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선의 초록희망
너희가 '기본소득'을 아느냐?
2년 전 초등학생 점심급식을 놓고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는 논란이 뜨거웠을 때, "왜 재벌손자에게까지 공짜 점심을 줘야 하느냐?"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보통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깜짝 놀랄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잘사는 나라로 열손가락 안에 꼽힐 스위스에서 전 국민에게 아무 조건 없이 한달 300만원씩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법안이 국민발의로 의회에 제출됐다는 소식 말이다. 인터넷 토론방이 뜨거워진 것도 당연한 일이다. "국민이 당연히 요구할 권리"라는 주장에서부터 "나라 망칠 일"이라는 우려에 이르기까지, "그 돈이 어디서 나나" "누가 일하려 하겠나" 등 다양한 논쟁이 이어졌다.
너무나 이상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으로 들리기도 하는 이 기본소득 정책이 가장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실험된 나라가 미국이라는 점 또한 놀랄 일이다. 1940년대 나온 이 아이디어는 1960년대 미국에서 현실정치 속으로 들어온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경제적 평등을 위한 세 가지 요구에 '완전고용' '싼 임대주택'과 함께 '기본소득'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런 요구를 담은 '빈자들의 행진'을 준비하던 킹목사가 1968년 암살된 후, 폴 사뮤엘슨, 제임스 토빈, 존 케네쓰 갈브레이스 등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1000여명이, 국가가 모든 미국인에게 최소소득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에 서명한다. 이후 미국에서는 1970년,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기본소득 법안이 입안되어 의회표결에 부쳐졌으나 가결되지는 못했다.
비슷한 시기 기본소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아보는 대규모 실험이 진행되기도 했다. 뉴저지 아이오와 노스캐롤라이나 시애틀 덴버 개리에서 각각 800~1800명을 대상으로 3년간 최소생활비의 0.7~1.3배를 지급하는 엄청난 실험이 진행되었다.
1960~1970년대 미국에서 현실정책화
그 결과 노동을 그만둔 현상은 염려했던 만큼 크지 않았다. 어린 자녀를 둔 여성들 가운데 일부가 직장을 그만 두었을 뿐이었다.
미국의 기본소득운동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함께 전국 차원에서는 묻혀버렸지만, 알래스카주에서 현실이 되었다. 석유 등 천연자원 개발수입의 일부를 재원으로 1982년부터 주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2008년의 경우 1인당 월 3269달러를 지급했다고 한다. 기본소득의 논리적 정당성은 바로 거기 있다. 우리가 생산하는 재화는 인류의 공동자산이라 할 천연자원과 수천년 축적된 인류공동의 지혜와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므로, 그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소득제도의 출현은 자본주의가 초래한 극심한 빈부격차를 어떻게든 보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말이 있지만,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시대,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면, 아무도 일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미국에서의 실험은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놀고 먹은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을 일부 줄였을 뿐이라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그것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돈 받고 일하는 시간만 일부 줄였을 뿐, 남은 시간에 자녀를 양육한다든가, 직장에 매어 할 수 없었던 공부나 취미활동 봉사활동 등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인간다운 삶과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며, 일자리를 나누는 효과도 불러온다는 것이다.
"한국사회 적용할 기본소득 제시할 것"
역시, 왜 부자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주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일정한 재산·소득 이하의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선별소득보장에는 엄청난 행정비용이 든다. 그러고도 사각지대가 생기고, 재산이나 소득을 속이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전 국민에 대한 기본소득이 사회전체에 더 큰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8일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는 녹색전환연구소, 한신대 지역발전센터, 대화문화아카데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생태적 기본소득 제1차 포럼'이 열렸다.
앞으로 1년간 8회에 걸쳐 집중적인 논의를 진행해 한국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기본소득정책을 제시하겠다고 한다. 남의 나라 얘기만이 아닌, 우리의 기본소득에 대한 열띤 사회적 토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