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경제민주화와 정치쇄신
두 달여 간의 정권 인수과정을 보면서 새삼 '정치쇄신'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정치쇄신은 선거 때마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약속하는 단골메뉴이다. 아마 우리정치가 국민의 바람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여야 모두 정치쇄신을 공약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국민의 바람을 반영한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정치쇄신 문제는 계절메뉴처럼 다음 선거에 또 등장해 왔다.
지난 대선 때 여야는 국민의 바람인 시대정신을 실천하겠다고 공약했다. 그 핵심은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확대였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인수위는 경제민주화가 제외된 5대 국정목표를 발표했고, 박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다시 사용했다. 경제민주화 공약이 박근혜정부에서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단지 노파심일까?
공약 불실천의 가장 큰 부담은 다음 선거에서 불실천의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단임제와 정당정치가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 정치 현실에서, 집권한 대통령은 공약 불실천의 책임을 크게 못 느낄 수 있다. 결국 현재와 같은 대통령 단임제와 특정 인물 중심의 정치문화에서는 공약의 남발과 위반을 막기 어렵다.
경제민주화 약속 지켜질지 의구심
따라서 국민의 바람을 정치과정을 통해 제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구비하자는 것이 정치쇄신이라면, 가장 시급한 정치쇄신은 바로 대통령 중임제의 도입과 정당정치의 강화이다.
대통령 중임제가 도입되더라도, 독재와 선거부정에 대한 걱정은 더 이상 안 해도 될 정도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성숙되었다고 믿는다. 대통령 중임제에서 첫 임기에 도전하는 후보자는, 지킬 수 없는 공약은 자제하고 약속한 공약은 지키려 최선을 다할 유인을 가진다.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하고 공약을 충실히 지키지 못한 첫 임기 대통령은 재선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재임에 성공한 후보자는 제 1기에서 시작한 일들을 마무리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다.
따라서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8년이라는 시간 계획 하에서 실천가능하고 실천해야할 정책 개발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장기적, 구체적 정책 경쟁은 정당의 정책 기능을 제고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
물론 대통령 중임제 도입만으로 정당정치의 강화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대선과 총선에서 정당 간 정책 토론의 기회와 의무를 강화하고, 각 정파들이 민간 씽크탱크를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특히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을 연장하고, 후보자들에 대한 상호 검증과 전문가 검증을 더욱 치열하고 엄밀하게 전개할 수 있도록 선거법 개정도 필요하다.
재벌개혁 없는 정치쇄신은 물거품
정당정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중임제보다는 내각제가 낫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벌개혁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각제를 도입한다면, 재벌들이 정치권력까지 좌우하게 하는 발판을 만들어 주는 꼴이 된다.
마지막으로, 정치쇄신 논의가 국회를 폄하하거나 피상적인 정치 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정치쇄신은 가치와 정책 경쟁으로 정치가 국민의 바람을 정치과정을 통해 실현하도록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선 공약이 실천되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야당이 정치쇄신과 경제민주화의 이니셔티브를 취할 수 있을지 국민은 주목하게 될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