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과감한 재정정책 … 3개월 간 GDP 13% 투입

2020-03-23 11:07:15 게재

해고 위기 노동자에 임금 75% 보전 … 노사정 신속 합의

미 시사월간 애틀랜틱 "대공황 피하기 위한 청사진될 수도"

미국 백악관과 의회는 긴급 경제안정 부양책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다른 나라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덴마크는 코로나19로 인한 전례없는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매우 과감하고 신속한 재정정책을 꺼내들었다.

지난주 덴마크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은 민간기업들에게 '대규모 정리해고를 보류한다면 3개월 동안 노동자 임금 75%를 대신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지출하겠다는 것으로, 미국에 이 비율을 적용하면 13주 동안 2조5000억달러를 쓴다는 의미다. 미 시사월간지 '애틀랜틱'은 22일 "이보다 더 대담할 순 없다"며 "덴마크의 공세적인 대응법은 전 세계가 또 다른 대공황을 피하기 위한 청사진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덴마크와 스웨덴, 노르웨이가 설립한 세계 최초 국제합작 항공사 '스칸디나비아항공'(SAS) 소속 비행기들이 덴마크 코펜하겐공항에 멈춰서 있다. 사진 EPA=연합뉴스


애틀랜틱은 덴마크 올보르대학 노동시장연구센터 플레밍 라슨 교수를 이틀에 걸쳐 이메일과 화상채팅으로 인터뷰했다. 덴마크 정책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다. 다음은 애틀랜틱과 라슨 교수의 인터뷰 요지.

■덴마크의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거리는 어떤 모습인가.

거의 모든 대학과 초중고 학교, 공공기관, 식당, 박물관, 영화관 등이 문을 닫았다. 10명 이상 모이는 회합은 금지됐다. 국경 역시 폐쇄됐다.

■덴마크 정부는 노동자를 돕기 위해 공세적 정책을 내놨다. 어떤 것인가.

민간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대기로 했다. 조건은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어떤 기업이 전체 직원의 30% 또는 최소 50명 이상의 노동자를 해고한다고 신고하면, 정부에서 해당 노동자 임금의 75%를 회사에 대신 지급하는 것이다. 한달 최대 3288달러다. 연간으로 치면 모든 노동자들이 최소 5만2400달러의 연봉을 보장받게 된다는 의미다.

여기에 전제된 덴마크 정부의 철학은 기업들이 노동자와의 고용관계를 끊지 말라는 것이다. 기업들이 해고한 뒤 경제가 좋아질 때 다시 고용하는 데 시간을 들인다면, 경제회복은 그만큼 느려진다. 덴마크 정부 계획은 3개월간 지속된다. 그 이후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보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경기침체시 고용을 위협받는 노동자들의 비용을 댄다는 것인데, 기업들이 정부를 속여 돈을 쉽사리 착복할 가능성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75%의 임금보상을 받은 노동자는 해당 기간 일을 할 수 없다. 반면 기업에 여전히 고용된 사람들은 75% 보상을 받지 못한다.

■일부 미국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독일식 일자리 공유 정책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단축근무를 뜻하는 '쿠어쯔아르바이트(Kurzarbeit)'로, 독일 정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업들에게 일정기간 임금 감축분을 보조했던 제도다. 덴마크의 정책도 그와 비슷한가.

꼭 그렇진 않다. 독일 정책은 정부과 고용주가 '노동'에 대한 비용을 분담한다는 것이다. 덴마크 정부는 집에 가야 하는, 그래서 일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기업이 그대로 둔다면,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해당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가로 돈을 받게 된다. 정부는 '수많은 노동자가 갑자기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우리가 일제히 노동자를 해고한다면, 이후 상황을 뒤바꾸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기업들은 위기 때 고용을 유지하고, 노동자들은 임금을 유지한다. 노동자들이 집에 가야만 한다고 해도 그들에게 임금을 보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덴마크 정부는 3개월 간 경제를 동결한다는 것인가. 당신은 '우리는 이 모든 노동자가 향후 수개월 동안 일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제히 해고한 뒤 다시 일제히 고용하게 되면 이는 경제회복을 지연시킬 것이므로, 경제 전체를 깊은 동면에 빠지게 하자는 것인가. 코로나19가 잦아들 때 경제를 동면에서 깨워 모든 이들이 올해 1월 근무했던 기업에서 여전히 일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인가.

정확한 설명이다. 우리는 경제를 동결하고 있다.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체 경제 시스템이 장기적 피해를 볼 것으로 우려한다. 덴마크 정부가 바라는 바는 이 상황이 3~4개월 뒤 끝나고, 그때 덴마크 사회가 다시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덴마크 정부의 다른 계획은.

여러 정책이 있다. 금융권이 문을 닫는 걸 막기 위해 정부는 신규 기업대출의 70%를 보증한다.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한다고 해도, 은행들이 계속 대출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또 실업급여 조건이 일시중단된다. 일반적으로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구직센터에 가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 일정 정도 이상의 구직활동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된 수많은 규정이 있다. 하지만 이는 현재 보류됐다. 자격조건이 없다. 또 덴마크의 실업수당은 최대 2년 동안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받던 사람은 기간과 상관없이 계속 수당을 받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경제를 동결하고 있다.

또 기업의 납세 기한을 봄에서 가을로 유예했다. 공무원들이 해고된다 해도 임금을 받게 된다.

■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담한 데다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얼마를 쓰려고 하는가.

2870억덴마크크로네(약 51조3357억원)다. 이는 국가 GDP의 13%다. 미국으로 치면 약 2조5000억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한다면.

당시 이만한 규모의 정책은 없었다. 대규모 정부지출도 없었다. 당시 정부는 공공부채 증가를 우려했다. 정부가 대규모 공공자금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하고 오랜 논쟁이 있었다. 덴마크는 당시 엄청난 실업사태를 목격한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 덴마크 경제는 매우 강하다. 재정흑자폭이 크다. 기준금리는 마이너스다. 공공저축이 많이 쌓였다. 따라서 과감하고 적극적인 재정부양책을 쓸 여지가 많다. 또 정치적 환경도 변했다.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복지지출을 크게 늘리려 노력했다.

■10년 전에 경제부양책을 놓고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오늘날 모든 이들은 '이제 정부가 경제를 구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 정부가 경제를 살리길 원한다. 거기에 전제된 철학은 '정부가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나중에 경제를 살리기 위해 더 큰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확산되는 상황을 보라. 사람들이 매우 걱정하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이처럼 엄청난 일을 하려는 것과 관련해 덴마크 전체가 며칠 만에 합의를 이뤄낸 것이 놀랍다. 덴마크 정부는 4~6월 동안 GDP의 13%를 지출하려 한다. 반면 미국에선 정부가 추진하는 수표 지급액 규모에 대해 논쟁이 치열하다. 정부 대책의 속도와 규모에 간극이 크다.

덴마크의 사회적 합의 과정이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의회에 10개 정당이 있다.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하다. 이들 모두가 정부 부양책에 동의하고 있다. 거의 100% 합의가 이뤄졌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사람들은 지금 대규모 부양책을 쓰는 게 맞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런 많은 정책들은 노사정 3자 협의기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노조와 사용자단체, 그리고 정부다. 덴마크에서 대부분의 노동시장 규제는 노조와 사용자 연합이 공동으로 만든다. 이들은 집단적 합의를 통해 노동시장을 규제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노동자와 사용자를 합의주체로 세워야 한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덴마크는 신속히 성공했다. 며칠 만에 이 모든 정책이 서명된 합의문으로 나왔다.

■덴마크 정부의 과감한 부양책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이는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다. 시도 자체는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삶이 파괴된다면, 기업들이 파산한다면 이를 다시 회복하는 데엔 수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정부의 정책이 현명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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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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