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페르시아 문명과 유대교

2024-04-26 13:00:03 게재

중동지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6개월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이란이 그동안 금기처럼 지켜온 ‘그림자 전쟁’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벗어나 상대방 영토를 공습하는 ‘직접 충돌’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상호 절제된 대응으로 일단 극단적 상황은 피하고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지금까지의 교전 방식이 바뀐 획기적 사건으로서 향후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는 위험성은 더 커졌다. 양국의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에 비추어 정세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게 되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극우세력과의 연정을 통해 개인 비리 혐의를 벗어나기 위한 사법부 개혁 추진과 하마스와의 전쟁 과정에서 인질 구출 실패와 인도적 재앙 초래로 퇴진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전시내각 지속을 통한 정권 유지를 도모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란의 강경 보수파 지도부는 국제사회의 제재와 경제의 비효율적 운영으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3월 1일 시행된 의회와 최고지도자 선출 권한을 보유한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선거에서 역대 최저 투표율(40.6%)이라는 국민의 간접적 저항에 직면했다. 난국 타개를 위한 외부적 명분 모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대교 등 발전에 기여한 페르시아 문명

오늘날 최대 앙숙인 이란과 이스라엘의 접촉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양국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팔레비 왕정이 무너질 때까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페르시아인과 유대인의 최초 접촉은 페르시아 제국(BC550~BC330)을 세운 ‘키루스 2세’가 메소포타미아의 신바빌로니아 왕국을 정복한 BC539년 이루어졌다.

메소포타미아의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구약성서의 ‘느부갓네살’)는 BC601년 유다 왕국의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BC597년부터 3차례에 걸쳐 유대인들을 바빌론에 포로로 잡아왔다.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매…….” 구약성서(역대하)에 등장하는 바사의 ‘고레스’ 왕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이다. ‘키루스 2세’는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후 바빌론에 포로로 붙잡혀 있던 유대인들을 석방하고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도록 지원했다.

‘고레스’ 왕을 통해 자신들을 해방할 것이라는 메시아의 약속 이행을 체험한 유대인들의 ‘야훼 신앙’은 굳건히 뿌리내리게 되었고, 유대교 교리도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페르시아 제국의 조로아스터교였다. 절대적 유일신 신앙인 조로아스터교의 천국과 지옥 및 천사와 악마의 개념, 심판을 통한 종말과 육체의 부활에 대한 믿음 등이 유대교 교리에 흡수되었다.

한편 인더스강에서 나일강에 이르는 페르시아 제국은 인더스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융합해 독특한 페르시아 문명을 형성했으며 페르시아 문명은 이슬람 문명의 바탕이 되어 서구의 르네상스와 정신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샹폴리옹이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고 독일의 그로테펜트가 메소포타미아 쐐기문자를 해독했다.

이로써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신화의 세계에서 역사의 세계로 전환되기 훨씬 전 페르시아 문명은 인류 3대 고대문명을 현대문명에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드러났다.

금기는 깨어지기 어려우나 한번 깨어지면 무너지기 쉽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상대방 영토를 직접 공격하지 않는다는 지금까지의 금기를 깨뜨림으로써 중동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단기적·정파적 이해관계 따른 대응 자제 필요

특히 국내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한 이스라엘과 이란 지도부 가운데 어느 한쪽이 상대방의 의도를 오판하거나 양측 모두 ‘적대적 공생’ 전략을 채택할 경우 단계적 갈등 고조를 거쳐 확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폭격과 이에 대응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및 핵무기 개발 가속화 등 중동지역은 물론 전 세계를 엄청난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페르시아인과 유대인은 유사한 신앙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서로를 적대시한 기간은 5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양국이 단기적·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전략적 실수를 범하지 말고 장기적·대승적 관점에서 현 상황을 합리적으로 대처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송웅엽 조선대 객원교수 전 이란·이라크·아프간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