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자치분권은 시대정신이다

2021-02-05 11:28:23 게재

민선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올해로 30년을 맞이했다. 지난 30년간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투표로 선출하는 과정을 거치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이 일정 수준 마련되었다. 그러나 실질적 분권이 수반되지 못한 상태에서 지방자치의 구조적 한계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는 물론 경제·사회적 자원들이 집중되어 중앙과 지방의 양극화가 고착되고 있는 상황 역시 실질적 자치분권에 대한 열망을 키우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국가가 주도하는 성장만으로는 지역이 겪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인식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자치경찰제 도입 등 자치분권의 숙원과제들을 달성함으로써 지방자치의 패러다임을 주민 중심으로 새롭게 전환하는 '자치분권 2.0'의 문을 열었다.

이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지역 간 양극화, 인구감소, 신종·복합재난 등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도전에 마주하고 있다. 중앙의 힘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이다. 해답은 지역의 창의적이고 다양한 성장 동력이 자유롭게 발현되도록 하는데 있다. 자치단체가 스스로 발전역량을 갖추고 지역 여건에 맞게 성장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자치분권 2.0'의 지향점이다. 앞으로 정부는 다음의 세 가지 방향에서 '자치분권 2.0'을 구현해나가고자 한다.

가장 먼저 자치단체의 자율성 확대이다.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사무는 지역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치단체가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다. 중앙은 보충적으로만 지역의 일에 개입해야 한다. 전부개정된 지방자치법에는 이러한 보충성의 원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국가위임 사무를 포함하더라도 자치단체가 수행하는 사무는 국가 전체의 사무 중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볼 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정부는 지난해 지방일괄이양법을 제정, 400개 사무를 이양했다. 앞으로도 제2차 지방일괄이양법을 통해 자치단체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1단계 재정분권을 통해 지방소비세율이 11%에서 21%로 인상된 것은 괄목할만한 성과이지만 아직 지역의 갈증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2단계 재정분권을 통해 재원을 확충하면서, 집행의 자율성도 함께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지방으로 이양된 사무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은 적절한 수준의 예산과 인력도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둘째 주민 중심의 지방자치 구현이다. 주민자치회를 본격 운영하고, 주민이 단체장을 거치지 않고 의회에 직접 조례안 제·개정과 폐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여 주민참여의 문턱을 대폭 낮출 계획이다. 지방의회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신뢰받는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별도의 '지방의정연수원'을 설립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자 한다. 또한 자치경찰제 도입을 계기로 주민들의 지역 치안정책 참여를 활성화하고, 지방행정과도 연계하여 제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특성에 맞는 발전 동력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균형 뉴딜을 지역 현장에 뿌리내리게 하고, 지역간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협력을 통해 지역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유형별 모델도 개발하고 지원할 계획이다.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은 "위대한 리셋(reset)의 시기를 어떻게 맞이하는가에 따라 국가·기업·개인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언급한바 있다. 전 세계가 예측하지 못했던 전환기를 마주한 지금, 우리의 대응이 앞으로의 30년, 100년을 좌우할 수 있다. 이제 '자치분권 2.0'의 토대 위에서 주민 삶의 질을 높이고, 미래세대를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지역의 경쟁력 확보는 역으로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될 수 있기에 자치분권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시대정신이다.

["[신년기획] 새로운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다" 연재기사]