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권력'이었던 20세기 패러다임, 전기차로 무너진다

2017-06-09 11:39:12 게재

'내연엔진'으로 본 석유종말 시나리오

"2025년, 약 80만톤의 중고 고강도강(high strength steel)이 경매에 부쳐졌다. 이 중고 철강은 캐나다 석유를 미국으로 들여오는 '키스톤XL 송유관' 사업에 쓰였던 것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시로 2019년 완공된 사업이다.

송유관엔 70억달러 비용이 들었다. 송유사업이 절정일 때엔 하루 50만배럴의 석유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더 이상 석유수요는 없다. 키스톤XL은 역사상 최후의 화석연료 사회기반시설로 기록됐다. 송유관 운영자인 '트랜스캐나다'는 배럴당 10달러를 받고 석유를 수송해왔다. 하루 약 500만달러, 1년 18억달러의 수입이 보장됐다. 40년 동안 수익창출을 기대했지만 영업개시 4년여 만에 문을 닫게 됐다. 초기 투자비는 영영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키스톤XL이 폐쇄 운명을 맞은 건 급속히 발전한 기술때문이다. 석유업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변했다. 기술을 비난하긴 어렵다. 지난 수십년간 운수송 등 교통 부문의 전환은 인류의 문명생활을 거대하고 신속하게 바꿔놨다. 한때 돈을 긁어모은다 소문난 엑슨모빌이나 제너럴모터스 등의 '블루칩' 기업들은 파산했다. 기술은 10조달러의 규모의 전 세계 석유업계 시장에 결정타를 날렸다."

위 내용은 과학자이자 발명가, 기업인인 세스 밀러가 2025년 미래상을 상상하며 온라인매체 '미디엄코퍼레이션'에 최근 올린 글이다. 밀러는 석유종말시대를 2025년으로 예측하는 다소 '극단적인' 인물이다.

다시 현재로 되돌아오자. 전 세계적으로 화석연료로 인한 오염물질의 약 15%가 승용차와 트럭에서 배출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석유 사용을 멀리하도록 만들진 못했다. 석유는 대개 정치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지역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미국은 불안정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산유국 독재자들에게 군사적, 정치적 원조를 이어가고 있다. 산유국의 석유는 미국의 안보에 핵심적 역할을 했고, 또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석유는 지구상의 경제와 정치를 지배했다. '석유는 곧 권력'이었다.

미 앨버타주 하디스티에 위치한 트랜스캐나다의 '키스톤XL' 송유관시설 모습. 트랜스캐나다는 배럴당 10달러를 받고 석유를 수송할 전망이다. 하루 약 500만달러, 1년 18억달러의 수입이 보장됐다.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밀러는 "석유가 지배했던 정치경제적 세기가 첨단 기술에 의해 곧 무너진다"며 "거대 석유기업(Big Oil)은 향후 10년 동안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과 오래가는 배터리, 더 단순해진 기어장치 등의 복합된 전기자동차로 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앞서 등장한 새로운 기술과 마찬가지로, 그같은 창조적 파괴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올 것"이라고 장담한다

거대 석유기업이 상상 이상으로 위태로운 처지에 몰렸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그는 석유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며 내부연소 엔진을 석유지배의 급소라고 지적한다.

자동차는 복잡하다. 출력중인 엔진을 들여다보면 칼집 모양이 새겨진 강철 피스톤과 서로 맞물린 기어, 회전 로드 사이에 균형 잡힌 움직임이 있다. 수백만번 회전에 견디도록 돼 있다. 하지만 수백만번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운전자들이 익히 경험하듯, 자동차 부품은 결국 닳아서 고장을 일으킨다. 연료캡에서 기름이 새고 벨트가 해어지면서 변속기가 멈춘다.

자동차에 생기는 고질적 문제를 이해하려면, 미국의 일반 운전자가 정비소를 찾은 이유를 보면 된다. 2015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일반 운전자들의 단골 수리 목록과 비용은 △배기관 O2센서(배기가스 중 O2 농도를 검지하고 신호를 연료 분사계에 되돌려 기관의 흡입 공기량을 적정하게 하는 계기) 교체에 249달러 △촉매변환장치(배기가스에 함유된 유해성분 정화장치) 교체에 1153달러 △점화플러그 교체에 390달러 △연료캡 조이기 또는 교체에 15달러 △온도조정장치 교체에 210달러 △점화코일 교체에 236달러 △공기유량센서 교체에 382달러 △자동차유증기 회수장치(EVAP) 퍼지컨트롤밸브 교체에 168달러 △EVAP 관형코일 교체에 184달러 등이다 .

하지만 이런 잔고장이 전기자동차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스탠퍼드대 교수이자 '창조적 파괴 기술' 전문가인 토니 세바는 요점을 명확히 짚어준다. 그는 "내부연소엔진과 구동축은 약 2000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반면, 전기자동차의 구동축은 약 20개에 불과하다"며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부품을 덜 쓰는 시스템이 더 많이 쓰는 시스템보다 믿을 만하고, 안정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밀러는 "경험보다 확실한 건 없다"고 말한다. 2006년 미국고속도로안전청 조사에 따르면 내연엔진 자동차의 평균 수명은 약 24만킬로미터(15만마일)였다. 현재 기술 수준의 전기자동차의 수명은 80만킬로미터(50만마일) 이상이다. 내연엔진차보다 3~4배 높다.

이같은 결과가 가져다줄 파문은 심대하다. 밀러가 10년 전 구매했던 '프리우스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교체 주기는 16만킬로미터(10만마일)였다고 한다. 전기자동차의 효율성을 상쇄하고도 남을 단점이었다. 하지만 현재 출시되는 프리우스 전기자동차는 출시 때 장착된 배터리로 96만킬로미터(60만마일)를 달릴 수 있다.

이달 7일(현지시간) 사상 처음으로 전기자동차만 참여할 수 있는 자동차경주대회가 크로아티아에서 열렸다. 배터리로 구동되는 테슬라 전기차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기자동차의 대명사로 등극한 테슬라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테슬라의 모델S 전기자동차로 도시간 고객을 운송하는 테슬룹(Tesloop) 서비스에 따르면, 32만킬로미터(20만마일)를 달린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수명손실은 단 6%에 불과했다. 테슬라는 현재 단일 배터리 수명을 160만킬로미터(100만마일)로 상향시키는 걸 목표로 잡고 있다.

배터리의 효율과 수명이 늘고 있다는 건 전기자동차를 소유하는 비용이 절감된다는 의미다. 전기자동차의 수명이 내연엔진차보다 3~4배 길다는 의미는 킬로미터당 보유비용이 1/4~1/3 덜 든다는 의미다. 내연엔진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하게 되면 그만큼 돈을 아끼게 된다. 전기자동차는 에어필터나 타이밍벨트, 연료 주입이 필요없다. 테슬룹 서비스에 따르면 32만킬로미터를 주행할 동안 브레이크 교체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기자동차에서 돈을 들여 교체할 부품은 사실상 타이어가 유일하다는 의미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80만킬로미터(50만마일) 주기의 전기자동차를 보유한다는 의미는 미국인의 평균 차량 운행거리를 고려하면 약 40~50년간 1대의 자동차만 쓴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전기자동차 경제학'에 딜레마가 생긴다. 오늘날 1달러를 7%의 연 수익률을 내는 증시에 투자하다면 40년 뒤엔 15달러가 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현재 40년 된 자동차가 있다면 이는 구입 당시 가치의 1/15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기술이 낙후되고, 비효율적 운영체계를 갖춘 차가 될 것이다. 녹이 잔뜩 슬어버린 차가 될 가능성도 크다. 밀러는 "어떤 사람도 자기 차를 평균 결혼지속 기간보다 오래 사용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투자논리로 보면 상당히 다르다. 특히 생계 목적으로 자동차를 운영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미국 뉴욕시의 택시운전사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290킬로미터(180마일)를 운행한다. 이는 전기차 배터리 충전 주기 이내에 있는 거리다. 1년으로 치면 약 8만킬로미터를 운행한다.

평균 사용량을 보면 1대의 자동차를 대략 10년 쓴다는 의미다. 경제학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상당히 괜찮은 수준이다. 만약 택시회사에 소속된 택시라면 2명의 운전사가 교대로 근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차량 수명은 10년이 아니라 5년으로 줄어든다. 이는 회사측 입장에서 보면, 정상적 투자 조건이 된다. 낙후될 염려도, 비효율적 운영체제 우려도 없다.

택시회사는 또 개인 자가용 운전자가 누릴 수 없는 이점을 얻을 수 있다. 미 국세청은 올해 내연엔진 자동차가 1마일을 달릴 때마다 운전자에게 약 53.5센트의 세금을 부과한다. 반면 전기자동차를 쓰는 택시회사에는 1마일 당 13센트만 매긴다. 마일당 40센트를 아낄 수 있다. 적은 액수가 아니다. 1년에 5만마일을 주행하는 뉴욕시 택시운전사라면 해마다 절감하는 액수는 2만달러에 달한다.

게다가 올해 피츠버그와 피닉스, 보스턴시에서 자율주행 택시가 첫선을 보인다. 현재 법제로는 자율주행차에게 부과되는 마일당 세금은 없다.

밀러는 "이는 거대 석유기업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이라며 "자율주행 전기자동차는 전기차 자체의 향상된 수명으로 비용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금도 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앞으로는 차를 소유하는 비용보다 자율주행 택시를 타는 게 더 싸다는 의미다.

"석탄시장의 과거와 현재는 10여년 뒤 석유시장의 미래" 로 이어짐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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