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기 등장한 공공외교 … 지금은 환골탈태

2015-01-07 13:04:33 게재

국제정치학자 조셉 나이는 "21세기는 군사력,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에 소프트파워가 결합한 스마트파워 시대"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외교부는 정무외교·경제외교와 함께 공공외교를 대한민국 외교 3대축으로 정하고 공공외교 강화를 위해 노력중이다.


'공공외교'라는 말은 1965년 냉전 시기 미국의 전직 외교관이자 터프츠대 플래쳐스쿨 학장인 에드먼드 걸리온이 '에드워드 머로우 공공외교센터(Edward R. Murrow Center for Public Diplomacy)'를 설립하면서부터 사용됐다.

당시의 공공외교는 냉전구조 아래 하드 파워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상대방 국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해당국의 여론을 움직이려는 정책이었다.


하드파워가 군사적 개입, 강압적 외교, 경제제재 조치 등의 물리적 힘을 뜻하는 것이라면 소프트파워는 강제력보다는 매력을 통해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이끌리게 함으로써 스스로가 바라는 것을 획득하는 힘을 일컫는 말이다.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다. 20세기의 공공외교가 2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배경으로 등장한 반면 21세기 공공외교는 9·11 테러 이후 군사력과 경제력이 핵심을 이루는 하드파워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과 민주화의 확산으로 다양한 비국가 행위자가 외교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국가 외에 개인의 '피플파워'가 대두되고 소셜미디어·소셜네트워크 등 뉴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시공간 격차가 사라지면서 대중에 의한, 대중을 향한 개방형 외교의 중요성은 더욱 확대됐다.

정부간 외교뿐 아니라, 외국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는 외교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공공외교의 개념도 문화·예술·스포츠, 가치관과 같은 무형의 자산이 지닌 매력을 통해 상대국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개념으로 변화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비교적 늦게 공공외교를 시작한 편이지만, 2010년을 '공공외교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기존의 정무외교·경제외교와 함께 공공외교를 대한민국 외교의 3대축으로 설정하고 공공외교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 달성한 것을 바탕으로 개도국 성장 모델, 개발경험 전수, 선·후진국간의 교량 역할이 가능하다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 또 침략의 역사가 없는 평화애호국, 정, 근면한 이미지도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요소다.

변화된 공공외교 흐름에 따라 재외공관에서는 세미나, 전시, 공연 등을 통해 한국의 매력을 소개하고 'K-food' 'K-pop' 페스티벌 등을 열어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공공외교는 주로 외국의 대중을 그 대상으로 하지만, NGO·대학·언론 등도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공공외교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외교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이해와 지지가 중요해짐에 따라, 자국민과 단체·기관도 공공외교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분위기다.

공공외교가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하에 우리 정부도 국민을 공공외교의 주체로 참여시키고 있다.

[관련기사]
- [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이제는 마음을 얻는 '공공외교' 시대] 네덜란드에선 '한국=경제·민주 선진국'이라 배운다
- [내일의 눈] 자국·외국민 모두 감동시키는 공공외교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박소원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