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정사 100년을 걷다 |(20) 한일간 조약과 제협정 비준동의안 심사특위 ②

여당 일괄상정-일괄통과 속도전 … 야당 총사퇴 '배수진'

2019-09-05 11:41:21 게재

기습상정-단독심의-날치기 통과

'8월 14일' 기한 정해놓고 진행

정부 "한일 해석 문제없다" 강조

1965년 8월 11일, 한일간 조약 및 제협정 비준동의안 심사 특별위원회(한일협정 특위) 위원장 민관식 의원의 입이 빨라졌다. 그는 "(거수표결)가가 16표가 되기 때문에 비준동의안은 정부원안대로 가결된 것으로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시계는 오후 11시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일협정 특위 10번째 회의였다.


1차 회의는 7월 31일에 열렸다. 야당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수당인 여당의 찬성으로 한일협정 특위가 구성됐다. 이에 앞서 이미 같은달 14일에 기습적으로 국회 본회의에 비준안이 제출되자 야당인 민중당 의원들은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했고 45명이 사퇴서에 서명한 상태였다. 야당의 저항은 무용지물이었다. 야당 의원의 24시간 단식투쟁이나 대정부 무제한 질의도 별 효력이 없었다. 8월 4일 윤보선 의원이 가장 먼저 탈당계를 냈다. 헌법상 탈당계 제출과 수락은 곧 '의원직 사퇴'를 의미한다. 8월 5일 여당이 홀로 심사질의에 들어갔다. 정성태 민중당 원내대표가 탈당으로 저항했다. 다음날 서민호 김도연 정일형 의원이 동반탈당행진에 동참했다.

8월9일엔 민중당소속의원 58명이 의총결의로 의원직 사퇴서를 당 대표에게 제출했다.

여당인 공화당은 거침이 없었다. 특위에서 통과된 정부원안을 그대로 본회의에 올렸다. 8월13일 여당만으로 한일협정 비준안이 상정됐고 이 자리에서 윤보선 김도연 정일형 정성태 서민호 김재광 등 6명 의원의 탈당과 의원자격 상실이 공식화됐다.

몸싸움하는 여야│1965년 8월 14일 본회의장에서는 한일협정 비준동의안의 상정을 둘러싸고 여야의원간에 난투극이 벌어졌다. 사진제공 국회도서관


◆ 미리 정해진 수순 = 13일 본회의에서 경과를 설명하던 한일협정 특위 위원장인 민 의원은 민중당 의원들과의 협상내용을 소개하면서 "저는 내가 소속해 있는 당에서 당신네 영수와 우리당의 영수와 소위 7월2일 여러 가지 문제를 말씀하면서 그 가운데에서 8월14일까지 본 제52회 국회를 가지면서 비준동의안과 월남파병문제를 처리해 줄 것을 약속했다고 하는 이러한 말씀이 일반에 알려져 있기 때문에"라면서 "이 특별위원회의 활동에서 어떠한 수난이 있더라도 8월14일까지만은 넘겨주어야 되겠다는 나대로의 결심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히 말씀드리기는 8월14일까지 특별위원회에서 모든 것을 종결한다 이런 말씀을 드렸다"며 "8월 14일까지를 넘겨준다는 말씀은 다른 게 아니라 8월 14일까지 특별위원회에서 모든 심의를 종료하면은 8월15일이 일요일 그러면 본회의에 보고되는 것이 8월16일이기 때문에 제가 그러한 근거를 두고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정해진 비준일'은 오래전부터 나돌던 얘기였고 실제로 실행됐다.

의원직 사퇴서 쓰는 민중당 의원들│한일협정 비준동의안의 국회 통과를 저지하기위해 민중당 소속의원 61명이 당사에서 집단으로 의원직 사퇴서를 쓰고 있다. 사진제공 국회도서관


◆ 많은 문제 내포했지만 일괄 심사 = 야당은 개별 협정별 심사와 통과를 주문했다. 기본 내용뿐만 아니라 청구권, 어업협정, 재일동포, 독도, 문화재 반환 등의 내용에 허점이 다수 확인됐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분쟁 해결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넣지 않은 점도 지적됐다.

김대중 의원은 "분쟁처리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이 어디 있냐"고 물었고 외무부 차관은 "제가 지금 기억하기로는 청구권, 어업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이 있고 기본조약, 법적지위, 문화재에 대한 협정에는 그 협정 자체의 분쟁처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협정내에 분쟁처리규정이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고 또한 앞으로 그러한 문제를 예상했을 경우에 이것을 협정에 일괄해서 넣지 않고 이런 분쟁처리에 관한 교환공문으로 낸 것"면서 "청구권문제라든가 어업문제라든가 하는 것은 그 내용이 여러 가지 복잡한 기술적 문제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히 예견되는 그 협정에 넣었다. 분쟁이 일어난 여지가 없다하는 협정에 있어서는 그 협정자체의 분쟁처리규정은 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조약 및 제협정을 일괄 조인함에 있어서 그와 같은 사태를 대비해서 분쟁처리에 대한 교환공문을 교환한 것"이라고도 했다.

김 의원이 "일본이 우리 해석과 똑같이 구속시킬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 일본이 딴소리하는데 구속할 수 있는 근거를 대라 이거다"고 따졌다.

외무부차관은 "일본에서 지금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앞으로 국교정상화가 되면 이 조약이 발효함으로써 일본을 구속을 시킬 자신이 있다. 국교정상화되고 난 다음 행동으로서 입증을 하겠다"고 마무리했다.

야당의 개별협정별 심사요구는 국회의장도 일정부분 동의했다. 이효상 국회의장은 표결에 앞서 "그런데 한가지 여러분의 찬성을 얻어야 할 것은 본 동의안을 어떻게 심의하느냐 하는 문제와 지금까지 특별위원회에서 야당이 주장해온 분리심의 그것은 일리가 없는 바가 아니올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상 단독으로 한일협정을 통과시킨 여당은 이를 '다수당의 힘'으로 규정했고 이를 '민주주의'로 덮었다. 문 위원장은 '1945년 영국의 애트리 수상의 연설'을 인용하며 "소수당의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다수당의 의사가 충분한 실현 구현되는 그 제도가 지속되어야만 의회정치는 발달한다"고 말했다.

["한국 의정사 100년을 걷다"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