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의 아픔은 ‘현재진행형’ … 극단적 선택도

2019-01-18 11:25:40 게재

지난해 아현동 철거민 투신

단독주택 재건축지역 세입자 보상책 없어

임대주택 의무공급 등 국회서 법안 발의돼

지난해 12월 4일 한강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아현동 철거민 고 박준경(37)씨 사건은 용산참사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철거민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일깨웠다. 박씨 사건을 계기로 단독주택 재건축 지역의 세입자에 대한 보상책이 법적으로 미비하다는 점 등이 재조명되면서 제도적 대책 마련이 이어지고 있다.

고 박준경 씨 영결식│강제철거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박준경 씨 영결식이 12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재개발 현장 앞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재건축 현장에서 고 박준경씨의 영결식이 열렸다. 아현2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와 재건축조합이 철거민 이후 및 장례 대책 등을 합의했고 이에 따라 고인이 한강에서 발견된 지 40일 만에 장례가 치러졌다.

박씨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내며 눈물을 쏟았다. 영정 앞에 헌화하며 “좋은 곳으로, 강제집행 없는 따뜻한 곳으로 가라”면서 “다음 생에는 꼭 부잣집에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현동 재건축구역에 위치한 단독 주택에 보증금 200만원, 월세 25만원을 내고 어머니와 살던 세입자였다. 지난해 9월 강제집행으로 살던 집에서 쫓겨난 후 철거지역의 빈 집을 전전하며 살았지만 연이은 강제철거로 빈 집에서도 쫓겨났다. 추운 겨울 사흘간 노숙생활을 한 그는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저희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달라”는 유서를 광고전단지 뒷면에 남기고 한강에 몸을 던졌다.

사건 이후 재개발 지역과 달리 재건축 지역에는 세입자 보상대책이 없다는 점이 새삼 부각되면서 서울시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애초 재건축 사업은 노후화된 아파트를 다시 짓는 사업이 주이다 보니 세입자 보상대책의 필요성이 크게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규제완화 이후 단독주택 재건축도 가능해지면서 세입자 보상대책 미비가 문제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거환경 변화 등으로 주로 저소득층이 단독주택에 세입자로 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규제강화로 단독주택 재건축이 막혔지만 이미 재건축지역으로 지정돼 갈등의 여지가 있는 곳이 서울에 60여곳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아현2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와 면담한 뒤 "주거 이전비나 임대주택 제공 등 실효성 있는 이주대책이 없으면 재건축 사업을 인가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세입자 이주대책을 인가 조건에 담은 법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시는 ‘제2의 박준경’을 방지하기 위해 법률전문가 등과 제도개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미팅을 진행중이다. 서울시는 “세입자 보상, 기준, 대상, 방법 등에 대해 가능여부를 논의하고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제도개선 등 구체적 방안 마련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 개정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각종 정비사업으로 인한 거주민 이주와 퇴거 때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강제퇴거 제한에 관한 특별법'과 재건축사업의 경우에도 임대주택을 일정 비율 포함하도록 하는 ‘정비사업 임대주택 의무공급제도 개혁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지난해 3월, 12월에 발의했다.

이강훈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부본부장)는 “재개발 사업은 일정한 요건을 갖춘 세입자에게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과 주거이전비 등이 제공되지만 재건축 정비사업은 세입자 보상대책이 전혀 없다”면서 “특히 공동주택 재건축사업의 경우에 비해 주거 취약계층 비중이 높은 단독주택 재건축과 관련해선 주거세입자를 위한 실질적인 주거이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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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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