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 대한 이슬람의 원한은 종교 아닌 '역사문제'

2015-02-25 13:36:40 게재
1993년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충돌론'을 제기했다.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에서 문명의 정체성, 특히 종교가 국제정치에서 새로운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피의 경계선'을 가지고 있는 이슬람이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9·11 테러 사건이 발생하면서 문명충돌론은 각광을 받았다.

헌팅턴은 이슬람 교도와 비이슬람 교도 사이에 강한 적대감이 있어 이들간에는 폭력적 분쟁이 자주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스니아에서 이슬람 교도들은 정교계의 세르비아인과 전쟁을 벌였고 카톨릭을 신봉하는 크로아티아인과 유혈극을 벌인 것 등을 '이슬람 적대감'의 예로 들었다.

그는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의 지역에서 이슬람 교도 세력과 다른 문명(카톨릭, 프로테스탄트, 정교, 힌두교, 중국, 불교, 유대교)의 관계도 대체로 적대적이었다고 분석했다. 이슬람 교도들은 역사, 인구, 정치 요인으로 인해 이웃 집단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서방과 이슬람 문명의 관계는 과거부터 현대, 미래까지 항상 군사적 충돌을 바탕에 두고 있다'고도 했다.

과연 헌팅턴의 주장대로 이슬람은 태생적으로 '폭력적인 문명'인 것일까.

'문명의 공존'을 낸 독일 국제정치학자 하랄트 뮐러는 많은 아랍인들의 서구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을 종교에 찾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찾는다.

그는 이슬람과 기독교, 모슬렘 정통파와 서구 계몽주의 사이에 불구대천의 적대감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의식이 강한 이슬람 세계가 근대 서구 사회와 만나면서 5대에 걸쳐 겪은 고통과 치욕의 경험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서부터 시작해 아랍세계는 150년 동안 서구로부터 굴욕과 압박, 착취를 당했고 식민 세력인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로부터 이슬람 경제의 열매를 모두 빼앗긴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홀로코스트를 모르고 오늘날 이스라엘을 이해할 수 없듯이 아랍 세계의 정치적, 문명적 성향은 제국주의 시대의 악몽과도 같은 경험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경제적 요인이 컸던 십자군 전쟁을 기독교사회가 종교전쟁으로 포장했듯이 문명의 충돌 이론도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는 "과거 예루살렘을 포함한 북아프리카의 기존 기독교 사회가 이슬람의 통치 하에 들어갔을 때, 이슬람은 기독교 공동체를 인정했다"면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던 서구유럽의 봉건영주와 하급 기사들은 새로운 영토지배의 야망을 가지고 있었고, 상인들은 경제적 이익을 얻겠다는 욕심을, 농민들은 봉건사회의 중압에서 벗어나려는 희망을 가지고 원정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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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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