거나 금융회사를 지배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재벌 2~3세들이 소유한 비상장회사를 종자기업으로 삼아 그룹 경영권을 통째로 넘겨주는 편법 승계가 힘들어진다. 반드시 순환출자금지가 필요한 이유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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