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여는 허수아비 화가 남궁원

2014-03-11 10:45:27 게재

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우리 지역 예술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서양화가 남궁원(1948~)이다. 서양화가로서, 대학교수로서, 각종 예술 연맹의 수장으로서 성남의 전반적인 예술발전을 위해 그가 보여준 바는 실로 크다.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해야하는 예술계를 위해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않는 모습에 진심어린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런 그가 44년간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온전한 작가로서 인생의 제2막 1장의 페이지를 넘긴다. 물론 그 동안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지만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말한다. 

보통 퇴직을 하거나 일선에서 은퇴를 하면 일단 휴식기를 갖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그는 더욱 뜨거운 도전정신에 기득 차 있다. 그가 건넨 명함속의 ‘서양화가 남궁원’이라는 이름은 그 어떤 타이틀보다도 그의 뜨거운 열정을 말해 주고 있다.

 

나쁜 것은 비우고 좋은 것은 받아들이는 허수아비 철학

그의 말처럼 시작된 인생의 2막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단독 전시로 그 서막을 올렸다. 지난 해 정년퇴임 이후 1여 년간 치밀하게 준비해온 그의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는 전시다.

3월 18일부터 27일까지 있을 ‘Fantasy  of  Husuabi’에서는 그간 그가 보여주었던 ‘허수아비’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더욱 다양한 매체로 심도 있게 표현할 예정이다. “교직에 있었을 때 3~4년에 했을 작업을 1년 동안 해냈어요. 앞으로도 그 동안 못 그렸던 그림을 맘껏 그릴 겁니다”라고 열정에 차 말하는 남궁원 화백. 

최대 7미터의 대작과 크고 작은 수십 점의 드로잉 작품들, 그 밖에 피아노와 달 항아리를 이용한 공간설치미술, 디지털 영상 작품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술계의 최신 흐름을 간파하고 있는 60대 노작가의 노련함과 그에 따른 노력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작품의 주제는 ‘허수아비’이다.  “허수아비는 저에게 향수성을 의미해요. 세상이 발전하면서 모든 것이 변했지만, 아직까지 고향을 지키고 있는 것은 허수아비밖에 없더군요. 이 허수아비는 산과 이야기 하고, 새들과 함께 놀고, 나무와 친구하는 저 자신을 의미합니다. 저의 내면세계를 허수아비에 투영시킨 것이죠.” ‘허수아비작가’란 별명도 이렇게 붙게 되었다.

남궁원 작가의 초기 작품들은 ‘허수아비’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허수아비의 형상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허수아비’는 의인화되었고 추상화 되었으며 화면의 색채는 화려해졌다. 이번 전시에서의 작품들도 허수아비가 화면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춤추는 사람처럼, 흩날리는 낙엽처럼 표현된 허수아비는 그 현상이 해체되어 추상과 반구상으로 표현되었고, 화풍 또한 더욱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허수아비의 개념은 그동안 점점 확대되어 보다 근본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졌어요. 허(虛)- 비움과 나눔, 수(守)-지킴, 아(我)-키움, 비(非)-세움이라는 의미의 허수아비 철학이 있기도 하지요. 허수아비 철학은 간단히 말해 내 안의 좋은 것은 나눔으로써 비우고, 나쁜 것은 버림으로써 비우자는 ‘비움[虛]’과 이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시켜주는 사랑과 헌신, 봉사와 감사 등 여러 소중한 가치를 찾아 지키자는 ‘지킴[守]’, 그리고 손[手]에 창[戈]을 들고 있는 ‘나[我]’를 ‘부정[非]’함으로써 마침내 참사람으로 바로 서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 그림 속에는 다 이러한 철학이 담겨 있지요.”

그래선지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좋은 기운이 전해지는 것 같다. 이러한 철학을 반영한 남궁원 작가의 2막은 어떻게 진행 될지 자못 궁금하다.

“그동안의 삶이 무엇인가를 쌓고 이루는 것이었다면 2막은 비움의 철학을 실천하는 삶일 것입니다. 이 세상을 다하는 그날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베풀고 비울 겁니다. 작업면에서도 새로 도약하는 기분으로 마음껏 그릴 테고요.”

이러한 배품과 비움의 철학은 이번 전시에서도 전해질 예정이다. 전시 기간 동안 100개의 작은 작품들을 관람객에게 매일 10개의 작품을 선물하는 깜짝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 이는 그동안 해왔던 “여보! 우리 집에 그림 한 점 걸어요” 캠페인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 캠페인은 성남의 지역대표 문화 브랜드로 위상을 높인 ‘남송국제아트쇼’에서 진행해왔던 캠페인으로 무료로 그림을 증정하는 이벤트나 부담 없는 가격으로 그림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여 가정에서 예술작품과 함께 숨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전시에서 100점의 소작품 무료로 선물할 예정

그는 “이제부터는 인생의 사다리를 거꾸로 놓았다”고 표현한다. 그의 많은 작품에서 보여 지는 사다리는 그의 인생철학이자 허수아비에 대한 정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그의 그림 속 사다리는 일자로 뻗은 사다리 모양이 아닌 위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다시 그 폭이 확장되는 형상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과정과 같아요. 올라갈수록 좁아져 위기, 좌절, 공포의 감정이 들지만, 멀리서 보면 높은 곳까지 올라간 제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이제부터는 이 사다리가 거꾸로 놓아집니다. 힘든 과정들을 보내고 다시 제 꿈을 향한 편안하고 안정적인 시간을 갖게 될 겁니다”

너른 들녘을 꿋꿋이 지키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허수아비처럼 그의 역할을 멋지게 완성하기 위한 열정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세라 리포터 dhum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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