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 기업 가치평가, 허위보고 안되게 유의해야”

2024-05-08 13:00:03 게재

교보생명 가치평가 분쟁, 회계사 무죄 나왔지만

‘평가 과정과 결과산출’ 독립적으로 수행해야

한국공인회계사회, 4회 ‘가치평가 포럼’ 개최

비상장회사 주식의 가치평가업무를 하는 공인회계사들이 ‘허위보고’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에서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업무 수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교보생명 관련 풋옵션(주식매도청구권) 가격을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니티컨소시엄측에 유리하게 허위 작성한 혐의로 기소됐던 회계사들이 무죄를 확정 받았지만 이 같은 법적 논란이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8일 오전 ‘공인회계사의 가치평가 관련 법적 책임’을 주제로 제4회 가치평가 포럼을 웨비나(Webinar)로 개최했다.

주제 발표자로 나온 안태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문가 서비스의 본질상 의뢰인과의 소통 및 자료교환이 필수적인 부분은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신중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며 “가치평가의 본질적인 부분, 즉 평가방법과 평가인자를 결정하고 그 결과를 산출하는 과정은 반드시 공인회계사 스스로의 주도적이고 독립적인 업무로서 수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최근 모 회계법인 사건(교보생명 풋옵션 가치평가 분쟁)에서 무죄(공인회계사)가 선고됐다고 하더라도 법원의 판결은 사건마다 그 사건의 증거와 사실관계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할 것이므로, 해당 사건에서 기소가 된 부분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인회계사 아닌 의뢰인도 ‘허위보고’ 공범 가능 = 그는 “공인회계사법상 허위보고를 이유로 형사처벌을 하도록 하는 조문은 입법론적으로 개정의 필요성이 있지만 현재의 조문이 존재하는 한 공인회계사들은 가치평가 업무를 함에 있어서 허위보고에 해당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안 교수는 교보생명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와 더불어 ‘허위보고에 의한 공인회계사법위반죄’에 대한 기존 대법원 판결을 설명했다.

대법원은 “공인회계사법상 직무를 행할 때 ‘고의로 허위보고를 한다’는 의미는 행위자인 공인회계사가 회계에 관한 감사·감정·증명·계산 등의 직무를 수행할 때 사실에 관한 인식이나 판단의 결과를 표현함에 있어 자신의 인식판단이 보고서에 기재된 내용과 불일치하는 것임을 알고서도 진실 아닌 기재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허위보고에 의한 공인회계사법 위반죄의 행위주체와 관련해서는 공인회계사가 아닌 자도 공범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공인회계사법 위반죄는 위촉인(의뢰인)이 공인회계사가 진실을 감추거나 허위보고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경우에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공인회계사법(22조4항)의 ‘부정한 청탁’ 의미와 형법상 배임수재죄의 ‘부정한 청탁’을 거의 동일하게 보고 있다는 점도 안 교수는 강조했다. 다만 가치평가와 관련해서 대법원은 ‘부정한 청탁’의 인정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다.

대법원은 “공인회계사가 합병의 이해관계자인 비상장회사측에 합병비율의 범위를 알려주고 그 범위 내에서 비상장회사측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부정한 청탁 또는 그에 따른 업무수행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교보생명 풋옵션 가치평가 분쟁은 = 교보생명 가치평가 분쟁은 사모펀드인 어피니티가 2012년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풋옵션 조항 등이 담긴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한 것에서 시작됐다.

어피니티가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5000원에 인수하는 내용이지만, 교보생명이 2015년 9월까지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으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단서 조항이 포함됐다.

이후 교보생명 IPO가 이뤄지지 않자, 어피니티는 2018년 주당 41만원에 풋옵션을 행사했다. 주당 41만원은 안진회계법인 회계사들이 평가한 교보생명의 주식 가치였다.

신 회장측은 풋옵션 행사가격이 의도적으로 과대평가됐다며 회계사들을 고발했다.

검찰은 회계사들이 어피니티에 유리하게 높게 평가된 가격으로 기재된 허위의 평가보고서를 작성해주고 용역비 명목의 돈을 받았다며 이들을 공인회계사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공인회계사법 15조(공정·성실의무 등)에는 ‘공인회계사는 직무를 행할 때 고의로 진실을 감추거나 허위보고를 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또 22조(명의대여 등 금지)에는 ‘공인회계사는 직무를 행할 때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거나 위촉인이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부당한 금전상의 이득을 얻도록 이에 가담 또는 상담해서는 안된다’고 규정돼 있다.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찰은 이 사건에서 안진회계법인과 의뢰인 사이의 의견교환 횟수나 정도가 권장범위 내지 허용범위를 넘어 진행됐다고 하나, 평가방법이 정해져 있는 감사와 달리 이 사건과 같이 가치평가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회계법인이 의뢰인 측으로부터 다른 의견을 제시받았더라도 전문가로서 그 의견을 합리성을 따져 수용 여부를 결정했다면 의견교환의 횟수가 다소 많다는 사정을 들어 의뢰인 측이 평가방법을 결정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같은 하급심 판결에 대해 “허위보고, 부정한 청탁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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