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삼성을 생각한다

2013-11-12 10:54:51 게재

지난달 중순 세계지식포럼에 참석 차 방한한 프랑스 INSEAD 경영대학원의 교수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한국의 공공정책 현안과 거버넌스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와, 방한 기간에 두 차례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영전략이 전공인 이 프랑스 학자가 공공정책과 거버넌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연유가 나로서는 궁금했었다. 그런데 나의 이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의외였다. 이 프랑스 학자는 2003년 즈음에 노키아 고위 임원의 요청으로 1년간 노키아에서 연구를 수행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공공정책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왔던 것은 노키아 고위 임원이 이 프랑스 학자의 1년 급여를 부담하면서 노키아에 와서 연구해 달라고 부탁한 이유였다. 2003년 즈음에 노키아는 그야말로 핸드폰 제조사업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노키아 고위 임원들은 노키아가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 불안감 때문에 이 프랑스 학자를 초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키아 고위 임원들은 왜 그런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불안감을 가지고 나름대로 대비를 했는데도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노키아도 전성기 때 몰락 예감

노키아 고위 임원들이 어떤 구체적 이유가 있어 불안감을 가졌던 것은 아니며, 다만 막연히 어느 날 혁신적인 제품이나 경쟁사업자가 출현할 수 있다는 위협을 직감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노키아 나름대로 끝없는 혁신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기존 사업 모형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아주 새로운 아이디어는 채택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저가 핸드폰 사업 전략의 성공에서 비롯된 인식의 한계와 이해상충, 거대 기업의 관료화된 조직체계 등을 꼽았다.

삼성전자도 최근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10년 이후 삼성전자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불행히도 프랑스 학자가 들려준 노키아 이야기는, 근본적 혁신이 선두 기업보다 도전 기업들에서 발생하는 '창조적 파괴' 현상을 설명하는 경제학 이론과 일치한다.

삼성전자가 노키아처럼 몰락하는 상황이 오면, 삼성생명도 위기를 맞을 개연성이 높다. 올 4월 현재 삼성생명은 주식 투자로 운용하는 자산의 76%를 삼성전자 주식에 집중하고 있다. 위험 분산을 위한 정상적인 포트폴리오 구성보다는 총수일가의 삼성전자 지배권 유지를 우선시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삼성도 노키아처럼 될 수 있어

금산분리가 이뤄지지 않은 동양그룹에서 비금융계열사의 부실이 금융계열사와 그룹 전체의 부실로 전이된 작금의 사태 역시 삼성전자의 위가가 삼성생명과 삼성그룹 전체의 부실을 야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삼성그룹의 위기는 1997년 경제 위기보다 더 혹독한 위기 상황을 한국경제에 야기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노키아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상상하기조차 싫은 악몽이다. 그러나 생각하기 싫다고 외면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부이다.

삼성전자의 위기가 삼성생명의 부실과 한국경제의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금산분리와 재벌개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