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역사의 흥망주기율과 중국

2013-02-14 04:02:32 게재

1944년 중국공산당의 저명한 문인인 곽말약(郭沫若)은 명나라 농민운동 수령 이자성(李自成)이 베이징에 입성해 명나라를 멸망시킨 후 부패 타락해 정권을 내놓고 쫓겨난 과정을 쓴 '갑신300년제'를 발표했다. 당시 이 글은 중국공산당이 근거지인 연안에서 정풍운동을 하는 데 필독서가 되었고 국민당에는 부정부패를 비방하는 글로 보였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공산당은 국민당을 타이완으로 내쫓고 정권을 잡았다. 국민당의 800만 대군이 100만도 안 되는 공산당에 패했다. 말 그대로 추풍낙엽이었다. 국민당이 패한 주요 원인은 부정부패에 있었다.

1949년 마오쩌둥은 공산당의 근거지인 시바이포(西柏坡)에서 베이징에 입성하면서 "우리는 베이징에 시험 보러 간다. 이자성을 닮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했다. 당시 민주당파 수령이던 황옌페이(黃炎培)는 마오쩌둥에게 '역사의 흥망주기율'을 이야기했다. 역대 어느 왕조나 흥하거나 망한 데는 주기적인 규율이 있다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왕조의 몰락이 부패와 관련이 있다. 황옌페이는 공산당도 국민당처럼 부정부패로 몰락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마오쩌둥은 황옌페이에게 "우리는 이 주기율을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민주이다"라고 말했다.

마오쩌둥은 인민들이 정부를 감독하게 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일까? 1950년대 중반에는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의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무소속, 민주당파, 백성들이 공산당을 비판하는 것을 장려했다.

비록 유권자들의 선거로 이루어지는 감독은 아니었지만 마오쩌둥은 비판과 감독의 민주권리를 인민들에게 주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공산당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거세지자 마오쩌둥은 생각을 바꾼다.

마오쩌둥이 이자성에게 배운 교훈

마침 폴란드 헝가리에서 일어난 반정부사건이 겹치면서 그는 우파들이 공산당정권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의구심을 품는다. 급기야 반우파운동을 벌이고 이색분자들을 색출한다.

그 후 마오쩌둥은 결국 인민을 동원하는 정치운동방식으로 관료를 감독해 부정부패를 근절하면서 역사의 주기율을 극복하려 했다. 실제 1950년대 중반부터 진행된 반우파운동, 정당정풍운동, 사회주의 농촌교육운동도 그렇고 정치운동의 극치였던 문화대혁명은 권력을 가진 자와 부를 가진 자들의 부정부패를 일소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할 수 있다.

대명(大鳴)·대방(大放)·대자보(大字報)라는 중국식 민주로 검거, 적발, 비판의 정치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정치운동 때마다 없는 자들의 반란과 분풀이가 되풀이되었다. 결국 나라 전체가 동란에 빠졌고 모두가 없는 자가 되는 '가난한 사회주의'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가난한 사회주의가 부유한 사회주의로 변화된 오늘,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이 60여년 전 마오쩌둥과 황옌페이가 말한 역사의 흥망주기율을 다시 꺼냈다. 부정부패가 공산당을 무너뜨릴 만큼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고 본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금의 부정부패가 국민당통치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까지 한다.

그렇다고 마오쩌둥시대의 정치운동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문화대혁명 동란을 다시 불러와 망국(亡國)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서방자본주의의 다당제, 삼권분립, 양원제를 실시할 수도 없다. 그 자체가 망당(亡黨)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시진핑은 "권력을 제도의 울타리에 가두어 두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핵심문제가 바로 권력이 권력을 감독하는 법과 제도의 위에 군림해 있는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과 권력 감독기구가 당정일인자의 절대권력 밑에 있으니 절대권력의 절대부패를 낳을 수밖에 없다.

시진핑, 법과 제도로 권력통제 시도

마오쩌둥은 대중운동과 정치운동으로 역사주기율을 극복하려 했다. 시진핑은 제도라는 시스템으로 역사주기율을 극복하려 한다. 정치체제개혁을 단행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1949년 타이완에 쫓겨간 국민당도 대륙에서 부정부패 척결을 시도했다. 장제스의 아들인 쟝진궈는 "호랑이만 잡고 파리는 잡지 않는다"고 하면서 상하이에서 대대적으로 부패척결을 단행했지만 결국은 기득권 세력의 벽을 넘지 못했다.

시진핑은 쟝진궈와 달리 "호랑이도 잡고 파리도 잡겠다"고 선언했다.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성공 여부는 권력을 가두어놓을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에 달렸을 것이다.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