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기술독립 이번에 제대로 | ⑥ 화학소재

범용제품 규모의 경제 실현, 정밀화학은 경쟁력 뒤쳐져

2019-10-18 11:29:09 게재

지난해 에틸렌 생산규모 세계 4위

일본·독일, 전자재료·농의약품 우위

"대기업·벤처 협업생태계 조성이 길"

화학소재 분야는 당장 일본의 수출규제 우려보다는 장기적으로 화학산업구조 개선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범용제품의 경우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지만 고기능성 고부가가치 정밀화학분야는 일본 독일 등에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 세계 에틸렌 시장 5.2% 차지 =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석유화학 위상은 세계적이다.

기초유분인 에틸렌은 석유화학 생산능력을 비교할 때 유용하다. 에틸렌 기준 우리나라 생산규모는 세계 4위다. 지난해 926만톤 생산능력을 보유해 세계시장 점유율 5.2%를 차지해 세계 4위 규모를 가지고 있다.

세계 에틸렌 생산규모는 1억7804만톤에 달한다. 1위 생산국은 미국이다. 전체 19.1%(3407만톤)를 점유한다. 다음으로 중국(14.4%) 사우디(9.9%) 순이다.

한국 뒤를 이어 이란(4.3%) 인도(4.2%)가 자리잡았다. 일본은 650만톤(3.7%)으로 세계 7위다.


우리나라 화학제품 수출국은중국으로의 수출이 압도적 1위다. 지난해 화학제품 수출액은 499억8400만달러다. 대중국 수출금액이 217억8200만달러로 전체 43.6%를 차지했다. 2위 수출국은 인도다. 27억달러로 중국과 큰 격차를 보였다. 미국 대만 베트남 순서로 뒤를 이었다.

한국의 일본에 대한 화학제품 수출금액은 21억4600만달러로 6위였다.

반면 화학제품 1위 수입국은 일본이다. 금액으로 40억9100만달러였다. 다음으로 미국(26억7600만달러) 중국(22억8700만달러) 대만 사우디 순이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의 무역수지는 대부분 흑자이거나 수출입이 균형을 맞추는 모습이다.

그러나 일본은 40억9100만달러를 수입하고 21억4600만달러를 수출해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화학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범용제품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며 "하지만 중국의 범용제품 추격이 거세고 일본의 정밀화학분야와 기술력 차이가 존재하고 있는 점은 우리나라 화학산업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일본 의존, 기술력 부족보다는 가까운 공급처 찾다보니 = 일본이 당장 화학소재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 실제 일본이 수출규제를 화학소재분야로 확대하더라도 국내기업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일본 의존 제품 상당수는 기술력 부족으로 수입한다기보다 수급관계 등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원료 가운데 자일렌의 대일의존도가 95%로 매우 높다. 수입 규모는 10억8500만달러에 달한다. 이는 일본 수입액의 4분의 1이 넘는다.

자일렌은 에틸렌 프로필렌과 같은 기초유분으로 페트병과 폴리에스테르 원료인 파라자일렌 생산의 기초원료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자일렌 수입비중이 높은 것은 기술력보다는 국내 파라자일렌 설비 증가에 따른 수급불균형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에서 공급처를 찾다보니 일본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범용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정밀화학분야는 일본이나 독일에 비해 뒤쳐져 있다.

임지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정밀화학분야 해외의존도가 높은 편"이라며 "주로 전자재료와 농의약품 원재료 등에서 일본이나 독일과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정밀화학은 기초 화학원료를 합성 추출한 중간재와 원재료를 여러 단계를 거쳐 배합 가공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기술집약적인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다. 대체로 부가가치가 높다. 촉매 접착제 첨가제 의약품 농약 안료 도료 따위다.

임 연구위원은 "일본은 일렉트릭 케미칼로 불리는 전자재료분야, 독일은 농약이나 의약품 원재료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 연구위원은 일본의 전자재료 경쟁력 배경에 대해 "일본은 70~80년대 소니를 비롯한 전자산업의 급격한 성장에 따라 화학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었다"며 "화학기업이 전자산업을 지원하면서 필름분야 등에서 특화됐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화학소재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고농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를 꼽을 수 있다.

LCD와 같은 기존 디스플레이 소재 부품에서도 일본이 우위를 갖고 있다. 아주 적은 양이라도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첨가물이나 필름 등은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일본제품을 따라잡을 필요가 없게 돼 일본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화학산업 발전방안에서 에틸렌 등 기초원료와 합성수지 합성고무를 가공하고 여기에 각종 첨가제나 화합물을 섞어 만든 플라스틱이나 고무 부문의 경쟁력 제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무나 플라스틱 부문 비교우위지수를 보면 한국은 2005년 1.328에서 2015년 1.245로 도리어 낮아졌다. 반면 일본은 같은 시기 1.478에서 1.657로 상승했다. 독일은 1.558에서 1.434로 다소 낮아졌으나 여전히 한국보다 높다. 중국은 0.711에서 0.921로 높아졌으며 미국은 0.972에서 0.93으로 떨어졌다.

◆"생산주기 짧은 제품에 집중 필요" = 국내업계는 전자재료 등 고기능성 정밀화학 제품을 내재화하기 위해 대기업간 협력을 강화하거나 중소ㆍ중견기업 협업으로 기술을 보완하고 있다.

구부러지는 디스플레이 핵심소재인 투명폴리이미드를 생산하는 SKC는 연말 양산을 앞두고 있다. SKC는 양산 전까지는 SKC코오롱PI의 파일럿 설비를 활용한다. 이 설비로 시제품 제조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고 초기시장에 대응해나갈 계획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부품 개발업체는 테스트설비를 갖추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에 관련업체간 협업 필요성이 높다.

SKC는 투명폴리이미드 베이스 필름을 제조하고 후가공 관련 기능성 코팅은 자회사인 HT&M에서 진행하고 있다. 자회사가 아닌 다른 가공업체와도 다각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자재료부문에서 국산화한 대표적인 제품은 효성의 TAC필름을 꼽을 수 있다. TAC필름은 LCD부품인 편광판을 보호해주는 필름이다. 2009년 이를 개발한 효성은 사업진출 10년 만에 일본과 동등한 수준의 품질과 기술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지수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많은 소재와 부품을 깔아놓고 사업할 수 없다"며 "벤처기업과 대기업이 협력하는 벤처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길"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자재료 등은 생산주기가 짧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가경쟁력보다는 누가 먼저 상용화하느냐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처럼 아직 일본 경쟁력이 높지 않은 제품에 대기업과 벤처기업 생태계를 구축, 적극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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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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