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중용(中庸)이 필요한 한국, 넘치는 중국

2012-06-13 14:39:12 게재

중용(中庸)은 유교에서 도덕행위의 최고기준으로 삼는 윤리사상이다. 중용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양쪽을 버리며 중간을 취하는 상태(常態)를 말한다.

유교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중국은 신문화운동을 시작으로 급진적인 사회개혁운동이 펼쳐졌다. 그 와중에 국민당과 공산당은 극과 극으로 싸웠고 1949년의 정권은 결국 총대에서 나왔다. 중용지도(中庸之道)는 아니었다.

그 후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은 모두가 급진적인, 극좌적인 운동이었다. 역시 중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념의 대립이 시대의 주류였던 만큼 중도가 설 공간은 없었고 극단이 설 공간은 넓었다. 그렇지만 중용지도는 중국문화의 골수를 이룬 핵심 가치관이었다.

중국은 중용에 힘입어 문화대혁명이란 극단에서 벗어났다. 극좌도 극우도 아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조화를 이루는 중용의 길을 걸었다. 중국이 강조하는 '조화로운 사회'는 결국 중용을 일컫는다. 대외관계에서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은 어떨까? 남북분단은 극과 극의 산물이지 중용의 산물이 아니다. 1945년 해방공간에서 중도는 있었지만 설 자리가 없었다. 크게는 남과 북으로, 작게는 남한 내 좌우대립으로 한반도 정치공간은 극과 극이 차지했다.

그 구도는 전쟁이라는 극단의 극치를 불러왔고 그 후의 남북관계는 극과 극의 평행선을 달려왔다. 북한에도, 한국에도 중도는 통하지 않았다. 한국의 정치를 보면 여전히 중도의 어려움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흑이 아니면 백이라는 이분법은 결국 두 극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다. 중용의 정치는 결국 관용과 포용의 정치이다.

중국을 문혁에서 구한 것은 '중용'

한국은 남북 간에도, 남한 내 정치에서도 관용과 포용이 모자라는 것 같아 보인다. 유교를 완벽하게 지켜왔다는 한국에서 유교의 핵심인 중용이 결여되었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극이 도를 넘으면 상반된 결과를 가져 올 수밖에 없다.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이나 오늘의 남북관계가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보이는 유교를 확실하게 지켜왔고 중국은 보이지 않는 유교를 지켜왔다. 오늘의 중국을 중용이라는 유교의 핵심가치관을 떠나서는 해석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화끈하고 분명한 것을 강조하는 한국인들에게 중국인들의 두루뭉술한 성격은 답답할 것이다. 남북한이 충돌할 때마다 보인 중국의 모습은 남북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원칙 없는 어정쩡한 태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중국이 물타기를 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그 심층에 깔린 문화는 바로 중용지도이다. 남과 북이 극과 극으로 달릴 때 어느 한 극에 치우치는 것은 중용지도가 아니다.

등소평이 내놓은 도광양회 정책도 심층에는 중용지도가 깔려 있다. 핵심은 자기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력을 키우며 때를 기다린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먼저 나는 새가 총을 먼저 맞는다(槍打出頭鳥)는 말이 있듯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난득호도(難得糊塗)가 중국 문화심리의 경지라 하겠다. 중용지도와 한 맥락이다. 그것이 강조하는 화위귀(和爲貴ㆍ화합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다)는 조화로움이고 평화이며 화합이다.

그러면 중용지도에서 보여주는 한국과 중국의 차이는 결국 흑이 아니면 백이라는 옳고 그름의 차이일까? 이것 역시 중용으로 보아야 정확한 평가가 나올 것 같다. 인식론의 차이이고 방법론의 차이이로서 결국은 문화의 차이이다. 유교를 신봉하는 한국과 중국에 유교의 핵심가치관을 놓고 이러한 차이를 보인다는 이야기이지 옳고 그름의 차이는 아니다.

부정부패의 방패막이가 된다는 비판도

중국에서도 중용지도는 오늘에도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중용지도가 부정부패의 방패막이가 된다는 비판도 있다. 중용지도의 핵심인 관용과 타협이 불의와 타협하는 물타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불의를 못 참는다는 한국인의 성격은 중용의 관용과 타협이 적어서가 아닐까? 중국에서는 중국이 중용지도 때문에 주변국과의 갈등을 강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아무튼 해석에 따라 중용지도에도 양면성이 있다.

그 해석이야 어떻든 중용지도가 강조하는 한 가지 원칙만은 모두가 지켜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극단으로 가지 않고 도를 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유교문화의 핵심인 중용지도를 되찾아 관용과 화합을 이루고 중국은 와전된 중용지도를 바로잡아 도덕과 정의의 중용을 구현해야 한다.

진징이/베이징대 교수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