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실효성 있는 경제민주화 입법을
경제민주화를 위한 여야 대선 후보들의 공통 공약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꼭 필요한 공약은 재벌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를 이용한 터널링(tunneling) 방지와 신규 순환출자 금지이다. 그러나 6월 임시국회에서조차 내부거래를 악용한 터널링과 신규 순환출자 등의 금지가 입법화되지 못 한다면, 그야말로 경제민주화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경제민주화의 공통적이고 핵심적 요소는 소유집중의 해소 또는 방지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재벌해체나 독일 콘쩨른의 해체는 경제민주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며, 그 핵심 내용은 특정 가문에 의한 경제력 집중이라는 소유집중의 해소에 있었다. 또한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일부가 연대한 진보적 운동(Progressive movement)을 통해, 록펠러 가문 등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한 적이 있다.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의 결과로, 198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도 경제력 집중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1986년 공정거래법 1차 개정에서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규제와 1987년 헌법 개정에서는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119조 2항이 도입되었다.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은 경제력의 남용 방지 외에도 시장의 지배 방지, 적정한 소득의 분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등을 포괄하고 있다.
터널링으로 재벌 세습
현재 논의되는 경제민주화 입법들은 이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특정 가문들에 의한 경제력 집중의 방지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적이고 공통적인 요소인 이유는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재벌세습 문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재벌세습은 종자기업을 만들고, 내부거래를 악용한 터널링으로 종자기업을 키우고, 궁극적으로 종자기업 중심으로 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특히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를 이용한 터널링으로 재벌 승계자는 막대한 자본 이득을 올리면서 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세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현대차그룹은 현대글로비스라는 물류회사를 신설할 당시인 2001년에 오너 자제가 15억원을 출자해 지분 약 60%를 확보하는데, 이후 현대글로비스는 일감몰아주기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이런 터널링을 위한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2001년 이후 10년 간 매년 평균 290%의 경이적인 투자수익률을 올렸다. 내부거래를 악용한 터널링은 비단 현대차그룹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 재벌들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이다. 터널링은 소액주주들에게 귀속되어야 할 재산을 재벌총수 일가가 편취하는 것으로, 시장경제의 근간인 재산권 제도를 무력화시킨다.
6월국회에서 법 통과돼야
또 부의 불법, 편법적 승계와 축적을 통해 재벌의 정치, 사회,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 재생산한다. 나아가 재벌총수와 무관한 사람들에게는 해당 사업 부문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조차 박탈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 조문으로는 터널링을 위한 내부거래를 규제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방지하는 사후 규제 도입이 법기술적으로 어렵다면, 사전 규제를 도입하면 된다.
내부거래를 통한 터널링 문제의 심각성에는 애써 눈감고 새로운 규제의 법기술적인 문제점만을 강조한다면, 그 의도의 순수성에 의문을 품게 하기에 충분하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