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정사 100년을 걷다 | (26) 김대중의 첫 필리버스터

5시간19분 발언, 한일비밀협정 폭로 의원 체포 막아

2019-12-05 11:08:09 게재

박정희정부 6대 국회 열자마자 야당의원 징계·기소·구속 압박

법무장관출신 5선 김준연 의원, 박정희·김종필 외환법 위반 고발

국회의장, 재선 김대중 의원 소신발언 강제 중단시켜 야당 반발

1964년 4월 20일 오후 2시 37분 이효상 의장은 "의사일정 제2항 국회의원(김준연 의원) 구속동의의 건을 상정하고자 하는 데에 여러분의 동의를 얻어야 될 일이 있다"며 "김대중 의원 외 25명으로부터 의사일정 변경동의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2항에 올라가 있는 김준영 의원 구속동의의 건에 앞서 국무위원 법무부장관 출석 요구의 건을 먼저 상정하자는 제안이었다. 이 의장은 "제안 설명해 주십시오. 김대중 의원"이라고 했고 김 의원은 곧바로 단상에 올라와 "의사일정 변경동의에 대한 취지를 설명하겠다"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시작했다.

1967년 7대 국회에서 3선의 김대중 의원이 발언하는 장면. 자료 김대중평화센터


김준연 의원 구속요구는 한일협정에 대한 폭로에 따라 여당인 공화당이 고발한 결과였다. 박정희정부는 1962년11월12일에 비밀리에 김종필-대평(오히라) 회담을 통해 대일청구권 문제 등을 합의했고 이 과정에서 비밀메모가 오갔다. 1963년 5월에 김병로 등 재야인사들이 김종필-대평 합의내용 공개를 요구했다. '한일회담의 3월타결-4월조인-5월 비준'이라는 정부방침이 드러났다.

3월 24일 서울대 연대 고대에서 시작한 한일회담 반대 데모가 하루 만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학생들의 반발이 극심해질 무렵인 26일 김준연(영암·강진, 삼민회) 의원의 폭로가 나왔다. 그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공화당이 한일회담과 관련해 일본으로부터 1억3000만불의 청구권을 미리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의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국회는 특위를 구성하기까지 했다.

김대중 의원 필리버스터 중 | 1964년 당시 야당 국회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료 야당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자료 김대중평화센터

김 의원은 4월 2일에는 "공화당이 지난 1963년도의 선거자금으로 일본에서 2000만불을 수수했고 대일 청산계정 4700만불도 이미 사용했다는 설이 있으니 경위를 밝히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공화당은 허위사실 유포죄로 김 의원을 고발했고 김 의원은 4월 8일에 박정희 대통령과 민주공화당 의장 김종필 의원을 외환죄로 고발했다. 공화당은 무고죄로 맞고발했다.

4월18일 정부는 김 의원의 구속동의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구속동의안은 이틀후에 운영위를 거쳐 본회의에 올라왔다. 이때 재선의 김대중 의원이 한국 의정사상 첫 필리버스터에 나섰다.

◆"말이라도 하자" = 김 의원은 먼저 김준연 의원을 소개하는 데서 시작했다. 그는 "20만 국민을 대표하고 여기 175명 국회의원 중에서 불과 2, 3명밖에 되지 않는 5선 의원이고 과거 일제시대나 지금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독립이나 반공을 위해서 투쟁한 역사가 우리가 다같이 아는 바"라며 "대한민국 수립이후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이란 요직을 지냈다"고도 했다.

그러고는 "1억3000만불 일본자금수수설에 대한 조사단이 구성되었다"며 "조사단은 증인 10여명 중 한두사람밖에 아직 출석이 안됐다"고 강조했다. "국회의 조사가 진행중에 있고 아직 그 방향이 판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구속동의요청을 냈다는 것은 이 조사에 대해 판결과 심판을 내렸다는 인상을 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 국정감사결의권에 의한 감사권과 국회조사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김 의원이 "운영위에서 야당의원들이 법무부장관이 먼저 나와서 여야간에 납득할 수 있도록 석연히 질문을 해 가지고 그 질문이 끝난 연후에 국회의원 구속동의의 건을 상정시켜서 대정부 결의를 하자고 주장한 바를 보았다"며 "제3항에 올라 있는 경향신문 및 류창령 의원 피소사건에 관한 질문은 지난 금요일 이미 올라왔다가 연기되었던 것인데 이것은 순서로 보나 관례로 보나 마땅히 의사일정 제1항으로 상정돼야 하는데 다수의 힘으로 뒤로 돌리고"라고 이어가자 의원들의 반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만둬요" "집어쳐요"와 "길게해요"가 뒤엉켰다.

김 의원은 "여러분은 다수의 의석으로 우리의 의사를 유린하고 우리는 소수로써 말이라도 입 벌려 놓고 하자는 것을 그 입마저 여러분이 봉쇄하려면 차라리 우리를 전부 몰아내고 여러분끼리만 총회 합만 같지 못할 것"이라며 "내가 이 자리에서 쫓겨 나가는 한이 있다하더라도 그렇게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10년동안 의사당 들어오려 모든 희생 바쳐 = 이효상 의장이 오후 2시59분에 끼어들었다. "지금 시간이 3시다. 다시 또 연장을 해야 되겠다"며 표결에 들어갔다. "내일 합시다" "그냥 해요" "점심이나 먹고 합시다" "사람 잡아가는 데 그렇게 열심히요? 내일해요, 내일해" 등이 쏟아져 나왔다. 기립표결로 146명 중 91명 찬성으로 연장안이 통과됐다.

김 의원은 "말씀을 계속하겠다"며 김준연 의원의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무부장관이 구속 사유로 증거인멸을 거론한 기사를 제시하기도 했다.

신상발언도 나왔다. 김 의원은 "5.16 전에 5월 14일에 당선되어 가지고 5월16일에 혁명이 되어 가지고 의사당 안에 들어오지도 못했다"면서 "내가 10년동안 갖은 고초와 재산과 모든 희생을 불구하고 이 국회의사당에 들어오려고 한 것은 그만큼 이 의사당을 숭고하게 생각하고 존귀하게 생각하고 민주주의의 상징이요 민주주의의 생명체에 대한 동경심에서 10년의 청춘과 재산과 모든 희생을 바쳤다"고 했다.

당시 국회 상황에 대한 설명도 들어갔다. 김 의원은 "6대 국회는 개원되어서 4개월밖에 안되었다"면서 "국회는 거의 공전되어 왔다"고 했다. 그러고는 "6대 국회가 뚜렷이 한 일은 이미 김준연 의원까지 합쳐서 야당의원 셋을 손대기 시작했다"며 "윤보선 의원이 징계에 회부되어 있다. 류창열 의원이 기소가 되어 있다. 김준연 의원이 구속동의 요청을 받고 있다. 1년 안가서 65명 야당의원 성한 사람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정도도 나왔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 마크를 달고 다방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를 보는 눈초리 중에서는 어떤 사람은 호기심 혹은 어떤 사람은 동경으로도 보지만 어떤 사람은 싸늘한 눈초리로 보는 것도 사실이다"며 "우리의 주위가 이미 살벌해지고 이미 우리로 하여금 국회라는 것을 버젓이 내세우기가 괴로운 입장"이라고 토로했다.

나용균 부의장은 사회권을 넘겨받으며 "너무 좌석이 문란하다"며 "저 뒤에 서 계시는 분들 착석해 주시고 사담 좀 금해 주셨으면 고맙겠다"고 주문했다. 이효상 의장이 돌아와서는 "지금 2시간이 다 되어 간다"며 "결론을 빨리 내달라"고 했다. "지금 5시25분인데 15분 이내에 끝을 맺으실 수 없냐"고도 했다. 김 의원은 "의장께서 야당의견을 늘 존중해 주시면 본 의원은 15분은 고사하고 1분만이라도 끊을 수 있다"고 했다.

◆의장 마이크 끄다 = 결국 오후 5시47분에 정회가 선언됐고 6시25분에 개의됐다. 김효상 의장은 "앞으로 7시까지 언권을 드리겠다"고 했다. 기립표결로 129명중 79명이 찬성해 통과됐다. 김 의원은 "의장께서 발언을 제한한 것은 이유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가지고 있는 발언권을 시간제한 없이 행사하겠다"고 했다.

이효상 의장이 '국회법 97조'를 제시하며 "국회 의결로 제한할 수 있다"고 했지만 김 의원은 계속 발언을 이어갔다. 이 의장은 "마이크를 끄겠다", "하단해 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의사일정을 변경할 것이냐 아니냐 하는데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표결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장내가 소란해지면서 의장석으로 올라가는 의원들이 나왔다. 결국 "의사진행이 매우 곤란할 것 같고 또 만일 강행한다면 어떠한 불상사까지 일어날는지 모른다"며 "내일 결정하기로 하고 산회한다"고 했다. 오후 7시56분이다. 5시간 19분동안의 필리버스터가 끝났다.

다음날인 4월 21일 본회의에서는 국회의원 구속동의의 건을 올려놓고 민복기 법무부장관의 제안설명을 듣는 과정에서 야당의 반발이 거세 회의중지, 속개를 수차례 반복했다. 오전 10시29분에 시작한 회의는 오후 10시 34분에야 끝났다.

결국 구속동의의 건은 처리되지 않았다.

이효상 의장은 산회를 선포하면서 "모든 책임을 국민앞에 제가 지고 황송합니다마는 사의를 표명한다"고 했다. 폐회 직후인 4월26일에 김준연 의원이 구속 수감됐다. 그러고는 한달뒤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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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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