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재벌규제 데자부

2013-10-28 11:20:37 게재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방지는 여야 대선 후보의 공통 공약이었고, 이 공약의 실천을 위해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여야는 공정거래법 제23의2조 신설을 골자로 하는 법 개정을 하였다.

우리나라 대다수 입법 사례에서처럼, 신설된 공정거래법 제23의2조의 구체적 적용조건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반영하게 되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10월 2일부터 11월 11일까지 관련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그런데 입법 예고된 시행령은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오히려 허용하고 합법화시키는데 악용될 소지가 많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부정적 사회 여론이 비등할 때 여야 정치권이 재벌규제 강화를 위해 공정거래법 등을 개정하고 구체적 내용은 행정입법인 시행령으로 미루면, 시행령에서는 이런 규제를 우회할 룻홀(loophole)을 마련해주어 결국 실효성 없게 되는 우리나라 재벌규제의 데자부를 이번 일감몰아주기 규제 입법과정에서 보는 듯하다. 올 4월 감사원이 발표한 '주식변동 및 자본거래 과세 실태'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 부자와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주식가치 상승 이익을 각각 2조원 이상 남겼다.

재벌총수들 사익편취 심각한 수준

현대차그룹 정의선 부회장과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재산이 각각 약 3조5000억 원과 약 2조4000억원이라고 평가한 재벌닷컴의 최근 보고를 감안하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총수일가의 내부거래를 통한 사익편취(즉, 터널링)는 소액주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주식회사제도의 건전성을 흔드는 반(反)시장경제적 주요 범법행위이다. 이런 터널링이 발생하는 근본적 이유는 바로 지원주체 계열사와 지원객체 계열사에 대한 총수일가의 직·간접적 지분율(즉, 현금청구권) 차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은 이런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먼저, 시행령 개정안은 금지규정이 적용되는 거래상대방의 범위를 총수일가의 직접적 지분율을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따라서 재벌 총수일가가 지분율을 기준보다 낮춰 터널링을 지속할 유인을 제공하게 된다.

예를 들어, 총수일가의 직접적 지분율을 30% 미만으로 조정하고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의 지분율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총수일가의 직·간접적 지분율의 변화는 크게 없이 터널링을 지속하면서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 따라서 이 조항은 규제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독소조항이 될 수 있다.

둘째, 부당한 사업기회의 제공 금지가 총수일가의 터널링 방지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조항임에도 불구하고, 시행령 개정안의 내용은 매우 미흡하다.

재벌개혁 진정성 보여야

터널링 방지를 위해서는 '회사가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의 정의를 명확히 해서 계열사들의 공동지배도 포괄해야한다. 또한 회사가 수행하고 있거나 수행할 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업기회를 "총수일가의 직·간접적 지분율(현금청구권)이 더 높은 회사에게" 제공하는 행위로 부당한 사업 기회의 제공을 명시해야 한다.

국회도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 취지와 부합되지 않음을 인지하고 만약 시행령 개정안이 강행된다면 공정거래법을 재개정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재벌개혁의 진정성을 국민에게 알리는 길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